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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구르벌
Sep 13. 2023
장비 관리는 왜 이렇게 힘들까?
(1)
데크의 베이스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왁싱을 해 줘야 한다. 시즌방 사람들이 하는 걸 자주 봤지만 어쩐지 내가 하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짝꿍, 내 데크 왁싱이랑 스크래핑 좀 해 줄 수 있어? 이제 할 때가 된 것 같아!”
“싫~~ 은~~ 데~~?!”
내가 할 줄 모르니 나름 조심스럽게 물어본 건데. 장난스럽게 싫다고 대답하는 짝꿍에게 약간 서운하기도 했지만, 오늘 좀 피곤한가 보다 하고 더 말하기를 포기했다.
다음 날 오전, 시즌방에서 쿨쿨 자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짝꿍이 말했다.
”구르벌 씨 데크도 왁싱해 줄까?”
잠결에 갑자기 서운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니, 됐어. 필요 없어.”
“응~? 내 거 오늘 하는 김에 해 줄게…?”
“아, 필요 없다고!! 안 할 거야!!”
“왜 그래~? 왁싱할 때 된 것 같던데~?”
“왁싱 평생 안 할 거야!! 저리 가, 나 다시 잘 거니까 건들지 마!”
잠이 깨고 나서 짝꿍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어제 사실 조금 서운했었는데 피곤한 것 같아서, 표현을 안 하고 참았더니 잠결에 서러웠던 마음이 갑자기 커졌어, 미안….’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부끄러워서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언젠가 이 글을 짝꿍이 보겠지? 미… 미안해 짝꿍….)
그래도 지금은 왁싱을 할 줄 압니다.
(2)
보드를 타다 보면 가끔 스키장에서 데크 시승 행사가 열린다. 그날은 마침 내가 타 보고 싶었던 브랜드의 데크가 시승 행사를 한다길래 아침 일찍 스키장으로 갔다.
데크를 시승해 보려면 내 바인딩에 빌린 데크를 체결해야 하는데, 나는 하는 방법을 몰라서 짝꿍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리프트 바로 앞 행사장에서 원하는 길이의 데크를 빌려 짝꿍이 바인딩을 묶어 주고 있었는데, 행사 담당자가 우리한테 말을 걸었다.
“여자 분이 데크 시승해 보시는 거예요?”
“네, 맞아요. 제가 타 보려고요.”
대신 바인딩을 묶어 주는 내 짝꿍을 보며 그 남자 직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남자친구이신가 보네요? 아이고, 힘드시겠다. 제가 이래서 여친이나 여사친들 데리고 보드 안 탄다니까요? 하하하!”
“제가 잘 못하기도 하고, 손에 힘이 없어서요. 하하하….”
왠지 찝찝한 기분을 뒤로한 채 일단 데크를 시승해 보고 시즌방으로 돌아왔다. 방에서 쉬다가 시즌방 멤버 미쉐린에게 오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나 아침에 데크 시승했거든? 근데 짝꿍이 내 바인딩 묶어 주는 걸 직원이 보더니 나한테 이래서 본인은 여친 데리고 보드 안 탄다고 그러더라?”
“헐? 그거 약간 선 넘는 발언 아닌가?”
미쉐린에게 얘기를 하고 나서야 알았다. 직원이 던진 말이 내 자존심을 건드려 기분이 나빴다는 걸. 그의 말에 웃어 준 걸 후회했다. 나는 당연히 기분이 나빴어야 했던 게 맞다.
여태까지는 시즌방 사람들이 도와주니 스스로 해 볼 생각을 안 했는데, 이날 이후로 장비 관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힘들어서 도움을 청할지언정, 할 줄 몰라서 도움을 받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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