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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Mar 30. 2023

꽃몸살이라구요?이 노래를 처방합니다

버스커 버스커의 <꽃송이가>

남도엔 봄꽃들이 이미 찬란하다. 만개한 꽃들이 반가운 봄비에 그새 질까 안절부절 며칠을 서성인 것도 잠시. 하늘도 내 맘을 읽으셨는지 구름이 걷히고 날도 제법 따뜻해져 벚꽃들이 앞다퉈 제 빛을 한껏 뿜어내는 중이다. 4월 초나 돼서야 구경할 수 있던 벚꽃이 이토록 지천이니 도시 곳곳의 포토존엔 부지런한 사람들로 요 며칠 밤낮이 없을 정도다. 나도 그들을 따라 꽃그늘아래 짐짓 꽃인양 포즈를 취해 본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이 어디 한 두해 일까마는 해마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꽃들을 보면 나는 으레 몸살을 앓곤 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유독 봄꽃이 필 무렵마다 며칠씩 앓아눕고는 했다. 봄을 타서 그런 것인지 나이가 들대로 들어도 생일 무렵이면 마음 한쪽이 허해져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앓는 나를 두고 엄마는 '꽃몸살'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꽃몸살' 이라니! 듣기에 따라서는 괜스레 얼굴이 붉어질 수도 있는 표현 아니던가. 꽃을 보지 못하면 안달이 나 몸에 신열이 끓고 기운은 있는 대로 다 빠져나가서 흐느적거리는 딸이 내 어머니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앓던 그 '꽃몸살'을 유독 심하게 겪은 한 해가 있었다.



아이가 재수를 떠난 바로 그 해였다. 낯선 도시에서 재수학원과 학사를 오가며 잘 적응하나 싶었는데, 어느 하루 사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oo이가 독감에 걸렸어요. 열이 많이 나고 몸살기운이 심해서 병원에 데려갔다 왔습니다."


감정이 극도로 배제된 사무적인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가슴으로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체력이 대단히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엄마 밥을 먹으며 집에서 공부할 때는 걸려본 적이 없는 독감이었다. 아이의 상태가 궁금했고 걱정스러웠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읽은 아이가 발 빠르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엄마. 나 열이 좀 높고 목이 아픈데 약 처방받아서 먹었더니 훨씬 좋아졌어. 며칠 쉬면 괜찮을 거래'


그냥 감기도 아니고 독감인데, 그것도 집을 떠나 멀리 있는 상황인데 아이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스무 살이 되면 성인이니 웬만한 건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다짐에 금이라도 갈까 싶어 아이는 전에 없이 단호했다. 지금이라도 올라가서 간호를 해줄까 라는 내 청을 무 자르듯 거절했고 보이지는 않지만 손사래도 치는 것처럼 여겨졌다. 아이는 지독한 병증을 홀로 이겨내며 그렇게 어른이 돼 가는 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봄이었고, 아직은 꽃샘추위로 가끔 어깨가 동그랗게 말리는 날들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날 무렵 무슨 조화 속인지 내가 앓아눕게 됐다. 아이가 아프다는 기별을 받았을 때부터 내가 믿는 신에게 '아이가 한창 중요한 시점이니 하실 수 있다면 아이 대신 내가 아프게 해 달라' 기도를 드렸었다. 신은 어미의 기도에 곧바로 화답하시고 싶으셨나 보다. 으슬으슬 몸이 추워지더니 온몸이 방망이로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늘 앓던 '꽃몸살' 이겠거니 싶었는데  열이 39도를 넘어서더니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할 정도로 무게감이 사지를 짓누르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독감이 시공을 넘어 아이에서 내게로 전송돼 온 것이 틀림없었다. 병원에 갈 힘도 없어 동생에게 약을 처방받아 오라 당부하고 사흘을 꼼짝없이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리를 보전하고 말았다. 땀은 폭포수처럼 흐르는데, 자꾸만 추워서 두꺼운 이불에다 담요까지 덮고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눈알이 빠질 것 같고, 귀에는 이명이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이대로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와중에도 노래를 들어야겠다 싶었다. 비록 가사에 집중할 수 없을지라도 멜로디의 위안이 아픈 몸을 치유해 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내겐 있었기에.


배드민턴 치자고 꼬셔
커피 한잔 하자고 불러
동네 한 번 걷자고 꼬셔
넌 한 번도 그래 안 된다는 말이 없었지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네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 꽃 한 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구나

거리에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그 길에 사람들
그래 나는 네게 얼마만큼 특별한 건지
그게 어려운 거야 그게 어려운 거라
그게 어려운 거야

맛있는 거 먹자고 꼬셔
영화 보러 가자고 불러
단대 호수 걷자고 꼬셔
넌 한 번도 그래 안 된다는 말이 없었지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네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 꽃 한 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구나

거리에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그 길에 사람들
그래 나는 네게 얼마만큼 특별한 건지
그게 어려운 거야 그게 어려운 거라
그게 어려운 거야
좋아 좋아 하모니카 솔로

꽃송이가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네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 꽃 한 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구나

거리에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그 길에 사람들
그래 나는 네게 얼마만큼 특별한 건지
그게 어려운 거야 그게 어려운 거라
그게 어려운 거야/ 버스커 버스커, <꽃송이가> 가사


그 무렵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막 이름을 알린 버스커버스커 1집을 듣던 중 노래 '꽃송이가'에서 잠시 숨이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꼬박 나흘을 바깥출입을 못했기에 꽃이 피는지 지는지도 모르고 퀭한 얼굴로 누워있는 내가 서러워서 말이다. 찔금, 눈물이 흘러나왔다. 흐드러진 꽃들 사이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창을 열면 어지러운 꽃사태가 우르르 덮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구나'라는 가사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이어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겼다. 머리카락은 떡이 졌고, 입술은 허옇게 일어났지만 '그 길에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의 현란한 발자국 소리에 나도 끼고 싶었다. '꽃몸살'을 꽃무지 아래서 훌~훌 떨쳐내고만 싶었다.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슬리퍼를 끌고 나간 아파트 앞마당에는 어느새 벚꽃이 찬란했다. 아팠던 사나흘 사이에 꽃망울을 터트리고 세상 도도한 자태로 지나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기운이 하나도 없어 발자국을 뗄 때마다 몸이 휘청거렸지만 그날 오래 앉아있던 꽃그늘엔 어떤 치유의 손길이 함께 머물렀음이 분명했다. 벚꽃이 만개한 날이었고, 어김없이 찾아온 꽃몸살을 지독하게 앓고 난 오후였다.



'꽃송이가'는 벚꽃 시즌이면 언제나 신청곡 1위에 빛나는 노래 ' 벚꽃엔딩'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노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벚꽃이 활짝 핀 봄의 한가운데 들어서면  '꽃송이가'를 제일 먼저 찾아 듣는다. 아마 가장 심한 꽃몸살을 앓았던 해에 다가온 이 노래의 의미가 남달라서일 것이다.


다른 해보다 일찍 시작된 벚꽃의 개화가 빠르게 위로, 위로 선군처럼 진군하고 있다. 꽃이 핀다는 소식에 가슴이 떨리는가 싶었는데 이곳엔 여린 꽃잎들이 떨어져 봄바람에 흩날린다. 며칠 지나지 않아 서울 사는 아이의 눈에도 벚꽃물이 흠뻑 차오를 것이다. 그때 아이가 주저 없이 '꽃송이가'를 제일 먼저 들었으면 좋겠다.


노래는 '시간과 공간'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내 꽃몸살을 낫게 해 준 그때 그곳의 '꽃송이가'는, 내일의 누구에게로 건너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각각의 이야기는 만나서 흐르고 흘러 노래의 바다로 다시 스며든다. 노래의 선순환이다.


꽃이 피고 지는 일 또한 거룩한 생의 선순환이지 않을까. 절정에서 만개했던  꽃이 져야 잎이 나고 계절이 바뀐다. 다가올 것들을 위해 고요히 물러나는 것이다. 꽃이 진다고 해서 슬퍼할 일만은 아닌 이유다. 속절없이 지는 것이 어디 꽃뿐이랴. 지는 꽃 따라 세월도 함께 이우니, 계절을 담은 노랠 들으며 우리도 지고 노래처럼 다시 어느 봄에 또 피어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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