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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Jul 05. 2024

유저(user)를 찾습니다.

사무라이의 꿈

나는 사무라이다. 아마도 마지막 남은 사무라이인 듯하다. 나는 길고 긴 외로움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언제 끝나게 될지도 모르는 깊고 끝없는 검은 공간에 갇혀있다.




그전에 잠시 나를 소개하겠다.

나의 아버지는 가이겐씨의 명문 다케다가의 제18대 도슈(当主)로 가이를 통일한 전국 다이묘로서의 지위를 확립한 용장이다. 아버지는 12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나는 그중 막네인 다케다 노부키요이다. 보통 나를 노부키로 부른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뛰어난 칼솜씨로 아버지의 주목받아왔고, 많은 형제자매의 질투와 시기를 받으며 자라왔다. 나의 칼솜씨는 빠르기가 바람과 같고, 고요하기는 숲과 같다. 치고 앗을 때는 불같이 하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처럼 한다. 숨을 때는 어둠 속에 잠긴 듯하다가도, 움직일 때는 벼락 치듯 적에게 손쓸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내가 휘두른 모든 것은 푸른빛과 함께 번쩍이며 갈라진다. 사방으로 튀는 붉은 피는 아름답기까지 한다. 나는 모든 사무라이중에서도 가장 정상에 솟아 있었다. 모두들 나를 우러러보았으며 미래를 이끌 운명의 영웅이라 생각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진 말이다.


때는 1554년 음력 4월, 가와나카지마 전투에서였다. 무라카미 요시키요의 요청을 받아 5천의 군을 이끌고 시나노 가와나카지마로 출병한다. 그날 우리는 승리를 거두었다. 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휘두르며 도망가는 적장을 쫓고 있었다. 적장의 목은 승리의 증표였기에 나는 적장의 목을 받아내기 위해 끝까지 추격했다. 적장은 거대한 숲 속으로 도망쳤다. 나는 그를 쫓고, 쫓고, 쫓았다.  하지만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적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를 놓칠 수 없어 깊고 어두운 숲 속 깊숙이 따라 들어갔다.


날이  어두워져 더 이상 눈앞이 보이지 않을 때쯤, 몸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쯤, 나는  추격을 포기하고 어느 바위에 몸을 기대어 누웠다. 그 자리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크고 하얀 달이 보였다. 달이 눈앞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얀 옥토끼가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깜빡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꿈을 꾼 거 같았다.  그곳에서는 나는 최고의 사무라이가 되었고, 모든 백성들이 나를 숭배했다. 나를 향해 머리를 숙였고, 나의 말 한마디에 수천 명의 사무라이들이 무릎을 꿇었다. 나는 가슴이 떨렸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까지 흘렸다. 그때였다. 하늘 어디에선가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렸다.


" 자! 노부키 오랜만이야. 시작해 볼까"

나는 생각했다.


"노부키? 누가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거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것이라 생각했다. 얼굴을 꼬집어보고 칼집으로 머리를 힘차게 내쳤다.


"아얏!. 뭐지 꿈이 아닌데."


그때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뭐 해.  빨리 일어나"


이상한 일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움직였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 채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좌우, 위아래로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칼을 꺼내 마음대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는 거지?"

또다시 하늘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몽골군의 침략으로 점령당한 성을 구할 거야. 힘내보자고!"


그리고 나는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다. 근데 이상했다. 아무리 뛰어도 숨이 차지 않는 것이다.  몸은 깃털처럼 가볍고, 힘은 무한대로 넘쳐나고 있었다. 커다란 장애물이 나타나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고, 깊은 강이 나와도 물고기처럼 수영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뛰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물을 마시지 않아도 목이 마르지 않았다. 사냥을 해서 가죽을 얻고, 나무를 베어 목재를 구하면 마을에 있는 상인을 찾아가 원하는 무기와 갑옷을 구할 수 있었다. 또  적을 죽이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신기했다. 길고 긴 고통의 수련기간이 없이도 말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사무라이로서 더 강하게 성장하게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한참을 뛰어가니 하늘의 목소리가 말한 성이 나왔다. 성 주변은 몽골군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안에서 고문을 당하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 뭐지. 이 몽골 놈들. 감히 내 백성을"


나는 화가 났다. 지금이라도 당장 성 안으로 달려들어가 적의 목을 베어내고 싶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몸이 굳더니 손가락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하늘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이! 엄마한테 들켰다. 미안 다음에 보자고"

라는 말과 함께 나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생각은 할 수 있으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세상도 그렇게 멈추어 버렸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눈앞에 적을 두고, 고통을 겪는 나의 백성들의 비명소리를 듣고서도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고통스러웠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민족의 영웅, 최고의 사무라이 노부키의 자존심은 짓밟히고 뭉그러졌다. 움직일 수 없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때였다. 번쩍이는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를 '유저'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를 조종하는, 나를 이끄는, 사무라이의 정신의 원천 같은 신으로서 말이다. 드디어 유저가 돌아왔다.


유저는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였다. 칼을 휘두르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각종 무기들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훈련이 끝나고 몽골군을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성 입구의 감시병을 쓰러트렸다. 또 달려드는 몽골군을 단칼로 베어내었다. 그때마다 사방으로 튀는 붉은 피가 내 얼굴에 묻었다. 나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희열을 느꼈다.


"그래 내가 바로 최고의 사무라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는 분명  이 시대 최고의 사무라이다. 현란한 칼 솜씨와 뛰어난 지력을 가진 최고의 무사란 말이다. 하지만 유저는 나의 장점을 전혀 사용할 줄 몰랐다. 강력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도 유저는 단순히 칼을 이리저리 휘두르고만 있었다. 그러다 몽골군의 칼을 맞기도 하고, 내가 휘두른 칼을 몽골군은 간단히 막아내기도 했다. 전투력이 낮은 몽골군은 어찌어찌하여 가볍게 처치한다 쳐도, 장군급의 몽골군은 단순히 칼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는 죽일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적의 칼을 맞고 죽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또 깨어났다. 똑같이 허술한 칼을 휘두르고, 또 반복적으로 죽고 말았다. 며칠을 그렇게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똑같은 자리에서 죽고, 다시 일어나고, 또 죽고 또다시 일어나고를 반복했다. 내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심하기도 했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최고의 사무라이 '노부키'로서 말이다.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유저가 들어왔다. 그날은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바보야. 아직도 여기까지밖에 못 왔냐? 내가 하는 거 잘 봐라"


다른 유저가 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찌릿함을 느꼈다. 온몸의 근육이 새로 태어난 거 같았다. 내가 가진 현란한 칼 솜씨를 새로운 유저는 마음껏 부렸다. 팔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적의 팔이 잘려나가고, 적장의 목이 떨어졌다. 나는 단숨에 성을 함락하고 고통을 받던 백성들을 구했다. 그래 역시 나는 최고의 사무라이다. 그러데 문제가 있었다.  내가 아무리 백성들을 구출하고 몽골군을 죽였어도 누구 하나 진심으로 고마워하거나  기뻐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힐뜻 쳐다보고 지나갈 뿐이었다. 간혹 고맙다고 말을 하는 이가 있어도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나리 살려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멀뚱멀뚱 앞만 보고 서 있을 뿐이다. 나는 더 많은 대화를 싶었다.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고 싶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알았다.

이곳은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문제는 또 있었다. 바로 유저였다. 나의 유저는 나를 다루는 실력이 형편없었다. 매일 같이 나와 함께 사냥을 하고 적을 죽이고 사람을 구하려 다녔는데도 실력이 늘지 않았 다. 그는 계속 나를 죽이고, 살리고를 반복했다.

나는 하늘의 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하얀 옥토끼가 보였다. 그리고 옥토끼는 나를 보고 말했다.


"너의 소원은 무엇이니? 내가 소원을 들어주겠다."


나는 소원을 빌었다.


"제발 다른 유저로 바꿔주세요"


그리고 얼마 후 당근마켓이라는 곳을 통해 새로운 유저가 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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