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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Aug 06. 2022

버튼곤충

버튼곤충은 어떤 선택이나 결정의 순간마다 출몰하는 절지동물이다. 말마따나 버튼과 같이 생겼기에 버튼곤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본적으로 양자택일에 앞서 한 개체가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튼을 누르는 것을 1 내지는 "예"로 처리하고, 반대로 일정 시간 누르지 않으면 0 내지는 "아니오"로 처리하는 알고리즘을 갖고 있다. 선택지가 여럿일 경우 (선택지의 개수-1)개의 버튼곤충이 나타나 모든 선택지를 각 버튼곤충의 눌림 여부에 대응시킬 수 있다. 각 선택 결과는 일종의 기저(basis)이며 함께 중첩된 세계를 구성(span)한다.


여러 선택이 동시에 요구될 경우 번식을 한다. 예컨대 n명이서 메뉴가 A, B 두 개뿐인 식당에 들어가 무조건 둘 중 하나를 먹는다고 하면 n마리의 버튼곤충끼리 뭉쳐 총 (2^n-1)마리의 버튼곤충으로 거듭난다. 각 버튼곤충은 선택지의 묶음에 대응된다. 첫 번째 버튼곤충은 n명이 모두 A를 먹음, 두 번째 버튼곤충은 첫 번째 사람만 B를 먹고 나머지는 모두 A를 먹음, ... , 마지막으로 아무런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은 n명이 모두 B를 먹음을 의미하는 식이다. 2^n마리가 아닌 (2^n-1)마리로 번식하는 것에 대하여 징그럽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영벡터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다.


한편 (2^n-1)마리로 번식하지 않는 경우도 왕왕 발견된다. 각 선택이 독립이 아닐 적에 그러하다. 위의 예에서는 n명 각각의 선택이 독립이기 때문에 넉넉히 번식하였다. 그러나 어느 둘이 영혼의 단짝이라 반드시 같은 메뉴를 먹어야겠다면 (2^(n-1)-1)마리로 번식할 것이다. 현실세계의 선택은 포함관계든 인과관계든 서로 맞물려 있는 경우가 허다하여 최댓값으로 불어나는 모습을 관측하기는 어렵다. 이는 각 평행세계가 독립이라기보다는 끈처럼 엮여 있는 복잡미묘한 관계임을 시사한다.


버튼곤충은 선택의 결론과 함께 자취를 감춘다. 후다닥 도망가는 경우도 있고 슬금슬금 자리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선택을 미룰 경우 선택을 내릴 때까지 사람을 쫓아다니지만, 그러다 다른 중요한 선택의 순간과 겹치는 때가 많아서 복잡하게 증식하기 일쑤이다. 이처럼 버튼곤충은 인간의 의사결정을 가시화하고 또 재촉하는 효과가 있다.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rustacea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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