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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Jun 07. 2024

무당이 되고 싶은 남자, 신이 되고 싶은 귀신(1화)

무당이 되다.



남자는 무당이 되고 싶었습니다. 무당이 된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는 무당이 되기 위한 아무런 조건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남들이 흔히 앓던 무병도 없었을 뿐더러 사람의 마음을 선취할 수 있는 눈치도 없었습니다. 그는 서른이 넘었지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작은 소일거리를 하는 것도 귀찮아하는 게으름뱅이였습니다. 


"아이 씨. 무당이 되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을 텐데.“


그는 하루 종일 집안에서 영화만 보고 있었습니다. 나이 든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면 감지 않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모니터 화면만 보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였습니다. 

근데, 그의 방은 신당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가 모시는 신들의 모형이 있었고 부채와 방울이 작은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에이고, 저 사기꾼“


사기꾼.... 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사기꾼이라 불렀습니다. 그가 신점을 봐준다고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맞춘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럴듯한 말도 할 줄 몰라 어물쭈물하기가 일 수였습니다.


1년 전이었습니다. 그는 전국을 돌며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녔습니다. 만나는 무당마다 그를 보며 신이 보인다며 무당이 될 팔자라고 했습니다. 내림굿을 받아 신을 모셔야 할 운명이라고 했습니다. 남자는 무당들의 말에 혹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 나는 이제 무당이다. 드디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고, 신을 모실 수 있다.“


그렇게 남자는 어느 신어머니를 만나 내림굿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자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어머니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지금 누가 말하고 있느냐? 하고 물어보았지만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신이 보인다고 말이죠. 


그의 일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신어머니는 기도를 정성스럽게 올려야만 신이 찾아올 것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급했던 그는 아무런 능력도 없이 신당을 열었습니다. 이제 막 신을 받은 애동제자라며, 가장 영험하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물밀듯이 찾아왔습니다. 정치인, 연예인, 사업가. 심지어 해외에서까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은 뚝 끊겼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것은 ‘사기꾼’ 이라는 각인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반박할 힘도, 개선거리도 없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숲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유명한 기도터에 찾아가 기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신이 꼭 찾아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는 중얼거렸습니다.


"분명 내림굿을 받았는데. 왜 아무것도 안 보이지? 이상하다. 신어머님은 분명 나는 신을 모시고 살아야 할 무당 팔자라고 했는데..“


그때 그에게 떠오르는 말이 있었습니다. 신어머니는   숲 속 깊숙한 곳에 무당이 살았던 집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어머니는 절대 그곳에 찾아가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사람이 가지 않는 곳이니 절대 가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한번 가보기나 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는 무작정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등산로를 따라가다가 산 중턱쯤 작은 길로 빠지면 길 없는 길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쭉 들어가면 두 개의 바위가 보이는데, 그 바위를 돌면 토끼를 닮은 하얀 돌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남자는 신 어머니에게 들은 대로 그 길을 찾아갔습니다. 돌고 돌아 드디어 토끼를 닮은 하얀 돌을 찾았습니다.  그 돌은 마치 작은 소녀의 뒷모습과 닮았습니다. 남자가 그 돌에 다가가자 토끼를 닮은 하얀 돌은 살아있는 생명처럼 어디론가 툭 하고 뛰쳐나갔습니다. 남자는 깜짝 놀랐지만 그 돌을 따라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그 돌이 멈춘 곳에는 아주 오래된 작은 집이 보였습니다. 바로 그 무당집이었습니다. 그 집은 마치 불에 탄 듯, 검게 그을려있었습니다. 남자는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집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닫혀있어서인지 문을 열자 끼익 하는 소리가 귀속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그는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으스스했지만 왠지 이곳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비밀 공간 같은 아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눈치가 없는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가 털썩 앉았습니다. 

겁이 없는 걸까요?. 눈치가 없어서 일까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집안의 물건을 이것저것 만졌습니다. 여기저기 흐트러져있었지만 이곳은 신당이 있던 곳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 신어머니 말대로 무당집이 맞긴 맞는구나. 하하. 뭐 가져갈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볼까“


그는 3단 높이의 서랍장 맨 위에 있는 검은 상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순간 그는 상자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습니다. 상자 안의 물건이 방바닥에 떨어졌고. 그때 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흩어진 물건들을 보았습니다. 부채와 방울 오방기 그리고 검은 부적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들 모두 검게 그을려 있었습니다. 또 상자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공책 한 권이 보였습니다. 그가 그것들은 집어 올리자 기분 나쁜 비릿한 냄새가 났습니다.


"뭐지? 일기장인가? 아니면 무슨 비급 같은 건가?“


그는 다른 곳들도 좀 더 면밀히 살폈습니다. 이곳에 살던 무당이 쓰던 물건들이 하나둘씩 나왔지만 모두 검게 그을려있었습니다. 


그는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이곳에 엄청난 비법이 있을 거라  말입니다. 이곳에 살던 무당은 그것을 숨겨두고 혹시나 자신이 죽고 난 후에 누군가가 훔쳐갈까 봐 이상한 소문을 냈을 거라고 말입니다.


" 그래 뭔가 있을 거야“


그는 공책을 집어 들고 조심스럽게 앞장을 열었습니다. 공책을 여는 순간 그의 눈에 무언가가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그가 본 것은 무당이 된 후에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환영 같은 거였습니다. 무당인 듯 한 여자가 방울을 들고 서 있었고, 중심을 못 잡아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일정하게 이어지는 방울소리와 곡소리가 들렸고, 그녀의 발밑에 누군가가 몸을 웅크리며 쓰러져있었습니다. 무당은 칼을 사방으로 휘두르며 뛰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더니 곧바로 무당이 쓰러졌습니다. 그렇게 환영은  사라졌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뭐지? 꿈인가? “


그는 서둘러 다음 장을 넘겼습니다. 힘없이 삐뚤거리는 작은 글자가 적혀있었습니다. 




나는 신을 모시는 자다. 전국에서 나를 찾아온다. 대통령부터 갓난아기까지. 나는 귀신을 쫓아내는 퇴마사로 전국에서 가장 유명했다. 어느 날, 여자가 찾아왔다. 그녀가 문 열고 들어오는 순간 오싹한 기운이 돌았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두렵고 소름 끼쳤다. 나는 곧바로 소리쳤다. 

"나가!"

하지만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주세요!“


그녀의 얼굴은 검게 변해있었고, 손과 발은 오그라 들어있었다. 귀신이 들린 것이었다. 귀신은 그녀의 머리 위에 하나, 어깨에 둘, 다리에 셋을 달고 있었다. 나는 많은 경험이 있었지만, 그토록 지독히 귀신이 씐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귀신을 쫓기 위한 퇴마를 거행했다. 사흘 밤낮을 기도드린 끝에 여자의 검은 얼굴은 밝게 돌아왔고, 오그라 들었던 손과 발도 펴졌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때쯤 신당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신당이 점점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군님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아무리 정성껏 기도를 올려도, 꿈을 꾸어도 나의 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쯤 나의 기도에 누군가가 답했다. 장군님도, 선녀님도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자꾸 내 꿈속에 나타났다. 잡귀였다. 보통잡귀 아니다. 신이 되고 싶은 잡귀였던 것이다. 나는 느꼈다. 내가 이  잡귀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결국 그 잡귀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이곳의 모든 것을 봉인하고, 불태워버려야 한다. 아무도 이곳을 찾을 수 없게 길도 없앨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봉하려 할 때쯤 모든 것이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내 부채도, 

내 방울도, 

내 육신도. 


나는 서둘러 부적을 만들어 집안 곳곳에 붙여두고 이곳을 떠난다. 만일 누군가가 이곳에 찾아온다면 그리고 이 글을 읽는다면 바로 도망쳐라. 혹 방울 소리를 이미 들었다면 늦은 것이다. 행운을 빌 뿐이다. 





눈치 없는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집에 있던 부채와 방울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날부터 꿈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에 사람들의 조상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의 귀에 신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다시 신당을 열고 손님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족집게 같은 점사에 사람들은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사기꾼이 아니다. 하하하”


하지만 사람들에게 점을 봐줄수록 그는 점점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손끝과 발끝이 검게 변하기 시작했고, 온몸에 검은 반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그는 온몸이 불에 그을린 듯 새카맣게 변했습니다. 그는 신어머니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신어머니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남자는 사실대로 이야기했습니다. 


"실은 숲 속의 무당집에 갔습니다. 이제 어쩌죠. 흑흑흑“


신어머니는 곧바로 그를 데리고 강원도 어느 무당에게 찾아갔습니다.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만신이라 불리는 무당이었습니다. 


-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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