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소설
석호는 언제나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곤 했다. 무언가 눈에 띄면 그걸 사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성격이었다.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듯, 마음속에 그 물건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꽂히면 아무리 비싸도, 아무리 쓸모가 없어 보여도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곤 했다.
어느 날, 석호는 자랑스럽게 애플워치를 내보였다. 검은색의 단단한 본체와 알록달록한 무지개색 스트랩이 눈에 띄었다. 그는 웃으며, "이거 봐, 어때? 이 조합, 완전 예술이지 않냐?"라고 물었다.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속으로는 그의 굵고 튼튼한 손목에 너무 작아 보이는 그 시계가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석호는 그날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이 상대방을 향해 강렬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에서 문득 그 주인공의 손목에 찬 시계를 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순간 시계만 눈에 들어왔고, 그 시계를 반드시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고 했다. 그래서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바로 그 시계를 주문했다고 했다. 물론, 24개월 할부로.
상태는 석호의 팔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작은 애플워치는 석호의 굵고 건장한 손목에 꽉 끼어 있었고, 무지개색 스트랩은 마치 살에 파묻힌 듯했다. 아무리 상상해보려 해도 그 작은 시계를 찬 팔로 강렬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주인공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장면을 재현하면 우스꽝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호는 여전히 그 시계를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 "봐봐, 진짜 멋지지 않냐? 이거 차고 있으면 나도 뭔가 강해진 기분이 든다니까." 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상태는 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 시계가 과연 그의 삶에 필요한 물건인지, 아니면 또 다른 충동구매의 결과물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심박수도 알 수 있어!"
석호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상태의 코앞에 손목을 내밀었다. 시계의 작은 액정에는 심박수를 측정하고 있다는 시그널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화면에 떠오른 하트 모양 아이콘이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잠시 후, 석호의 심박수가 표시되었다. 70 BPM. 석호는 한숨을 내쉬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부정맥이 있는 그에게 70이라는 숫자는 지금 당장은 괜찮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상태는 무심하게 물었다.
"그럼 부정맥이 있으면 어떻게 돼? 치료가 돼?"
석호는 순간 잠시 말이 없었다.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드리워졌고, 그가 던진 답변은 단순하고 무뚝뚝했다.
"치료는 안 돼. 그냥 조심하면 돼. 그리고 이 시계가 기록을 남겨줘. 만약 내가 부정맥으로 죽게 되면, 시계에 마지막 순간이 남겠지."
"기록이 남는다..." 상태는 석호의 말을 되뇌며, 억지로 입꼬리를 길게 당겨 미소를 지었다. 속마음은 달랐지만, 복잡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상태는 석호의 굵은 손목과 크고 뚱뚱한 체격을 보며 다시 한번 그가 겪어온 삶을 떠올렸다. 석호는 태어날 때부터 큰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심장에 문제가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찼다. 그럴 때마다 그는 가슴에 손바닥을 올려놓곤 했다고 했다.
"손을 가만히 대고 있으면 좀 진정이 됐어, "
석호가 그때를 회상하며 말하곤 했다.
물론 손바닥을 가슴에 올려놓는다고 해서 심장이 진정되는 건 아니겠지만, 상태는 석호의 두툼한 손이 가슴에 닿으면 왠지 따뜻하고 안정감이 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시계가 그 손바닥 역할을 해" 석호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걸 차고 있으면 마치 가슴에 손을 대고 있는 것처럼 따뜻하고 보호받는 느낌이 들어."
그 말을 하면서 석호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자신감이 어우러져 있었다. 실제로, 시계를 찬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부정맥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석호는 그렇게 자신을 보호해 주는 물건들을 계속해서 사들이곤 했다. 그의 방에는 다양한 기기가 즐비했다. 피로를 풀어주는 고가의 안마기, 깊고 맑은 소리를 내는 고급 스피커, 눈을 보호해 준다는 최첨단 선글라스, 정신을 맑게 해 준다는 향초들까지. 그의 방에서는 항상 은은한 향기가 퍼져 나왔고, 그 향은 석호의 존재와 함께 머물렀다.
상태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왼쪽 발을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의 자세는 긴장과 나른함이 공존하는 듯 보였다. 오른쪽 팔을 의자 팔걸이에 기대고, 몸을 살짝 기울인 채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자는 마치 오른쪽으로 넘어질 것처럼 불안하게 기울어 있었고, 상태는 이 위험천만한 균형을 잡으며 핸드폰을 오른쪽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운 채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의 왼발은 까딱거렸고, 그 움직임은 신경질적인 듯 보였다.
상태는 전화를 걸면서도 석호가 말한 '기록'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기록이 남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석호는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시계를 차고 있지만, 그 시계는 결국 그가 떠난 후 남게 될 기록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마음 한편을 무겁게 눌렀지만, 상태 그것을 외면하며 시선은 여전히 핸드폰 화면에 고정되어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요. 언제 갚으실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