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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Jun 28. 2021

빗소리에 실려오는 흙내음의 맛, 부추전

이럴 땐 이런 음식/ 6월, 비의 행진이 시작될 때

아침나절, 원고를 쓰는 루틴을 충실하게 지키며 모니터 앞에서 인고의 일분일초를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마침 식목일이기도 해서 나무와 관련한 선곡도 몇 곡 하려던 참이었고. 전화가 미친 듯이 울렸다. 아시지 않는가, 같은 소리인데도 나쁜 소식을 담은 벨 소리는 정말 찢어지는 소리의 결을 가지고 있다는 걸.


친한 동무들과 여행을 떠나신다던 엄마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간헐적으로 이어지다 끊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요는, 기차 역 자동문 앞에서 넘어졌고 대퇴골절이 의심돼 병원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불행은 달리는 말보다 더 빨리 달려온다더니, 큰일이 닥칠수록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성정을 지닌 나도 이토록 삽시간에 닥친 예상치 못한 불행엔 넋이 나가버렸다. 원고고 뭐고 자릴 박차고 집을 나섰다.차로 겨우 십분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는 시간이 마치 무한대의 도돌이표처럼 어지러이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울면 안돼'.


엄마는 그렇게 수술을 받고, 경과를 봐 가며  길고 긴 재활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아 들었다.



병원생활이 몇 주간 이어지자 워낙에 수칙을 철저히 지켜 모범 환자로 대우받던 엄마에게도 슬~슬 병원밥이 물리는 시점이 왔다.


 "상추쌈 싸가지고 된장 얹어가 묵었으면 진짜 좋겠다."

로 시작된 엄마의 밥투정은 급기야


"야이야, 내 정구지 찌짐 좀 부쳐주면 안 되겠나?비도 요래 오고 기름에 지져가지고 뜨끈할 때 쫙~쫙 찢어묵으면 소워~~ 이 없겠다"로 이어졌다.


"엄마. 무슨 소리고! 엄마는 고혈압에 당뇨라서 철저히 식단 지켜야 된다. 퇴원 늦게 하고 싶나?"


"아따, 정구지 찌짐 한 장도 안되나?"


"절~대로 안된다"


엄마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더니, 이내 말끝이 흐려졌다. 비 오는 날엔 부추전이라는 견고한 공식이 무너진 건 둘째 치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자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 그렇게 말이다.


그로부터 보름 후, 엄마는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마의 몸 상태는 안 좋았고, 수술로 인한 장기입원 탓에 잘 관리해오던 지병들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깨져버린 것이다. 마지막 이틀 전에는 섬망 증세까지 보이시며 남아있던 한 줌의 희망도 놓아버리셨다.


장례를 치르고 우리 삼 남매와 식솔들이 모여 앉은자리에서 난 이 부추전 이야기를 꺼냈었다. 엄마가 마지막 소원으로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음식이 기껏 부추전이었다는 게 너무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깟 부추전이 뭐라고, 드시고 싶다면 드시게 할 걸. 뒤늦은 후회까지 밀려와 울음을 참아내느라 주먹을 손이 빨갛게 변해버린 것도 몰랐었다.


"할마시, 천국에서는 정구지 찌짐 실~컷 잡수소"


오라버니의 농 섞인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우세스러운 울음을 꺼이꺼이 울 뻔했다. 6월이었고, 막 장마가 시작되려는지 자주 바람에도 흙냄새가 실려오는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비가 무시로 내리는 여름날을 어떻게 견디라고, 비 오면 닭튀김 기름으로 바싹하게 부추전을 구워, 눅진해지기 시작하는 장판 바닥에 앉아 별 대화도 없이 먹기 바빴던, 그 소중한 시간들을 어떻게 잊으라고...... 엄마는 그렇게 허망히 가버리셨을까. 들어줄 이 없는 원망만 허공을 떠돌았다.


엄마에겐 마지막 소원이었고, 내겐 한으로 남아있는 부추전.  부추전에서는 오래된 슬픔과 지난한 가난의 흔적이 배어 나오곤 했다. 쿰쿰한 흙내음이 내재여름 부추전에서는 소나기가 한차례 거세게 지난 후의 흙냄새가 아주 조금씩 올라와 그리움으로 치환되기도 했다.


코를 최대한 쫑긋 기울여야만 맡을 수 있는 아주 희미하지만, 낮게 오래가는 흙내음.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그 오래전 시간들에도 비가 오는 날이면, 특히 부추가 지천이던 여름날이면 어김없이 부추전을 지져먹고는 했다.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기름 소리와 흡사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나 비 오는 날만되면 전을 떠올린다고도 한다. 오래전 내 어머니와 삼남매가 그랬듯. 믿거나 말거나.


엄마는 부침과 볶음요리용으로, 닭고기를 튀겨내고 거른 기름을 시장어귀 통닭집에서 사 오곤 했다. 닭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배어있던 그 기름은 시판되던 식용유에 비해 값이 쌌기 때문에, 가난한 내 어머니는 그 거무튀튀해져 다소 꺼림칙하게까지 보였던 닭튀김 기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지만.


하지만 의외로 이 닭튀김 기름으로 부친 부추전은 고소한 맛이 배가돼 풍미가 거짓말처럼 화려해졌다. 매사에 절약정신이 투철했던 엄마도 이 기름만은 아끼질 않았기에 부추와 밀가루 사이를 파고든 기름 맛 만으로도 내장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던 거 같다.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커다랗고 둥근 만능 프라이팬에서 부추전이 한 장씩 부쳐져 나오는 걸 아기새처럼 지키고 앉아있는 우리 삼 남매를 보며,  엄마는 어떤 생각들을 하셨을까? 기왓장이 깨져 비가 조금씩 새는 천장이나, 꺼진 지 오래된 마루, 비 오는 날이면 더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재래식 화장실 걱정도 잊은 채..


'내 새끼들 배는 안 곯게 해야지 우짜든 동'이라고, 예의 강인한 마음을 품지 않으셨을까. 생각해보니 내 어머니는 여리면서도 강한 부추를 참 많이도 닮았구나, 싶다. 그래서 그렇게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정구지 찌짐'을 외치셨던 건지도 모르겠다.



다시 비 소식이 들려온다. 부추에 매운 고추를 종종 다져 넣어, 전 한 장 얼른 만들어야겠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엄마의 소원풀이용으로. 제사는 지내지 않지만, 엄마가 보시고 계실 거라는 맘으로, 못난 딸이 9년 전 부쳐 드리지 못한 부추전 한 장, 어서 식기 전에 드시라고 투정도 좀 부려볼 참이다.


노파심에 덧붙여 놓는다. 찍어먹을 장으로는 초고추장보다는 초간장을 권한다. 부추가 고추장보다는 간장과 더 잘 어울린다는 내 어머니 당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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