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건대, 엄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굉장히 술을 좋아하고 그것도 아주 잘~마시는 사람인 줄 알고 있었어. 물론 의사 선생님의 처방으로 술을 멀리하고 산 세월도 꽤 된다만, 그 와중에도 여전히 밤을 새 가면서 술을 마시던 청년기의 호기로, 언제든 마음만 먹는다면 그렇게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거지.
하지만 세월이 가져온 여러 가지 변수를 감안하지 않은 최근의 음주는 엄마를 술 앞에 기어코 무릎 꿇게 만들었구나. 참담했단다. 소맥 한 잔에 눈앞이 아득해지고 500ML 맥주 한 캔이 엄마에겐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는 악마의 음료였다. 이런, 이런~!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그렇지, ‘술판에선 네가 위너’ 라도 치켜세워주던 선후배, 친구들이 이걸 알게 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인가.. 잠시 고민이 되기도 했었다.^^
가정을 꾸리고 너를 키우면서 자연스레 술자리도 멀리하게 되었고,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키친 드렁커’야말로 엄마가 가장 경계하는 모습이었기에 더더욱 이렇게 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잠시 한숨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그럼 이제 주종을 바꿔 한 번 마셔보지 뭐!’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뭐니!
작은 냉장고에 가득 쟁여진 와인 한 병을 따고 잔에 얼음을 몇 알 띄운 다음, 구운 치즈를 곁들여 마셨더니,
그 맛이 그야말로 ‘천하일미’ 더라고.
사실 엄마는 와인이나 보드카, 진 같은 양주는 너무 부르주아적이라 단정하고 ‘나의 술’ 이 아니다 싶었단 말야.
그런데, 그건 어쩌면 오만이었고, 겸손하지 못한 태도였다 싶네. 어떤 술이 됐든 딱, 기분 좋게 마실 수만 있다면 끊고 맺을 때를 알고 조절할 수 있다면, 종류는 별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에도 마침내 닿았단다. 이러면서 사람도 술처럼 시간을 기다려 진한 향기를 품으며 숙성이 돼 가는 것일 수도 있겠지! 물론 모든 술과 사람이 다~ 숙성을 통해 멋있게, 또는 맛있게 완성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오늘은 무슨 연유인지 장식장에 모셔만 놓았던 프랑스산 브랜디를 따, ‘온 더 락스’로 혼술을 즐겨보기로 한다. 가장 취기가 기분 좋게 올랐을 때 부를 노래 한 자락, ‘취한 것들이 다 취해서 대지에 스러질 때, 취하지 않은 내 손으로 등불을 켜리라 ‘를 되뇌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