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그가 아른거리는가?

사랑의 역습

by 꿈꾸는 리얼리스트

겨우 그가 잊혀가고 있는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데... 애써 담담해지려고 마음을 고쳐먹었는데 다시 본 그가 여전히 반갑고 애틋하다면... 사랑일까?


몇 년 전, 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난 그저 남사친이었던 J가 조금 달라 보이긴 했다. 우린 그의 사무실에 가서 만둣국을 끓여먹고, 바닷가 카페에서 피자에 커피도 먹고, 가벼운 드라이브도 했다. 그리고 또 재작년에 다시 만났을 때 뭔가 그동안 서로의 삶을 잘 지탱해왔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함께 그간 있었던 고달픔 같은 것도 공감이 되었다.

고향에서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나는 차가 없어서 걷기에 애매한 곳은 매번 택시를 타야 했다. 급할 때마다 그를 불러 차 좀 태워달라고 하던 나. 이제는 그런 부탁도 민망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처음엔 스스럼없이 운전을 부탁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차를 태워주던 J.


그 고향마을에서의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친구들을 다 모아 밥 한 끼를 했다. 물론 그전에 계약금이 들어올 때도, 간단간단 좋은 일이 있거나 혼자 밥 먹기 싫을 때 그를 불러내기도 했다. 그때 그 앞에 있던 과일을 내가 좀 달라고 했다. "내가 먹을 건데?" 라며, 자기 몫을 챙기며, 조금만 덜어주던 그. 다른 친구 C가 "영주 다 줘라."라며 뺐어서 내 앞으로 갖다 주었다. "나, 나쁜 남자다!!" ㅋㅋ 누가 물어봤냐고? 갑자기 자신이 나쁜 남자라며,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핑계인지, 창피함을 가장한 고백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전에, 그도 나도 참석했던 출판기념회에도 그는 "내가 온 걸 영주에게 말하지 마라."라고 했다고... 그 말에 또 발끈한 나는 "네가 뭐 *순신이야?"며 뒤에 그를 보자마자 말했다. 그렇게 한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이것저것 챙겨주던 그가 고맙고, 나도 모르게 약간은 친근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사랑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자꾸 그가 아른거렸다. 왠지 마음이 가고... 조용히 지나가거나 애써 내 마음을 추스르거나, 그에게 전달했더라면 오히려 후련했을 텐데 남자, 여자 절친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남자 절친은 "걔, 경제적으로 좀 힘들어. 네가 다가오는 게 아마 힘들 거야."라고 했고, 여자 친구는 자신이 봐도 J가 귀엽고, 예전에는 모르던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했다. 난 그 말을 응원으로 받아들였다.


항상 그렇듯이 나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결국은 내 멋대로 하는 편이다. 아니, 대체로 처음 마음먹은 대로 한다. 나 역시, 그에 대한 감정이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그저 친구들 중에 조금 마음이 더 가는 친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마음도 안 보니 정말 흐려져 갔다. 그러다가 휴가철이 되고 지인 교수님들과 여행 갈 일이 생겼다. 마침 남, 녀 교수님 두 분이었다. 그분들은 기혼에 친구관계. 나더러 "영주 씨 친구 한 명 더 데려와요." 했다. 아무래도 여자 친구보다는 남자 친구가 좋을 것 같았다. 그 여행은 4인이 한 조가 되는 선상낚시였다. 나는 바로 J가 떠올랐다. 고향에 머무르게 되면서 그때만 해도 좀 의기소침해 보이고, 별 재미없이 무미건조하게 사는 그가 안쓰러워 보여 바람이라도 쐬러 가자고 하고 싶었다. 전화를 걸었다. "아는 교수님들과 여행 가는데 너도 같이 갈래?" 여느 친구들 같으면, 썩 내켜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싫어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어떤?, 어디로?" 그가 말했다.

"거제도. 나랑 친한 분들. 엄청 좋은 분들이야. 선상낚시하려고."

"나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나도 전에 처음 한 번 해보니 재밌었어."

"알았어. 그때 다시 연락 주라."

그러고는 그럭저럭 잘 지내다가 여행도 가기 전에 사건이 터졌다. 우연히 다른 동창 친구와 연락을 하다가 그 J가 "네 마음대로 해. 안 그래도 J 많이 귀엽더라."라고 한 친구와 사귄다는 소문이 있다는 것이다.

소문일 수도 있고, 진짜 감정이 있는 사이 일 수 있는데 나는 또 성마른 성격 탓에 J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M 사귀니? 나는 너 좋아하고, 너는 M 좋아한다는 소문이 났더라." "내가 미쳤냐? 결혼하고, 가정도 있는 애를 왜 좋아하는데?" 그 말은 친구로 친하게 지낸다는 말이다, 나도 그의 친구이듯이. 나는 머쓱해졌다. 그리고 그 M은 결국 돌싱이 되었고, 역시 돌싱인 J도 같은 처지라 그런지 원래 우리 모두 절친한 친구들이라 그런지 유독 잘 어울렸다.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 여행도 무산되고 우리의 여행 계획도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다.


얼마 전 다시 고향을 방문한 나는 J와 M을 같이 만났다. 오붓한 송년회를 했고, 다들 즐거워 보였고, 편안했다. 항상 친구들이 한 명이라도 서운하지 않게 배려하는 C와 말괄량이 G도 함께 였다. C를 빼고는 모두 싱글, 더군다나 비혼인 나를 뺀 나머지 셋은 돌싱이다. 돌싱은 돌싱끼리가 더 편안하고 좋은 것일까? 다음날 다른 여자 친구와 밥을 먹는데 또 J와 M이 사귀는 게 아니냐고, 내게 물어왔다.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물었다가 나만 머쓱해지고, 내가 J를 좋아하는 마음도 다 잡았는데 그를 보고 온 나는 또다시 J가 어른거린다.


흔들리지 말자. 언제나 그렇듯 이런 설레는 감정을 즐기는 나이기도 하지만, 엉뚱한 오해와 착각은 금지... 뭐든 피상적이지 않게 제대로 보는 눈을 지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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