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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Aug 10. 2021

삼복더위와 겨루기 한판, 녹두삼계탕

말복이니 먹어줘야지

여름이면 도시는 예외 없이 뜨거웠다. 아니, 뜨겁다는 표현은 너무 식상하다. 삼복무렵이면 가마솥에 들어간 것처럼 온몸이 삶기는 느낌마저 드는 분지, 그야말로 열기로 달궈진 거대한 무쇠솥 같았다. 런 도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말로만이 아닌 절실한 여름 보양식이 매년 필요했고. 삼복을 전부 삼계탕이니, 육개장이니 하는 보양식으로 채우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가난한 엄마에겐 쉽사리 허락되지 않던 일이었다. 하지만 여름 나무처럼 굳건한 당신조차 나기 힘든 혹서의 시간들을 입 짧고 병약한 삼 남매(당시에는 그랬다) 들이 잘~지나게 해 주고 싶으셨을 거다. 그래서 삼복 중에 하루, 말복이면 식탁 위에 등장하곤 하던 것이 바로 녹두 삼계탕이었다. 아무리 없이 살았어도, 이 간악하고도 무자비한 분지의 더위를 나려면 삼복 중 하루는 이렇게 녹두삼계탕으로 맞서야만 했었음이다.




요즘은 그 귀했던 인삼마저도 대량 재배되는 데다, 황기며 각종 한약재들을 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기에 풍부하고도 진한 국물의 삼계탕을 선호하지만, 지난날 우리에게 가장 근사했던 삼계탕은 녹두와 찹쌀이 들어있던 삼계탕이었다. 녹두는 본연의 성질상 열을 내린다고 알려져 있어서 사용했을 것이고, 찹쌀은 근기를 끌어내는 일등공신이어서 다른 때도 엄마가 즐겨 사용하시는 식재료였다. 녹두와 찹쌀, 그리고 시장닭집에서 사 온 제일 튼실한  닭 한 마리, 단출하고도 소박한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마의 온몸은 땀범벅이 되곤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태양이 이글거리는 하루 종일 , 그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을 석유곤로의 열기가 그득한 재래식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전 과정이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집 삼계탕을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은 닭도, 녹두나 찹쌀도 아닌, 바로 삼베로 만든 주머니였다. 어쩌면 주객이 전도된 일이었지만, 엄마는 이 삼베보자기를 신줏단지 모시듯 그렇게 소중하게 간직하셨었다. 요리 솜씨뿐만이 아니라 재봉 솜씨까지 좋으셨던 엄마는 뭐든 뚝닥 뚝닥 잘 만드셨는데, 낡은 삼베옷을 뜯어 만든 이 삼베 주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내가 아주 오랫동안 삼계탕의 주재료를 닭이 아닌 찹쌀로 알았을 만큼, 엄마는 삼계탕과 함께 끓여낼 죽에 정성을 기울이셨기 때문이다. 손수 만든 삼베 주머니가 터질 정도로 찹쌀을 채우고 이걸 닭과 함께 푹 끓여 내는 것이 엄마의 오래된 루틴이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삼베 주머니야 말로 애지중지하는 물건이 되었을 수밖에!




삼베 주머니에 깨끗이 불려 씻어둔 찹쌀을 미어터지기 직전까지 넣고, 녹두와 손질해온 닭도 씻어 물기를 뺀 다음 마치 경건한 종교의식을 치르는 제사장처럼 깊이가 꽤 깊은 양은솥에다 모든 재료들을 조심스레 투하한다. 인삼 대신 마늘을 듬뿍 넣은 엄마표 삼계탕은 이렇게 단순한 식재료들로 거의 마법에 가까운 맛을 내기 위한 경주를 시작한다. 이젠, 시간만이 변수로 작용할 뿐. 삼계탕이 불에 올려진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의 모시 적삼은 땀으로 흥건히 젖기 일쑤였다. 더위를 쫓아낼 음식을 마련키 위해 더위속으로 온전하게 들어간 엄마의 붉은 얼굴이, 가끔은 여전사처럼 보이기도 했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엄마! 닭 한 마리로 우리 식구가 다 묵을 수 있나? 모자라는 거 아이가?"

 

"하모, 묵고 말고, 쪼매 기다리 봐라, 디~기 맛있는 삼계탕이 될 끼다"


식구는 넷인데, 닭다리는 두 개밖에 없다는 걸 알고부터 나는 그 닭다리 두 개가 누구의 몫으로 돌아가게 될 것인지 궁금했었다. 일 년에 이 삼계탕을 구경할 수 있는 날은 삼복 중에서도 단 하루밖에 없었기에 닭을 좋아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몇 년을 알레르기로 고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보상심리' 같은 것이 작용했음인지

삼계탕이 끓여지는 동안,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닭다리 하나를 내 차지로 만들 것인지 우스운 고민을 하곤 했었다.


닭 한 마리에 녹두 찹쌀죽 10그릇이 나오는 삼계탕을 본 적이 있는가. 엄마가 끓인 녹두 삼계탕의 메인은 녹두도 닭도 아닌 찹쌀이었다. 닭 육수가 깊게 배인 찹쌀죽을 푸짐히 끓여 엄마 현대로 '여름 사람 근기'를 유지할 심산이었으니까. 오래 뭉근히 끓인 덕분인지 아니면 엄마가 우리 몰래 마법의 가루라도 넣었던 것인지, 엄마의 녹두 삼계탕은 국물은 물론이고 입안에서 야들야들하게 녹아내리는 살코기의 맛도 일품이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대청마루에 식구대로 앉아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구식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각자 앞에 놓인 삼계탕을 비우기 시작한다. 닭고기보다는 찹쌀이나 녹두가 더 많이 들어, 사실 탕보다는 죽에 가까웠지만, 가끔 나타나는 고기를 소금과 후춧가루로 만든 양념장에 콕 찍어 먹다 보면 길게만 여겨졌던 분지의 더위도 슬며시 꼬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곤 했다.




"아나, 암아! 니가 우리 집 대장이~ 까네 다리 하나 묵어라"


 "아입니더, 어무이 잡수이소"


"엄마, 나는? 내도 다리 한 개 도!"


"아이고 가시나, 욕심은 많아가지고, 알았다 이거 니 무라.

 니 마이 묵고 빨리 커라, 오빠야는 안무도 된다."


오빠에게 건네 졌던 닭다리 하나가 다시 동생에게로 간다. 닭다리는 분명 두 개뿐인데, 네 식구가 넉넉하게 먹을 수 있다던 엄마의 호언장담은 어느새 눈앞에서 현실이 된다. 어린 시절 단백질을 너무 빈약하게 섭취한 탓인지 닭고기와 돼지고기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았던 나조차도 이날만큼은 뒷 일 걱정은 접어둔 채 고기며 찹쌀죽까지 꼭꼭 씹어 넘기곤 했으니까. 입 짧은 삼 남매마저 사로잡은 엄마의 녹두 삼계탕을 먹다 보면,  등 뒤에 맺힌 땀을 마당 감나무 잎에 앉았던 바람이 식혀주는 최고의 간도 함께 맛보게 된다. 그래, 이런 게 피서지. 남들 다 간다는 해수욕장 한 번 가본 적 없고, 아이스박스에 수박이며 복숭아를 넣어 계곡으로 떠나본 적은 더더욱 없지만, 우리의 뜨겁던 여름은 상실과 부족함의 시간이 아니라 '안분지족'의 시간, 가진 것에 감사하고 나눌 줄 아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닭 한 마리와 함께 끓인 녹두 찹쌀죽을 내리 세끼를 먹어야 했던 우리 삼 남매는, 지금이야 녹두 삼계탕을 넘어 맘만 먹으면 전복에, 낙지에, 좋다는 건 다 들어간 해신탕도 무시로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애써, 없이 살았던 한 시절을 떠올리고는 한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은 없었어도 어떤 것에든 감사할 줄 알았고, 땀띠를 감수하며 불 앞에 서서 내 새끼들 입에 들어갈 녹두 삼계탕을 끓여내던, 엄마의 진짜 마음을 잃고 싶지 않기에. 서서히 희미해질지라도 영원히 우리 곁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소중한 기억, 그 무엇이 오늘도 우리를 든든히 지탱하고 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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