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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LifeBGM 30화

LifeBGM |뒤엉킨 소리 씻기

Trygve Seim - Different Rivers

by Ggoc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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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음악을 들었습니까? 많은 소리를 들었습니까? 그중에 의미가 있는 것은 몇 개였습니까?



건조기를 돌리는 동안 코인 세탁소 옆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때문에 귀가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그래요, 저는 꽤 성질머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진짜 악기로 연주하지 않은 미디 경음악을 들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심지어 코인세탁소 옆은 사주카페였는데 이미 문을 닫았습니다. 나는 대체 그들이 왜 문을 닫으면서 그 음악을 틀어놓고 갔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매장마다 음악을 틉니다. 매장이 모여 있는 번화가를 가면 매장의 음악들이 아무렇게나 뒤엉켜 아스팔트 위로 쏟아집니다. 나는 가끔 그런 식으로 뒤섞인 음악들이 토사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위속에서 이 음악 저 음악이 뒤엉켜 미처 소화되지 못하고 쏟아진 사운드.


오래 그런 곳에 있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기분만이 아니라 나름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뇌파는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어떤 음, 또는 녹음은 두뇌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니, 음악을 잘 골라 들으셔야 합니다. 녹음실 엔지니어로 일하던 오래된 지인은 오디오 파일의 종류별 뇌와 신체 반응을 논문으로 쓰면서 나와 심각한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 오래된 시절이라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우리는 마음과 몸이 상처 입거나 너무 힘들면 꼭 제대로 된 오디오세트나 라이브로 음악을 들으러 갑니다. 좋은 음악으로. 뒤섞인 구토가 아닌 느리게 소화될만한 음악으로.


ECM에 대한 환상을 그렇게 시작됩니다.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니. 세상에 침묵은 없으니 침묵 다음으로 나를 달랠만한 소리를 찾기 위해서는 ECM레이블을 뒤적이는 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전날 밤 토해놓은 신경질을 닦을만한 음악이 듣고 싶었습니다.


On Trygve Seim - Different Rivers


여러 음반을 거쳐 트리그베 세임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나는 이 음반의 표지를 볼 때마다 태초의 우울의 요람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듣는 것보다 벗어나는게 어렵다던 즈베린Zwerin의 말처럼, 차분하고 외롭게 만드는 트리그베의 음악은 일단 시작하면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화가 내재된 채로 저 뒤엉키고 화려한 음악들의 세게에서 혼자 동떨어져, 외롭고 싶었기 때문에 그가 다른 강변으로 안내하는 흑백의 음악을 틀었습니다.


색소폰과 호른, 클라리넷, 트럼펫까지 나오는 관악의 떼들이 이렇게 차분하고 낮고 자박하게 음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들의 전에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평소에는 화려한 블루 지를 연주하던 악기들이 덜 데워진 채로 느릿하게 읊는 음은 무성無性하게 내 발아래를 기어갑니다.


오래전, 지금은 돌아가신 차현선생님의 재즈카페에서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재즈 베이시스트이자 클럽 워터 콕(솔라)의 주인이셨던 선생님의 장소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날은 이영경 선생님의 재즈 피아노 독주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클럽 내부는 그리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초록 코트를 벗지 않고 자리에 앉아 뜨거운 음료를 마셨습니다. 클럽은 늘 한산했습니다. 악기를 위해 실내 온도도 너무 따뜻하지 않게 유지하곤 했던 그곳은 인기 있는 스윙이나 재미있는 연주들보다 진정성 있는 음악을 위해 더 많이 제공되었습니다. 그날도 나를 포함해 고작 두 테이블이 있었습니다.

이영경 선생님이 한창 The Green dolphins street을 연주할 때,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한 외국인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악기 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기 전, 그는 쓸쓸한 재즈 클럽 안에서 테너 색소폰을 독주로 연주했습니다. 이영경 선생님과 차현 선생님과 이름 모르는 방문객 한 사람과 나, 네 명을 앞에 두고 아주 느리고 천천히, 그리고 온 힘을 다해서 색소폰을 연주했습니다. 그의 덥수룩한 수염 아래에서 나는 그가 침묵 다음의 소리를 연주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의 연주가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때 나는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어 번들거리며 악기의 몸통을 기억합니다. 금속을 잘 제련한 특유의 문양으로 빛나던 그의 악기와 쌀쌀맞은 공간에 아랑곳 않고 뿜어내던 그의 고독한 표정을 기억합니다.


트리그베의 음악은 그날을 연상시킵니다. 어쩌면 그는 트리그베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닐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식의, 이런 식의 음악이 종종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 나는 이제 내 두뇌 속에 남길 만한 음악을 남기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자기 전에 듣는 음악은 잠에도 연결되니 조심하십시오. 그것이 온통 뒤섞인 것이 아니라, 침묵 다음으로 아름다운, 제법 괜찮은 음악이기를. 그 음악이 당신을 다른 강가로 데려가 얼굴을 벅벅 씻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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