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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Jun 14. 2024

무당이 되고 싶은 남자, 신이 되고 싶은 귀신(2화)

신이 되고 싶은 귀신



 만신은 그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느냐”


 그는 문을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엉거주춤 서 있는 그에게 만신은 계속 소리쳤습니다. 


 “이 무식한 것아! 네가 모시는 것은 신이 아니다. 잡귀다. 신이 되고 싶어 하는 잡귀란 말이다.”


 만신은 부적을 만들어 그의 온몸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작은 방에 가두고 방문을 부적으로 봉했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서 귀신이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 귀신은 만신의 부적을 이기지 못 하고 집밖으로 달아났습니다. 하지만 멀리 가지는 않았지요. 집 주위를 맴돌며 만신의 부적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문을 봉한 부적은 점점 검어졌습니다. 색이 어두워짐에 따라 효력도 약해졌습니다. 만신은 부적이 완전히 검어지기 전에 새로운 부적을 써서 다시 문을 봉했습니다. 만신은 방안의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절대로 이 방을 나와서는 안 된다. 네가 이 방에서 나오는 순간  귀신은 다시 너에게 붙을 것이다.”


 만신은 전국에 있는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씐 귀신을 쫓아낼 방법을 의논했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귀신의 원한이 너무 강해 그것을 풀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자에게서 떨어져 나간 귀신은 담장 너머에서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네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귀신의 억울함과 분노는 만신의 부적을 칠흑처럼 검게 물들였습니다.






  때는 6.25 전쟁 직후였습니다. 모두가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고 있던 시기였죠.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쟁 중에 부모와 형제자매를 모두 잃은 그녀는 숲 속에 작은 집을 짓고, 삯바느질을 해가며 간신히 삶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바느질감을 받으러 다니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은 전쟁 중에 군인들의 옷을 수선해 주며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였습니다. 그녀는 바느질할 옷을 한 아름 안고 숲속의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뒤를 따르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숲의 가장자리까지 그녀의 뒤를 따라왔습니다. 그녀는 이윽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는 건 그녀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주인집의 아들이었죠. 그의 잘 생긴 용모가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그에게서 풍기는 반듯한 인품이 요동치는 그녀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습니다. 그녀는 남자에게 반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얼른 돌아서서 집으로 달아났지요. 주인집 남자에게 마음을 품다니, 자신의 처지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도망쳤지만, 남자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후로 매번 그녀가 바느질감을 가지러 올 때마다 남자는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선한 미소를 보여주었지요. 남자의 눈은 그녀의 해진 치마에 머물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남자의 눈을 말하고 있었죠. 당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주겠소. 

 어느 날 남자는 결심한 듯 여자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나하고 혼인합시다. 그러면 더 이상 이런 일 안 하게끔 호강시켜 드리겠소.”  

 그녀는 남자가 마음에 들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자의 구애는 끈질겼습니다. 결국 그녀도 마음을 열게 되었죠.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아름다운 옷 따위는 필요하지 않아. 이렇게 이 사람과 행복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그녀는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믿을게요.”


 그날부터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한몸이라 생각했습니다. 남자는 언제나 정이 가득한 따뜻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눈은 그녀와의 미래를 꿈꾸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남자의 가족이 그녀의 숲속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은 여자에게 더 이상 남자를 만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남자는 곧 좋은 신붓감과 결혼할 거라 했습니다. 남자는 양쪽 집안의 약속에 따라 이미 약혼을 한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남자에게서는 그런 말을 듣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다정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가 이미 다른 여자와 약혼한 사람이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남자를 찾아갔습니다. 사실을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자의 반응은 여느 때와 달랐습니다. 그렇게 따뜻하게 바라보던 시선도, 선한 미소도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남자는 그녀에게 작은 돈뭉치를 주었습니다. 값싼 동정이었습니다.  

 남자는 그렇게 등을 돌리고  떠났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산길을 걸었습니다. 한참을 걷다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었습니다. 어느덧 산길이 어두워졌습니다. 어둠에 잠긴 길이 눈물에 흐려져 더더욱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빗물처럼 떨어졌습니다. 닦고 또 닦았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산길이 검게 어두워졌을 때, 누군가의 그림자가 길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마치 커다란 검은 곰 같았습니다.


 “누, 누구세요?”

 검은 그림자는 말없이 다가왔습니다. 

 “네가 주제도 모르고!”


 여자는 검은 그림자의 주인을 알아보았습니다. 남자의 집에 살던 일꾼이었죠. 그 사내의 손에는 번뜩이는 칼이 들려 있었습니다. 사내는 말했습니다.


 “야. 얌전히 있으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주겠다.”

 사내는 그녀에게 칼을 겨누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죠. 그녀는 사내가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알던 사내는 선한 눈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눈을 가진 사내라면 그녀를 살려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대로 도망치면  모른 척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뛰기 시작했습니다. 산 위를 향해 달아났습니다. 바람소리가 귓가를 헤치고, 발밑에는 풀들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방에 울리는 그녀의 숨소리 사이로 사내의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헉! 헉! 헉!” 


 ‘조금만 더 가면 살 수 있어. 조금만 더 올라가면 더 이상 쫓아오지 않을 거야.’


 공포와 희망이 뒤섞인 숲속을 그녀는 앞만 보며 뛰었습니다. 그녀가 발을 멈추었을 때에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눈앞에는 아름답고 넓은 세상이 내려다 보였습니다. 한 손에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아담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가고 싶은 세상이 저 아래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아차 싶은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곰 같은 사내가 어느덧 발 밑에 와 있었습니다. 시야가 어지럽고, 턱까지 차오른 숨소리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사내의 손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잡으려 했습니다.


 ‘도망가야 해. 여기서 도망가야 해!’


 사내가 그녀를 잡으려는 찰나,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작고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뛰어내렸습니다. 하늘은 빙빙 돌고, 땅은 아래에서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온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과 함께 천둥 같은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습니다.  정적의 시간이 흐르고, 부드러운 산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흔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곰 같은 사내는 저 높은 구름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내 옆에 누군가가 같이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남자였습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그 남자였습니다. 남자는 옅은 미소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녀 옆에는 끝내지 못한 바느질감들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그녀의 작고 소박한 삶이었습니다. 희망이었습니다. 가느다란 행복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고 싶었지만,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뒤통수에 강한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피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정신이 들었을 때, 하얀 토끼 한 마리가 아니, 토끼를 닮은 소녀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말했습니다. 


 “불쌍해라. 많이 아프겠구나. 내가 소원을 들어줄게.”

 “소원...?”

 “소원이 뭐야?”


 그녀는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들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먼저 떠나가버린 가족들의 슬픈 눈빛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의 사랑스럽고 따뜻한 눈빛. 그리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던 무심한 그의 시선 그리고 그녀를 저주하는 듯한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들. 그녀는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행복을 빼앗아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몸은 천천히 식어갔습니다. 

 그녀는  그저 순하고 순한 바보였습니다. 그렇게 순한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는데, 누구에게 해를 가한 적이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버려져야 하는 것일까?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왜? 


 차가운 흙바닥에 누워 그녀는 입꼬리를 올려 말했습니다.


 “신이 되고 싶어"  


소녀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줄게.”


소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녀의 몸에서 마지막 숨이 빠져나가는 순간, 차가운 어둠이 그녀를 감싸 안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따뜻한 빛이 그녀를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영혼은 새로운 힘을 얻기 시작했고, 그 힘은 그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귀신이 되었습니다. 복수, 배신당한 영혼 . 그녀의 존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어두운 구석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둠을 이용해 그들의 삶을 뒤흔들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숲속의 집을 떠나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녀의 눈에는 그 어떤 힘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그저 평범한 행인처럼 마을을 돌아다녔습니다.

첫 번째로 그녀가 찾은 사람은 바로 그 남자였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배신한, 그리고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 남자. 그는 이제 새로운 신부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의 집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네가 나에게 준 고통을 네가 직접 느끼게 해줄게.”


그 순간, 남자의 집에 갑작스러운 불행이 닥쳤습니다. 남자는 이유 없이 심한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그의 신부는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점점 더 불행으로 물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점점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고, 결국 그들의 사랑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남자에게 복수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찾아가 그들에게 준 고통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녀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었지만, 그녀는 이제 모든 인간에게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배신과 고통을 안겨준 사람들에게 끝없는 불행을 안겨주겠다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점점 더 외로워졌습니다. 복수는 잠시의 만족을 주었지만, 그 이후엔 공허함만이 남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숲속의 작은 집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녀가 꿈꾸던 소박한 행복은 이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다시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신이 되고 싶었던 그 장소에 섰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소녀를 불러냈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 평범한 인간으로.”


소녀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너는 이미 선택을 했어. 이제 돌이킬 수 없어.”


그녀는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너의 영혼이 진정으로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네가 받은 고통을 용서하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해. 그들이 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 그럴 수 있다면, 너는 너는 사람들을 구하는 신이 될 수 있을거야.”


 그녀는 아직 신이 되지 못했습니다. 신이 되지 못한 귀신은 담장 밖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마을은 고요에 잠겨 있었습니다. 달빛은 흐릿하게 담장을 비추고, 바람이 잔잔히 불어오며 나뭇가지들이 속삭였습니다. 귀신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집 안에서는 따뜻한 빛이 새어나오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귀신은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살아있을 때 그녀는 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여인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의 지혜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작스러운 병으로 그녀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맞이한 그녀는 신이 되어 사람들을 보호하리라 결심했지만, 아직 그 힘을 얻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신이 되어 이 남자를 지켜줄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다짐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자가 집밖으로 나왔습니다. 남자는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무엇인가를 느낀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귀신은 남자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 남자가… 나의 힘을 이끌어줄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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