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발자 꿀 Nov 07. 2021

스웨덴의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다 1편

쿵스레덴 / 준비물 챙기기와 일정

쿵스레덴 하이킹 준비부터 하이킹에서 있었던 일을 마음 가는 대로 적은 글. 매우 개인적인 감상과 아주 약간의 정보가 섞여있음.



2년 전 '스웨덴의 가장 높은 산을 가다'라는 제목으로 키루나(Kiruna)에 있는 케브네카이제(Kebnekaise)에 갔던 글을 올렸다. 글에 남긴대로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든 경험이었고, 주변에서 많이 읽어주고 좋아해 준 덕분에 간간이 여러 사람들을 통해 회자되어, 개인적으로 아주 특별한 여행으로 기억하고 있다.

스웨덴에는 Kungsleden(쿵스레덴)이라는 유명한 하이킹 코스가 있다. 스웨덴의 아주 북쪽 Abisko(아비스코)에서 시작해서 남쪽의 Hemavan(헤머벤)까지 내려오는 440km의 길로, 유럽에서 가장 넓은 자연보호지역이며 유럽에 마지막 남은 자연(the last wilderness in Europe)이라고도 부른다. 이 광활한 지역을 크게 4개로 나눌 때 가장 유명한 코스가 아비스코부터 케브네카이제까지 105km 길이다. 여기에 케브네카이제 등반은 포함되지 않지만 하이킹 도중 산의 바로 아래를 지나기 때문에 쿵스레덴 하이킹의 피날레를 케브네카이제 등반으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나는 이번 8월에 다시 그 지역을 찾았다.



두어 달 전에 갑자기 케브네카이제를 같이 갔던 A가 같이 쿵스레덴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을 때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무턱대고 좋다고 했다. A가 우리 둘 다 온콜이 아닌 것을 확인했다고 하기에 휴가가 얼마나 남았고 며칠 써야 하는지도 생각 안 했고 단 한 번의 검색도 없이 메시지를 보자마자 가겠다고 답장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 멤버는 나와 A 둘 뿐이다. A의 친구 D는 휴가를 길게 쓸 수 없어서 케브네카이제 등산만 하러 간다고 했다. 보통 북쪽 아비스코부터 시작해서 아래로 내려오는 방향으로 걷는데, D와 함께 가기 위해서 우리는 반대로 시작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같이 갔던 우리의 동료 F한테는 A가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사실 모두 그가 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나서 F를 못 만났고 A는 한 번 봤다고 하더라(A는 인싸임). F와 함께 가지 않는 대신 기차에서 다 같이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여담으로 나는 올해 4월에 오로라를 보러 아비스코에 갔다 왔다. 그리고 A는 작년에 혼자 케브네카이제에 가서 결국 정상을 찍고 왔다. 그래서 우리 둘 다 서로의 첫 번째와 세 번째 Lappland 지역 여행을 함께 하는 셈이다.


/// 준비물 챙기기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는 동안 준비는 거의 안 했다. 교통편 예약도 A가 전부 해줘서 제때 돈 만 보냈다. 사야할 것이 많은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새로 등산화를 사는 일 빼고는 닥쳐서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두 명의 다른 친구들이 나보다 1~2주 먼저 쿵스레덴에 가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한 명의 하이킹 준비썰을 듣던 날 정신이 퍼뜩 들었다. 한 달이 채 안 남았는데 날짜도 제대로 모르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준비다운 준비를 시작하기까지는 그 후로도 며칠이 더 걸렸지만...

제일 먼저 등산화를 새로 샀고 길을 들이려고 집 주변을 아침 저녁으로 걸어다녔다. 내가 산 신발은 Meindl이라는 브랜드의 발목을 덮는 고어텍스 등산화다. 처음에는 더 가벼운 신발을 골랐는데 매장 직원이 배낭이 무겁고 장기간 걸을 때는 다리를 잘 받쳐주는 두꺼운 신발이 좋다고 해서 거금을 주고! 좋은 신발을 샀다. 그리고 A가 미리 20km를 걸어서 길들이라고 해서 왕복 6km의 길을 몇 번 산책했다.

막상 하이킹을 가보니 나처럼 목이 긴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목이 짧은 등산화도 보았고 심지어 트레이너를 신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분명 장기간 훈련으로 단련된 사람들일 테고, 나의 경우 좋은 신발의 도움이 꼭 필요했던 것 같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이 지역은 큰 돌이 많아서 발목을 잘 잡아주지 않으면 쉽게 피로감이 온다.


모든 장비는 비에 대비가 필요하다. 쿵스레덴은 날씨가 들쑥날쑥해서, 일주일 남짓 일정 중에 비가 꼭 온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 먼저 하이킹을 떠난 친구들 모두 도중 비를 만났고 우리도 마지막 날 폭우 속에서 기차를 탔다.

고어텍스 소재의 아웃도어 재킷과 바지를 기본으로 입고 그 뒤에 덧입는 레인 팬츠와 우비를 따로 가져갔다. 원래는 입기 편한 판초를 샀다가 바람이 많이 불면 불편하다고 해서 재킷처럼 생긴 우비로 바꿨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게 걷는 동안 우비를 입을 일이 없었지만 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많이 불었다. 그래서 바람과 어느 정도의 비를 막아줄 수 있는 기능성 재킷이 있으면 유용할 것이다.


옷 이야기를 더 해보면. 짐 무게를 생각해서 입는 옷 한 벌과 여분/잠옷용 한 벌, 후리스 상의, 속옷과 양말 몇 개 - 추위를 많이 타면 껴입는 레깅스까지가 최소한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낮에 비가 와서 옷이 젖어도 밤에는 마른 옷을 입고 자고 최악의 경우 마른 옷을 바꿔서 입는 거다. 짐을 엄청 줄여서 가져온 A는 딱 이 정도로 챙겼고, 나는 살짝 더 많이 가져갔다.

* 기본 세트: 운동용 긴팔 상의, 등산 바지, 등산 재킷

* 따뜻한 옷: 울 소재 레깅스와 상의, 두꺼운 양말. 이 세트를 잠옷으로 입고 잤다.

* +1 세트: 편한 레깅스, 운동용 반팔 상의

* 얇은 후리스가 없어서 다운 조끼와 긴팔 다운 재킷을 가져갔다. 조끼는 하이킹 중에 추우면 재킷 안에 껴입었고 긴팔은 주로 밤에 입고 있었다.

* 속옷과 양말 여러 개

나는 추위 대비용 한 벌을 더 챙긴 셈. 얇은 운동용 긴팔은 h&m에서 저렴이로 하나 샀고 나머지는 가지고 있던 옷이었다. 다음에는 다운 재킷을 빼고 여벌 옷을 한 세트로 줄일 것 같다. 쿵스레덴 여름밤 날씨가 추운 것은 맞다. 하지만 날씨에 맞는 두꺼운 침낭과 나머지 옷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여벌 옷은 경험에 따라 상당히 다를 것 같은데... 우리는 운 좋게 비를 안 맞아서 옷을 하나도 안 버렸다. 재밌는 건 마지막 지점에 계획보다 하루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아비스코 STF에서 죽치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 샤워하고 마지막 남은 깨끗한 여벌 옷으로 갈아입고 지내는 기분이 좋긴 했다.


걷고 있는 나. 가방을 꽉 채워서 뒤에서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가방은 Osprey Ariel AG 65L 배낭을 샀다. 캐리어보다 백팩을 선호해서 오래전부터 커다란 배낭을 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구경하러 다녔다. 지금은 하이킹 시즌이 끝나서 전부 세일하는 것 같지만... 내가 가방을 보러 다닐 때는 작은 사이즈 배낭이 매장에서 많이 빠진 상태였다. 그래서 새 모델 Ariel Plus 60L를 정가로 부랴부랴 일단 샀는데, 전 모델을 인터넷에서 할인 가격에 찾아서 다시 주문하고 Ariel Plus는 환불했다. 마음에 두고 있던 가방은 사실 피얄라벤이었으나 직접 메어보았을 때 Osprey가 어깨가 더 편하고 등 사이로 공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어서 아쉽지만 포기. 그래서 배낭은 직접 착용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브랜드별 사이즈를 찾은 후 구입하기를 추천한다.


텐트와 주방도구(?)는 A가 가져와서 서로 가방에 나눠서 넣었다. 침낭과 침낭 매트도 A에게 빌렸다. 190cm짜리 남자용 텐트를 빌려주는 바람에 나한테 너무 길고 무거워서 따로 사지 않은 것을 하이킹 내내 후회했다! 열심히 말아도 얼마나 두꺼운지 매일 아침마다 온몸에 힘을 실어 배낭에 쑤셔 넣어도 다시 튀어나오는 침낭과의 전쟁이었다.

A는 침낭을 비닐에 한 번 넣어서 가방에 넣으라고 신신당부했다. A와 D가 작년에 하이킹 갔을 때 일주일 내내 비가 쉬지 않고 왔었는데 그때 침낭까지 전부 젖어서 축축하게 자던 기분이 최악이었다고 한다. 가방 앞을 레인커버로 덮어도 등을 타고 내려간 물이 가방 속으로 스며들어 침낭까지 젖은 거다. 침낭 커버가 완전 방수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고.


나머지 큰 짐은 거의 음식이었다. 아침으로 먹을 오트와 탈지분유, 견과류를 준비했고 점심과 저녁 식사는 freeze dried food(한국어로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을 먹을 건데 이틀 치, 총 4팩만 가방에 넣고 다니고 상점이 있는 STF 스테이션을 지날 때마다 보충하기로 했다. 그래서 초콜릿, 쿠키와 에너지바도 이틀 정도 먹을 수 있는 양만 미리 샀고 그밖에 인스턴트커피와 티백도 들고 갔다. 아비스코-키루나 지역은 스톡홀름보다 기온이 5~10도 낮아서 8월에도 눈이 올 수 있고 바람이 불면 금방 으슬으슬해진다. 그래서 완벽하진 않아도 따뜻한 음식과 차로 몸을 녹이는 일이 중요하다. 평소에는 차를 잘 안 마시지만 날씨가 춥다고 하니까 티백을 들고 갔는데 인스턴트커피보다도 더 잘 마시고 왔다.

돈을 아끼자면 음식은 미리 저렴하게 사서 전부 들고 갈 수도 있는데 우리는 가방 무게를 줄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비싸도 하이킹 중간중간 사는 것을 선택했다. 인터넷 할인가와 스테이션 판매가 차이를 2배로 잡아도 6000원짜리를 12000원에 사는 수준이므로 어쨌든 감당 가능한 가격이다.


A와 D의 배낭


A가 보내준 그의 하이킹 준비물 목록과 앞서 먼저 출발한 친구 한 명의 목록을 참고해서 자잘한 짐까지 전부 넣었을 때 가방이 13kg 정도 된 것 같다. 내가 출발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있을 때 친구가 키루나에 도착해서 연락을 줬는데 현지 날씨와 무엇이 없어서 아쉽고 유용했는지 알려준 게 많이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걷느라 힘들었을 텐데 내 생각을 해서 연락을 줬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마웠다.


이렇게 생기고 앞에 로고만 다른 것을 삼

친구의 말을 듣고 가장 마지막 순간에 구입한 게 무릎 보호대다. 그즈음에 수련하다가 무릎을 무리하게 꺾어서 가끔 느끼는 통증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무릎 보호대 이야기를 듣고 바로 샀다. 나이키 파텔라 밴드라고 무릎 아래에 묶는 얇은 보호대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많이들 쓰는 것 같지만 스웨덴 나이키에서는 팔지 않고, 대신 약국에서 비슷하게 생긴 제품을 찾을 수 있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하는 이유는 정말 무릎이 아팠고 이 밴드가 도움이 많이 되었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하루에 8시간씩 걸으면 없던 문제도 생길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다리가 아프던 안 아프던 무조건 아침부터 착용했다. 밴드를 차고 걸으면 몸이 앞으로 쏠릴 때 무게를 받는 무릎과 종아리 앞부분이 힘을 덜 받는 것 같다. 나는 막판 후반부에 계속되는 내리막을 걷던 날 무릎이 많이 안 좋아졌다. 다행히 계속 밴드를 차고 있어서 못 걸을 지경까지 가지 않고 하루만 더 걸으면 끝나는 거리였기 때문에 진통제로 버텼지만 여기서 하루라도 더 걸어야 했다면 진짜 힘들었을 것 같다.


/// 전체 일정


아침 8시부터 하루에 보통 19km를 걸었고 길게는 총 24km를 걸은 날도 있다. 내가 빨리 못 걸어서 3km/h가 우리 평균 속도였던 것 같다. 우리는 6일을 잡고 갔는데 생각보다 하루 일찍 트레킹을 끝마쳤다. 아비스코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당기지도 못해 마지막 24시간을 통째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테이션에서 어슬렁거리는 뜻밖의 여유를 누렸다.

날씨는 진짜 진짜 운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다. 딱 두 번 밤에 비가 내렸고 하루는 흐리고 추웠는데 그밖에는 낮 동안 맑고 따뜻했다. 그러다가 아비스코에서 기차를 타고 떠나는 날에 비가 엄청 내려서 비를 맞으면서 기차를 기다리던 순간에 유일하게 제대로 비를 맞았다. 계획대로라면 그날까지도 아침에 하이킹을 하고 바로 오후 기차를 타고 있었을 텐데 하루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날씨 고생이 전혀 없었다.


Day1 : Kiruna ~ Nikkaluokta ~ Kebnekaise station(19km)

Day2 : Kebnekaise ~ Singi(15km), Sälka 방향으로 3km

Day3 : ~ Sälka(9km), Sälka ~ Tjäktja(9km), 캠핑을 위해 1km 더 걸음

Day4 : ~ Alesjaure(12km), 보트로 6km 이동 후 12km 하이킹

Day5 : ~ Abisko station(16km)


아래 지도 읽는 법: 침대 모양 아이콘은 STF 스테이션의 위치이고 이곳들을 기준으로 하이킹 코스를 총 7구간으로 나눈다. 샾이 있는 장소는 (shop)이라고 적어두었다. 우리가 캠핑한 위치는 X로 표시했다.


다음 글로 이어진다.


/// 참고한 글


* Kungsleden Abisko–Nikkaluokta, STF 스웨덴어 페이지인데 정보가 가장 자세해서 첨부. 영어로 번역해서 보세요.


3 September 2021

#스웨덴 #쿵스레덴 #스웨덴하이킹 #스웨덴트레킹


작가의 이전글 컨셉진 스쿨 인터뷰 프로젝트 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