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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벌 Sep 13. 2023

시즌방을 하지 않기로 한 이유

(1)

 2223시즌에는 스키장에 가지 않을 계획은 아니었지만, 시즌방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타인과 주말마다 같이 생활하는 것은 일상에 큰 즐거움을 주지만, 생각이 많고 예민한 나에게는 스트레스가 동반되는 일이기도 했다. 


 보드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보드를 타는 재미가 우선순위였기 때문에 다른 것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간 보드를 탔지만 체력도 부족하고, 겁도 많아 라이딩 실력이 영 늘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보드를 타는 즐거움이 많이 줄어들었다. 시즌방 때문에 그냥 의무적으로 타고 오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삼십 대가 되니 주변에 결혼하는 친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대화의 주제가 대부분 결혼밖에 없었다. 겨울마다 스키장에 가는 게 좋긴 하지만, 가끔은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결혼은 최대한 늦게 하고 싶었는데도 어쩐지 혼자 멈춰 선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유난히 시즌방에서는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질 못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인생을 혼자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게 불편하다.


 아마도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데 익숙지 않아 그런 듯하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에는 언제쯤 편해질 수 있을까.




(2)

 차를 산다는 건 돈을 지불하는 대신 이동의 자유를 얻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차가 없기 때문에 혼자서는 스키장에 갈 수 없다. 누군가의 차를 차고 보드용품과 여러 짐들을 옮겨야 한다. 셔틀이 있긴 하지만 스키장과 시즌방은 차로 10분 정도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걸어갈 수는 없다. 


 보통 나는 지인들의 차를 타고 편안하게 이동하고 있다. 차를 얻어 타며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고 괴롭다. 매 겨울마다 ‘언젠가 꼭 내 차를 사리라’ 마음먹는다.


 데크 왁싱/스크래핑하기, 데크에 바인딩 장착하기, 바인딩에 부츠가 찰떡같이 들어가도록 스트랩 조절하기 등등, 안전한 보딩을 위해서라도 보더는 스스로의 장비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시즌방에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굳이 할 생각을 안 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장비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게 처음에는 유난히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혼자 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장비 관리는 체력과 힘을 요하는데, 단순히 힘들다는 이유로 시도조차 안 했던 것이다.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불편했던 부분을 이렇게 적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조금 정리가 된다.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나 제3자의 시선으로 보는 느낌이다. 어쩐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여러 스트레스를 감수할 만큼 더 이상 스노우보드가 내 눈빛을 반짝이게 하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보드와 잠시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할 것 같다.




(3)

 2022년 겨울에는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처음 독립출판 전시도 다녀오고 나서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일까 고민하다 첫 번째 떠오른 건 ‘스노우보드’였다. 시즌방을 하기 싫어하면서도 스키장을 안 가겠다고는 절대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며, ‘어떻게 해야 스노우보드에 대한 열정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동안 보드를 타며 있었던 일과 내가 느꼈던 감정을 돌아보았다. 나는 어쩌다 보드를 타기 시작했고, 왜 여태까지 보드를 탄 건지. 보드를 타면서 무슨 일이 있었고, 나는 그때마다 무슨 감정이 들었는지…. 그렇게 돌아보다 보면 다시 보드를 즐겁게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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