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생존 에세이

작은 칼의 시대에 웃는 법

by 쪼교


회사 현관의 회전문은 늘 나를 한 바퀴 더 태워 보낸다. 습관처럼 돌고 또 돈다. 유리에 비친 얼굴이 길게 늘어진다. 나는 보이지 않는 망토를 어깨에 건다. 투명해지는 기술은 어쩔 수 없을 때만 꺼내 든다. 회의에서 내 차례가 오지 않을 때. 내 말이 공기 속에서 사라질 때. 열 분 뒤 누군가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날 때. 그때 나는 메모장에 한 줄을 남긴다.


오늘의 기적. 내 말이 순환을 마치고 돌아옴.


책상 위는 늘 어수선하다. 업무와 관련 없는 심부름이 먼저 도착한다. 택배 수령. 화분 물 주기. 어제 점심 메뉴 복원. 내 업무는 그 뒤에 선다. 나는 젓가락 같은 결심을 쥔다. 얇고 가볍지만 두 개면 버틴다. 오늘도 부러지지 말자. 대답은 삐걱거림뿐이지만 밥은 먹여 준다. 버티려면 씹어야 하니. 말투에는 칼날이 숨어 있다.


“그렇게도 못 해?” “머리는 어디 두고 다녀?”


같은 말이 미끄럼틀을 타고 어깨로 쏟아진다.

퇴근길에 옷깃을 털면 바닥이 반짝인다. 나는 조각들을 쓸어 서랍에 넣는다. 언젠가 편지를 자를 때 쓰려고. 사람을 베지 않기 위한 칼. 나를 베지 않기 위한 칼.


회의는 종종 마술 쇼처럼 흐른다. 사회자는 내 앞에서만 마이크를 허공으로 띄운다. 발표자는 내가 만든 장표를 한 장 더 넘긴다. 그럴 때 투명 망토가 자동으로 내려앉는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손이 내 손을 살짝 잡아끈다. 나는 노트를 편다. 시간과 말과 표정. 웃음이 터진 지점과 멈춘 지점. 나만의 블랙박스가 조용히 녹화한다.

상상은 응급처치 상자다. 회사 입구에 막말 수거함이 있다고 생각해 본다. 모두가 하루치 막말을 하나씩 넣고 들어오는 풍경. 수거함이 가득 차면 재활용차가 와서 문장을 바꿔 준다. “

그걸 이제 알아?”는 “같이 확인해 볼까요?”로 바뀐다. “쟤는 원래 그래”는 “배경을 더 공유할게요”가 된다. 상상은 공짜지만 값은 높다. 내 마음의 출혈을 잠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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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은 나의 국경일이다. 도시락 위에 보이지 않는 깃발을 꽂고 선언한다. 이 시간은 주권 영역. 그사이에도 메시지는 밀려온다. 점심 먹고 바로. 회의 끝나자마자. 나는 짧게 답한다. 네. 점심이 끝나자마자가 되면요. 말풍선 끝에 작은 웃음을 달아 둔다. 방패는 때때로 웃는 얼굴을 해야 덜 위협적으로 보인다.


저녁이면 하루를 한 편의 코미디로 재편집한다. 오늘의 베스트 대사는 “그걸 이제 알아?” 오늘의 최다 출연은 투명 망토. 조연은 내 표정을 대신 관리한 텀블러 뚜껑. 새벽의 유머는 낮보다 품위가 있다. 과장을 덜어 내고 필요한 장면만 남긴다. 생존 유머는 피 묻은 거즈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거즈 덕에 피가 멎는다.


어느 날 나는 규칙을 만들었다. 공이 발끝으로 굴러오면 다시 찬다. 이건 제 직무 범위를 벗어납니다. 담당자와 함께 확인해 주세요. 다음으로 기록한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떤 톤으로 말했다는지.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 이어서 내 편을 만든다. 회사 밖의 나. 회사 안의 나를 구제할 사람들. 배우자와 친구. 글을 읽어 줄 동료. 지켜보는 어른 한 명. 마지막으로 몸을 챙긴다. 물 한 병. 햇빛 십 분. 짧은 산책. 잠들기 전 우스운 영상 몇 분. 그리고 반드시 글을 쓴다. 오늘의 칼날을 오늘의 쉼표로 바꾸는 의식.

나는 더 이상 의도를 묻지 않는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라는 말은 늘 늦게 도착한다. 대신 결과를 본다. 내 마음의 멍. 새벽의 불면. 서랍에 쌓인 칼날. 그래서 오늘도 편지를 곱게 자르는 연습을 한다. 칼날로 사람을 겨누지 않기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영웅이 되려는 생각은 접었다. 나는 주인공이면 충분하다. 악역이 목소리를 높여도 괜찮다. 엑스트라가 힐끗거려도 괜찮다. 자막은 내가 단다. 아주 또박또박. 떨리는 혀끝으로 말한다. 업무와 무관한 지시는 거절하겠습니다. 방금 말씀은 부적절합니다. 이 이슈만 이야기하죠. 관련 담당자로서 회의에 참석하겠습니다. 대사는 짧고 정확하다. 말이 맞으면 말투는 나중에 따라온다. 정확함은 설명이 덜 필요한 언어다.


투명 망토는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예전처럼 온종일 걸치지 않는다. 위험할 때만 잠깐 쓴다. 나머지 시간에는 방패를 든다. 방패에는 말풍선 스티커가 붙어 있다. 헤헷 같은 가벼운 표정.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의외로 단단하다. 이 웃음은 타인의 비극을 가볍게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나의 삶이 비극으로 침몰하지 않도록 띄워 주는 튜브다. 그 튜브 위에서 나는 노트를 연다. 날짜. 말. 표정. 호흡. 가끔은 장려상 같은 하루를 스스로에게 건넨다. 생존과 유머에 기여한 공로로.


밤이 깊어지면 규칙은 더 단순해진다. 견디는 동안 웃을 것. 웃는 동안 기록할 것. 기록하는 동안 나를 잃지 않을 것. 그리고 아주 중요한 단서 하나. 벼랑 끝에서는 혼자 서지 않을 것. 손을 내밀면 잡아 줄 사람들이 있다. 내일 아침 회전문이 나를 한 바퀴 더 태워 보내도 괜찮다. 나는 말할 것이다. 좋아. 또 한 바퀴. 하지만 멈춤은 내가 정한다.




현관을 지나며 생각한다. 투명해지는 기술보다 더 어려운 일은 투명해지지 않기로 결심하는 일이다. 보이는 존재로 남아 말하는 일. 웃음을 방패로 들고 서 있는 일. 하루를 마칠 때 내 이름으로 상을 달아 주는 일. 그 일들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회전문이 나를 한 바퀴 덜 돌릴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서랍을 연다. 오래 모아 둔 칼날들을 꺼내어 조심스레 버린다. 더 이상 종이를 자를 필요가 없을 때. 웃음은 장식이 아니라 풍경이 된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계속 쓴다. 투명 망토를 벗고 방패를 들고 장려상 리본을 스스로 달아 준다. 오늘의 칼날을 오늘의 쉼표로 바꾸는 이 이상한 기술을 믿으면서. 알겠다. 작은 칼의 시대를 건너는 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결국 웃음이다. 웃되 줄을 넘지 말 것. 선을 긋되 선명할 것. 그리고 내일도 출근할 것. 주인공의 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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