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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May 10. 2021

엄마의 사과, 홍옥

그 따스했던 어느 저녁을 기억하며

올해  어버이 날에도, 붉은 카네이션 한 송이를 샀다. 생전에 유독 꽃을 좋아하셨던 엄마를 위함이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그 붉은 빛을 보고 있자니, 사과 홍옥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엄마,그리고 어느 날의 홍옥.'


그날을 떠올리면 왠지 마음 한가운데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졸졸졸 4분의 3박자로 일렁이는 물은 햇볕을 받아 윤슬을 만들어 내는 장면이 그려진다.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억의 저장소에 기록된 가장 따스했던 하루였기 때문일 것이다. 막 대학 3학년을 앞둔 1월이었고, 바람에 닫힌 문이 세차게 덜컹댔던 겨울의 한가운데 자리한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오빠와 동생은 어디 외출이라도 한 것인지 보이지 않았는데, 추운 날씨 탓에 장사를 일찍 접고 들어와 분주히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의 넓은 등이 오래 부엌에 머무르던 날이기도 했다. 엄마는 워낙 입이 달아서 세상엔 맛없는 것이 없고, 입맛이 없는 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하는 분이셨기에, 늘 밥을 지을 때면 뒷모습에서도 흥이 느껴질 만큼 신나 하셨는데, 그날은 유독 더 그랬다.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그날의 저녁 상엔 엄마가 좋아하던 고등어자반 구이가 올라왔던 거 같다. 특유의 비릿하고도 구수한 향이 집안 전체에 퍼져 있었니까. 그리고 엄마의 전매특허 된장찌개도 빠졌을 리 없었다. 고등어자반을 굽는 날이면 영혼의 단짝처럼 등장하는 메뉴였으므로. 김장김치를 쭉쭉 찢어 양은 보시기에 담고, 구운 김과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트린 진간장도 준비한다. 좀처럼 보기 드물었던 엄마와 나, 둘만의 저녁식사가 그렇게 시작됐다.


엄마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이었다. 본인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법이 드물었고, 마음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는 표정의 변화를 읽어내기 또한 힘들었다. 한 마디로 무뚝뚝한 분이었는데 또 정은 많아서 , 요즘 말로 하면 '츤데레'(이 단어는 쓰기 싫지만 더 적확한 표현을 찾기 힘들어서)의 정석에 가까운 분이기도 했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엄마 딸이라 밖에서는 제법 상냥하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었지만 말수가 적었고, 아무리 식구라 해도 속엣말을 잘 내놓는 타입은 아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빠와 동생이 빠진 엄마와 나, 이 둘만의 저녁밥상엔 '침묵'이라는 반찬이 하나 더 추가돼 곧 체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들기도 했다. 침묵의 문을 어렵사리 먼저 연 것은 놀랍게도 박 여사, 우리 엄마였다.


"혜원아, 오늘 엄마랑 니, 둘이만 저녁 먹고 있으이 디기 어색하재?"


"응.. 뭐, 그렇지 뭐."


"그라마, 엄마가 옛날 얘기 하나 해주까? 재미가 있을까능 모르겠지만서도"


"뭐, 옛날 얘기? 엄마, 밥 먹다가 그런 얘기 들으면~내 체한다. 밥이나 다 먹고 해도"



실로 놀라운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까지 20년 이상을 엄마 딸로 살아오면서, 엄마의 지난 얘기를 그것도 당신 입으로 직접 말씀하시는 걸 들어본 기억이 당최 없었기 때문이었다. 간간이 두 분 외삼촌을 통해 엄마가 그 시절 여성들에게 잘 허락되지 않았던 고등 교육을 받았고, 서울로 올라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는 것, 전쟁통에 그 꿈이 깨지고 고향으로 피난을 내려와 선생님을 잠시 했다는 것, 딱  정도였다. 그래서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어릴 적부터 각성하는 데, 엄마의 지난 시절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었으니.


저녁 상을 물리고 설거지도 미룬 채 엄마는 부스럭 부스럭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시더니 거실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는 거였다. 세상에! 홍옥 사과였다. 요즘이야 숱한 개량종의 사과들이 판을 치지만, 또한 사과의 고장도 점점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내 고향 대구는 그즈음 까지도 사과의 산지로 꽤 유명했었는데, 그중에서 과즙이 달고 새콤한 '홍옥'은 진짜 그 어떤 사과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맛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홍옥이기에 가족 모두가 모이지 않으면 깎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엄마가 나를 위해 그 사과를 한 알도 아니고 두 알씩이나 들고 오신 것이었다. 홍옥 껍질을 길게 끊기지 않도록 깎으며 엄마는 천천히 그렇게 당신의 지난 시절, 10대와 20대 그 푸르던 시절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혜원아, 엄마는 일제 강점기에 학교를 다녔거등, 그때는 창씨개명이라는 걸 했다 아이가!. 그래가, 내 이름도 어짤 수 없이 일본식으로 바깠는데, 그게 '이노우에 후미꼬-ㄴ 기라. 이노우에 후미꼬. 사람은 하난데 우짤꼬,  이름은 둘 인기라..."


'이노후에 후미꼬.'......


난생처음 고백으로 훅 들어온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은 너무 낯설어서 쉬 발음을 해 볼 수가 없었다.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처음 마주한 비현실적인 이름이 더해지니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중간쯤에 걸쳐 있는 영화를 보는가 싶었.


"그래가 아인나, 학교에서는 무조건 이 이름으로 불러야 되는 라, 내가 없어지는 기지. 나는 박귀임인데, 와 이노우에 후미꼬로 불러야 되는지 너무 속이 상했는 라."


엄마의 얘기는 자주 단절됐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좀처럼 자식들에겐 눈물을 보이지 않는 강철 같은 분이셨는데, 이름 이야기를 하며 몹시도 울먹이셨다. 그래서일까, 엄마의 두꺼운 스웨터가 전등 불빛을 받아  한껏 더 낡아 보였다. 고동색과 황토색이 교차하며 직조된 그 낡고 두꺼운 스웨터는 엄마의 인생만큼이나 군데군데 보풀이 일고 올도 풀려 볼품이 없는듯 보였다.


얌전히 깎인 홍옥을 한쪽 베어 물고 엄마의 짓무른 눈을 쳐다봤다. 엄마의 눈은 여기저기 상처 난 본인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처진 눈꺼풀 위로 겹겹이 쌓인 고통과 질곡의 지난 날들, 광복의 나라에서 꿈을 맘껏 펼쳐보리라던 희망은 얼마 안 가 전쟁통에 사라지고 이노우에 후미꼬가 다시 박귀임이 됐지만, 엄마의 세월은 좀처럼 복구 되질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그런 세월을 그저 견디다, 다시 얻은 새 이름, '누구엄마'로 살아가는 것에 과연 만족하셨을까?




두 번째 홍옥은 서투르지만 내가 깎기로 한다. 엄마의 이야기는 내가 깎는 홍옥 껍질처럼 끊길 듯 다시 이어졌다. 이쯤 되니 슬며시 궁금해지는 것이다,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던 질문이 자연스레 입밖으로 나왔다.


"엄마, 아버지하고 왜 결혼했어?"


"너거 아버지가 좀 잘 생깄나! 잘나서 결혼했지. 눈 씻고 닦꼬 찾아봐도 대한민국에 그렇게 잘난 남자는 없더라꼬!"


'마야... 남사 시럽 구로', 난생처음 듣는 엄마의 결혼 이야기는 홍옥의 끝 맛처럼 새콤했다. 천하제일의 한량에 술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하지만 뛰어나게 잘 생기고 보기드문 피지컬을 보유했던) 향한 수줍은 사랑, 아버지 얘기를 하며 주름진 엄마 뺨에 어느새 홍옥빛 물이 드는 걸 목격한 건 아마 우리 삼 남매 중에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 순간을 돌이켜 보니 울다가 웃으면 몸의 은밀한 부위에 털이 난다는, 엄마의 경고 섞인 우스갯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훔치며 박장대소했던 스물 한살의 내가 거기에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기라도 할라치면 시시때때로 터져 오수가 새는 화장실이 있고, 그 옆엔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화단에 목련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으며, 도저히 겨울엔 샤워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목욕탕이지만 버젓하게 욕조까지 겸비한 이름만 2층 양옥집인 그곳이 난 참 좋았다. 왠지 그곳에서는 꿈도 희망도 2층으로 쌓아 올릴 수 있을 거 같아서. 내일을 조심스레 이야기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말이다.


가난하기만 했던, 가난의 언저리에서 자주 좌절하기만 해서 엄마의 지난 얘기 같은 것은 꺼낼 수도 없었던 집을 떠나 이사 갔던 곳, 가끔 옥상에 올라가 동네를 내려다보면 잠깐 부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던, 이사한 후로 조금씩 집안 형편이 펴지는 거 같은 몽상에 잠기기도 하던 그 집에서 , 엄마는 비로소 당신의 얘기를, 숨겨놓은 홍옥 한 알 같은 달콤 새콤한 얘기를 꺼내 놓으셨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겨울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던 그해 1월의 끝에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던 영롱한 추억. 다시는 오지 않을 엄마와 나, 오로지 이 둘만의 은밀한 역사는 이후 '어느 날, 어머니와 사과'라는 시로 탄생됐고, 한 문학상에 출품돼 내게 큰 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홍옥은 요즘 굉장히 귀한 사과가 됐나 보다. 홍옥을 사려고 여러 시장을 둘러봐도 잘 나오지 않는다는 대답이 거듭해 돌아올 뿐이다.  어쩌다 귀하게 얻은 홍옥을 먹을 때면 새콤달콤한 속살의 맛이 마치 우리 엄마의 인생을 은유하려는 듯해서 찔끔 눈물이 나기도 한다. 신맛에 지칠 때쯤 기가 막히게 꿀이 흐르는 단맛으로 신맛을 감싸며 중화시키는 홍옥의 과육. 엄마의 인생과 이야기를 닮아 있기에, 고스란히 담고 있기에 , 가슴 밑자리둥지를 튼 하나의 정물이 되고 말았다. 오래, 끝끝내, 사라지지 않을.


커버 이미지 출처/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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