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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Jun 01. 2024

자살, 그 늦은 후회

떠난 남자, 남겨진 여자

오늘 들려줄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가 될 거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남편, 아버지, 형제, 친구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네요.

숲에 찾아오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사이가 매우 좋아 보였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매우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아내도 역시 남편을 매우 사랑했죠. 하지만 어느 날부터 부부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렇게 1년이 지났을 때쯤, 여자 혼자만이 숲에 찾아왔습니다. 나는 영문을 몰랐지만 우선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여자는 말없이 숲을 구경했습니다. 남편만 없을 뿐이지 이전과 똑같이 숲을 거닐고, 명상을 하고, 남편과 같이 앉았던 의자에 앉았습니다. 나는 물었습니다.


-오늘은 남편분이 안 오셨네요.


여자는 말했습니다.

- 네. 그이는 이제 다시 같이 못 올 거 같아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거든요.


나는 여자의 말뜻을 짐작했지만 섣불리 판단할 수 없어 더 이상 물어보진 않았습니다.

-아. 네.


여자는 말했습니다.

-죽었어요. 바보같이 자살했어요.


나는 말없이 여자에게 차 한잔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찻잔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을 시작했습니다.






그이는 직장 스트레스로 힘들어했어요. 처음 3년은 별문제 없이 잘 다니는 것 같았어요. 근데 작년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했어요.


-나, 회사 그만둘까?


-왜 힘들어? 그래도 조건이 좋잖아. 좀 더 참아봐. 사람들한테도 싹싹하게 굴고.


남편은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어요. 너무 후회돼요. 그때 그냥 그깟 회사 그만두라고 말하지 못한 것을요. 저는 속없이 다른 곳도 똑같다며, 그래도 외삼촌 회사라 다행이라고 말했어요.

남편이 죽기 몇 달 전 제게 말했어요.

이제 한계에 온 거 같다고, 더 이상 못할 거 같다고.

그때, 그만두게 했어야 했는데.


남편이 죽기 전날, 기운 없는 얼굴로 들어왔어요. 눈은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짧은 목욕을 마치고 남편은 바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쓰고 침대에 누웠어요. 그리고 다음날 새벽 회사에 일이 있다면 평소보다 2시간 일찍 나갔어요. 이상하게 그날 나도 일찍 일어났어요. 왠지 남편의 미소가 보고 싶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얼굴이었어요. 나는 잘 가라고 배웅했고, 남편은 옅은 미소를 지어주었어요. 근데 유난히 기이한 미소였어요. 경직된 눈과 어색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왠지 무서웠어요. 그런데 나는 그것도 미소라고 생각하며 남편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날이 남편을 본 마지막 날이었어요. 그렇게 그는 떠났어요.


그렇게 남편이 죽고 얼마 후 나는 남편 회사에 가서 소리쳤어요.


-책임지라고. 책임져. 결국 이거야 너희들이 원한 결말이 결국 이거냐고! 어떡할 거야. 내 남편 어떡할 거야


회사사람들은 한 명 한 명씩 내 앞으로 다가왔어요. 마치 미친년을 보듯 말이죠. 그리고 사람들은 수군거렸어요.

 

-누구야? 박 차장 와이프야?

-아니 왜 저런데? 재수 없이 회사에서 목메달아 죽었는데. 왜 여기 와서 저러냐고?


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어요.


- 내 남편이 너희 때문에 죽었어. 너희들의 그 알량한 괴롭힘 때문에 죽었다고!

-사람이 사람이 죽었다고! 내 남편이 죽었다고! 너희들 때문에 죽었다고.


그렇게 소리치는 순간 어깨에 통증을 느꼈어요. 누군가 내 어깨를 누르고 있었어요. 바로 그 자식이었어요. 남편이  말하던 문이사! 남편의 사촌형이었어요.


-재수 씨 여기서 이러지 마세요.

 

나는 피가 거꾸로 쏟아 오르는 거 같았어요. 문이사는 남편의 사촌형이지만 10년 동안 남편을 괴롭힌 장본인이었어요. 남편은 '형이 나를 싫어하나 봐.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 라며 힘들어했어요.

문이사는 말했어요.


-자꾸 이러시면 안 돼요. 민석이도 이런 걸 원하지는 않을 거예요. 이제 사장님 오실 때가 됐으니까 그만 들어가세요. 야! 이 과장. 택시 불러서 보내드려!


난 이가 갈렸어요. 사장이라는 작자는 남편의 외삼촌이에요. 처음 회사에 오라고 한 것도 외삼촌이었죠. 남편은 외삼촌이 너무 고맙다며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외삼촌은 처음과 다르게 남편을 화풀이 용도로 대할 뿐이었요. 기분 나쁘면 기분 나쁘다고 남편을 불렀고. 회사 매출이 떨어지면 매출이 떨어졌다고 남편에게 화를 냈고. 술 마시고 다음 날이면 속이 안 좋다고 남편에게 화를 냈어요. 남편은 그 모든 것을 가족이라는 명분하나로 참아왔어요.

그때 외삼촌이라는 아니 사장이라는 그 작자가 나타났어요. 마음 같아서는 침이라도 얼굴에 뱉어버리고 싶었어요. 사장은 직원들의 눈치를 보며 나에게 다가왔어요. 저놈의 눈치, 사람 좋아 보이려 하는 가오, 그런 것들 때문에 내 남편을 죽였어요.  그리고 나에게 말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줄 테니 그만하자. 나도 슬프다. 그 녀석도 내 조카야


가식적인 말투가 내 신경을 긁었어요. 그 말투가 나를 찢어버리는 거 같았어요.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없어요. 자살로 남편을 잃은 그 심정. 이제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망막함. 너무 많은 감정, 슬픔 따위가 한 번에 올라와 말을 꺼내지 못하자 사장은 내가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이제 그만 가거라. 무슨 불만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이게 잘한 짓이냐. 외삼촌회사에서 목을 매고 죽다니. 이게 무슨 짓이냐고!


-살인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는 몸을 벌벌 떨며 소리쳤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택시가 도착했고 나는 억지로 택시에 올라탔어요. 아득했어요. 남편은 이런 곳에서 10년을 참아왔어요. 무기력함에 온몸의 기운이 빠졌어요. 그때 창문틈 사이로 이 과장이라는 사람이 하얀 돈봉투를 밀어 넣었어요. 내 남편의 목숨값. 50만 원


택시는 그렇게 출발했어요. 집으로 가는 길이 지옥처럼 느껴졌어요. 남편도 그랬을까요? 매일매일 이 지옥 같은 길을 꾹꾹 참아내며 다녔을까요? 이런 처참한 마음으로 다녔을까요?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렇게. 매일.


나는 이렇게 후회하고 있어요. 남편을 알아주지 못해서, 이해해주지 못해서 후회하고 있는데. 남편은 세상을 떠난 것을, 나만 남겨두고 떠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요?

세상은 이렇게 흘러가는데 시간이 멈춰버린 남편은 후회하지 않을까요?





나는 후회했다.

내가 생각한 죽음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죽고 나면 행복해지고 편안해질 줄 알았다. 모든 걱정과 근심, 불안, 외로움, 그 딴것들이 모두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떠나지 못하고 남은 영혼만이 회사 주변에 떠돌고 있을 뿐이다.


내가 죽던 날 나는 인터넷으로 노끈을 하나 샀다.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지 쉽게 형광색 노끈이었다. "목맬 때 끈 묶는 방법'을 검색했다. 풀어지지 않게 단단하게 묶는 방법이 자세히 나와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따라 해 단단한 고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발견하기 쉬운 곳에 장소를 정했다. 그렇게 그곳으로 갔다.


구름이 몇 개 깔려 말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설례여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다리를 타고 한발 한발 올라갈 때마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나는 지금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답을 찾지 못했다. 아니 찾을 수 없었다. 어차피 내가 정한 답은 결국 이것이었으니까.

시선을 차근차근 내려다보았다. 세상은 아득해 보였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고리에 머리를 넣었다. 손을 놓는 순간 숨 막혀 죽을 거 같았다.


정말로 죽는 거구나.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거구나.

나는 살고 싶다.


그때였다 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몸이 공중에 붕떠올랐다. 내 몸은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죽고 싶었다. 죽어야만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랴 생각했다. 내가 정말 지옥이에 떨어진들 이곳과 무엇이 다른 것이냐 하고 생각했다.


-저 자식들 모두 죽일 거야. 모두 복수할 거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나는 복수하고 싶었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10년 동안의 모든 멸시와 모욕을 되갚아주고 싶었다.

사촌형은 항상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너는 가족이라는 새끼가 신경도 안 쓰고 일하냐? 다른 사람들 보기 쪽팔리지도 않냐?


그렇게 사촌형은 회사 내 왕따를 주도했다. 아무도 나와 같이 밥 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와 웃으며 대화하는 것을 보면 어김없이 그 사람에게도 해코지가  있었다. 혹, 저항하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나갔다.

외삼촌은 화가 날 때마다 이유 없이 나를 불렀다. 특히 술 먹은 다음날은 유독 심했다.


-너는 내가 조카니까 데리고 있는 거야. 나도 너 먹고살게 해 주려고 돈 버는 거야. 너 월급 줄려고 말이야.


그런 시간들이 흐르자 다른 직원 들고 그들과 같이 나를 대했다. 이유 없이 비웃거나, 업무 협조를 안 해서 실수하게 만들거나, 또 탕비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어느 날 부서이동을 했다. 말이 좋아 부서이동이지 인원이 펑크날 때에만 나는 그 부서로 가서 땜빵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일이 서투르니 자꾸만 실수하게 된다. 그럼 어김없이 사람들은 나에게 욕을 해댔다.


-어이고! 저 가방끈새끼.

-사장님 조카라 너무 봐주는 거 아닙니까? 잘라야 되는 거 아니냐고요.


나는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었다. 몇 년만 참으면 숲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날 외삼촌이 그 말을 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날은 내가 일하다 팔을 다쳐 한쪽에서 쉬고 있었다.

외삼촌은 나를 호출했다.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박민석! 넌 내가 삼촌이라고 만만하게 보냐? 다른 사람들 다 일하고 있는데 넌 앉아서 쉬고 있어? 이 새끼야!

-너, 내가 네 엄마 봐서  데리고 있는 거야. 넌 아픈 네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냐? 못난 자식 둔 너 엄마가 불쌍하지 않냐고?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아픈 우리 엄마. 못난 자식 둔 엄마.

나는 그날 결심했다. 난 어쩔 수 없구나. 결국, 결국

나는 생각했다. 너무나 살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고.



 



남편은 숲에 가는 것을 좋아했어요. 숲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어요. 심리상담도 받아보고, 정신과 가서 약도 먹어봤지만 소용없었어요. 그런데 숲에 가고 나서부터는 기운이 난다고 했어요.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에 너무나 놀랐어요. 그래서 앞으로 자주자주 숲에 가기로 했어요. 그때 해설가 선생님을 만났어요.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는 숲이야기들, 명상하면서 들려주시는 꽃과 나무들의 이야기들. 남편은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에  행복해했어요. 그런데 이해할 수 없어요. 그렇게 행복해하던 남편이었는데, 자살이라니.


남편이 죽고 나서 불면증이 심해져 정신과를 갔었어요. 단지 수면제처방을 위한 것이었지만 너무 긴장이 되었어요. 다들 표정 없는 얼굴들이 마스크 뚫고 나왔어요. 남편이 처음 정신과를 찾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더 이상 갈 곳 없는 낭떠러지에 서 있는 심정, 제게 이야기해 줬을 때 내가 귀찮아했을 때의 그 마음. 민석 씨의 처참한 심정을 하나씩 밟으며 상담실로 들어갔어요.

의사는 요즘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어요. 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약을 타기 위해서 대답해야 했어요.


-남편이 죽었어요. 그것도 자살로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어요.

의사는 별말 없이 수면제를 처방해 줬어요. 그것이 더 슬펐어요. 묻지 않는 것을요. 남편의 죽음에 더 이상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까봐 두렵고 슬펐어요.


그래서 남편과 같이 왔던 숲에 찾아왔어요. 이곳은 남편이 유일하게 좋아했던 곳이니까. 선생님을 만나고, 선생님이 해주시는 이야기를 듣고, 행복하다고 했으니까.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꼭 숲에서 살고 싶다고 했으니까....


저는 매일매일 후회해요. 그날 회사에 못 나가게 했었다면. 같이 있어주었다면. 방관했던 나 자신이 너무 싫고, 그렇게 떠난 남편이 원망스러워요.

남편의 미소가 떠올라요. 진짜 미소가요,  내가 고개를 들면 남편은 환한 미소를 지었어요. 파란 세상이 보였어요. 그 웃음을 먹은 남편 뒤로 나무가 시원하게 흔들리고 있었어요. 평화로웠어요.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요 회사, 그 회사를 그만두게 했었으면 남편은 죽지 않았을 거예요. 근데 그 인간들은 책임지려 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나도 기억합니다.  남자의 행복해하던 얼굴을, 기쁨에 벅차 상기된 얼굴로 숲을 돌아다니던 모습을.


5월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남자는 봄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 같았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막 피어나고 온갖 꽃봉오리가 들썩일 때, 그리고 꽃이 피었을 때 신나서 숲을 뛰어다녔습니다.  남자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숲에 집을 지으면 불법인가요?

-아님 땅을 사면 가능할까요?

-그것도 안되면 텐트 치고 살아도 될까요?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웃었습니다. 티 없는 웃음, 맑은 웃음, 천진 난만하던 웃음.

그 웃음은 제가 숲 속에서 만난 소녀와 꼭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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