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아무 거리나 지나가던 중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딴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던지라 단번에 알아듣진 못 했다.
"네?"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냐고요."
"어... 네. 어떤 거요?"
갑자기 슬슬 웃는다.
"아니에요. 됐어요."
이내 뒤돌아 제 갈 길을 간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는지?
바이러스의 존재가 알려진 건 수 개월 뒤였다.
전파방식이 굉장히 흥미롭다. 흔한 비말감염이나 공기감염이 아니라 "언어감염"이라는 생경한 이름을 얻은 이 방식은, 전염이 언어를 통해 매개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언어 자체를 오염시킨다. 정부는 "묻다"의 일체 활용을 금지할 것을 명령했다. 본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확진자들은 무언가 "물어보는"데, 이것이 정말로 "물어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서 뱀파이어마냥 전염된다는 것이다. 처음엔 모두들 믿지 않았다. 그러나 감염된 유명 종교인이 신도들에게 무언가 물어보고자 하였고 신도들이 순순히 예 하고 대답해버리는 바람에 집단감염된 사례는 이미 유명하다. 전문가들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발화와 청취 과정을 거쳐야만 감염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작문과 독해를 통해서도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다행히 후자의 방법으로는 전파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대화가 진행되는 중이라 하더라도 물어보고자 하는 질문에 수긍만 하지 않는다면 감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감염된 유명 유튜버가 다같이 죽자는 식으로 본인의 채널에 온갖 걸 물어보는 영상을 업로드했는데, 대화가 오직 일방향일 수밖에 없는 영상매체의 특성 덕분에 감염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채팅과 같은 양방향 비대면 접촉일 경우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과감한 해석을 시도하자면 이 바이러스는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러스가 퍼지고 난 후 사회는 급변했다. 사람들을 함부로 만나지 않게 되었고 만나더라도 함부로 물어보지 않았다. 불가피하게 "여쭈어"보거나, 차라리 정말로 물어버리는 사람까지 등장했는데 신기하게도 묾을 통해서는 전파되지 않았다. 오직 물음을 통해서만 전파되었고 그것은 사회관계망의 양상과 굉장히 흡사했다. 물음이 줄어들자 사람들은 모두 고립무원이 되었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에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었고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었는데, 이제는 묻고 싶어도 묻질 못 하니 궁금해 미칠 지경이라는 여론이 많았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일이 늘었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나,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작금의 사태를 통해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대유행이 마무리될 것을 기다리며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을 정리해보자는 캠페인이 한창이다. 나도 몇 가지 적어본다. 안녕하세요? 그간 잘 지내셨나요?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같이 이야기 좀 나누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