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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May 14. 2024

숲해설가

소녀

내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숲해설가가 되겠다고 나선 지 1년, 나는 숲해설을 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단지, 저 나무의 이름이 무엇이고, 저 꽃의 꽃말은 무엇이며, 새들이 어디로 가고 어디에서 오는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화는 좀 났지만 언젠가는 숲의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캠핑이 유행이라지만 사람들은 숲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단지, 좋은 장비과 맛있는 음식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습니다.  나는 하루의 숲해설을 마치고 공원사무실에 앉아 가늠할 수 없는 숲의 어둠을 멍하니 보았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낭만적인 감정

먼 우주에서 보내는 별빛들

 그리고  숲에서 뿜어내는 무한한 이야기들.




나는 어두운 산속에 홀로 남아있었습니다. 길을 헤맨 끝에 찾아낸 것은 작은 물줄기였습니다. 벌써 6시간째 물 한 모금도 마시질 못했습니다. 나는 신고 있는 구두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이런 신발로 산행을 했으니, 길을 잃고 조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리에 널리고 널린 것이 아웃도어 매장인데 그 흔한 장비도 없이 무턱대로 산을 오른 것은, 어쩌면 산을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사실 내가 사람들을 따라 조용히 등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사람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이런 산길조차도 다른 사람을 의지해서 가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요? 자격지심이었을까요?  어쨌든 나는 나만의 산길을 개척하기로 했습니다. 점쟁이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산으로 가세요. 가서 산의 이야기를 들으세요.


나는 회사에서 외근을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차를 몰고 거래처를 돌다가 도봉산이라는 이정표를 보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무작정 도봉산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공원 매점에서 생수 한 병을 사들었습니다. 재킷을 벗어 허리에 묶고 결연 차게 산을 올랐습니다. 그러나 시작부터 정연한 계단을 보고 불쾌함을 느꼈습니다. 나의 생각대로의 산이라면 험한 돌계단을 상상했으나, 자연 속에 인공적으로 만들어둔 계단이 처음부터 맥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투덜거리며 정상을 목적지로 설정해 두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경치를 보고 즐기면 상쾌한 기분이 들 거야. 기운을 충전해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다. 아자!


나는 나름 산행은 자신 있었습니다.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군시절에 군장에 무전기를 메고 산을 꽤나 올라 다녔습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씩씩하게 산을 올랐습니다. 올라가다 보니 인의적인 계단이 지긋지긋해졌습니다. 나는 천천히 옆길로 걸음을 떼었습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까지가 이 꼴이 된 짧은 과정입니다. 어이없게도 커다란 바위 두 개를 지나치자마자 길을 잃었습니다. 다시 바위도 개를 지나갔지만 똑같은 길로 뱅뱅 돌 뿐이었습니다. 주변이 너무 어두워지는 바람에 내려갈 수도 없었습니다. 휴대폰 배터리는 신나게 음악을 들으면 오는 바람에 이미 모두 써버려 더 이상 켜지지 않았습니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지친 나머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방이 어둡고 밤바람이 찼습니다. 나는 그중에 달빛을 가장 많이 받는 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 누구 나 같은 바보 없나?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 있겠냐?


나는 몸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래, 여기는 누가 올만한 곳이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잊고자 혼자 큰 소리로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동물 같은 물체가 언제부터인지, 오래전부터 거기에 자리 잡고 있던 바위처럼, 마치 오래전부터 누굴 기다린 것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처음 그것을 발견했을 때 몸집이 아주 큰 산토끼 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곧 형체가 몸을 일으켰고, 내가 커다란 토끼라고 생각했던 것은 핑크색 후드티를 입은 작고 귀여운 소녀였습니다. 나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지만 소녀의 옷차림에 곧바로 낙심했습니다. 구조대나 등산객이라면 핑크색 후드티를 입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도 토끼그림이 그려진 

소녀는 큰 눈을 깜박이며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소녀의 크고 벌건 눈동자는 타오르듯 반짝였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 뒷걸음치다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리고 소리 질렀습니다. 


-귀, 귀신이다. 


내가 온몸이 굳어 눈만 껌뻑이는 동안 소녀는 밀접하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눈앞에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정체를 알고 나자 오히려 극도로 긴장되었습니다. 손은 축축해지고 산을 올라올 때보다 더 많은 땀이 흘렀습니다. 차가운 산바람이 불며 온몸에 한기가 돌았습니다. 후드티를 입은 꼬마 소녀의 몸도 바람에 휘청거렸습니다. 소녀가 움직일 때마다 허공 속에 귀신이 떠 있는 거 같았습니다. 숲 속도 무섭고, 소녀도 무서웠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물었습니다. 


-저기 혹시 어른들하고 같이 왔니? 다들 어디 계시니?


소녀는 픽 하고 웃었습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저 보러 오신 거예요?

-아니 등산하러 왔다가 길을 잃었어.


소녀는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에이, 나는 오랜만에 숲해설하시는 분이 오 신줄 알고 좋아했잖아. 할 이야기가 많은데...

 하긴 복장은 아니네. 그래도 이야기해 줄게. 아저씨는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숲에 오는 사람들에게 들려줘!


나는 끝없이 말하는 소녀의 눈을 보며 역시 한 마리 토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녀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따라 흔들렸습니다. 


- 아니 그보다는 어떻게 산에서 내려가야 하는지 알려줄 수 없겠니?


작은 손을 내 앞에 내밀었습니다.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내 손을 잡아


나는 작고 앙증맞은 손을 살며시 잡았습니다. 


-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숲에서 나가게 해 줄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귀신에 홀린 것이다. 여기서 꼼짝없이 죽는구나'라고 말입니다.  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굳이 걸어 들어왔는지 후회했습니다. 여기서 죽으면 시체도 발견되지 못하겠지. 나는 행방불명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나 존재하겠지. 그래, 어차피 내가 죽어도 슬퍼해줄 사람도 없는데. 어쩌면 나는 이렇게 끝나는 인생인가 보다 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눈물이 흘러 볼이 차가웠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소녀의 따스한 손이 내 볼을 감싸 안았습니다.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리고 바람, 별빛, 숲 속의 향기가  온몸을 감쌌습니다.  은하수처럼 끝없이 펼쳐진 우주가 보였습니다. 달에 사는 계수나무의 토끼가 보였습니다. 나는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제발 꿈에서 깨어났으면 했습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엉엉 울어버릴까? 도망칠까? 정신을 잃을까? 내가 눈을 떴을 때 소녀는 평온한 표정을 하고 크고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말했습니다.


- 숲 속에는 물고기가 날아다녀. 알아?


나는 당황했습니다. 물고기가 날아다닌다니, 그것도 숲에서. 하지만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 하지만 사람들은 잘 몰라. 아저씨도 몰랐듯이.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그래. 하지만 아저씨도 자세히 보면 볼 수 있어. 자! 보이지?


소녀는 답답한 듯 다구 쳤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 눈에는 나는 물고기가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어! 어 그래. 보이는 거 같다.


소녀는 눈을 흘겼습니다. 


-에이 그럼 다른 이야기 해줄게. 


소녀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소녀의 이야기에 나는 곧 빠져들었습니다. 영원의 공간에 들어가는 거 같았습니다. 나는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 손뼉을 쳤습니다. 또 울기도 했습니다.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습니다. 소녀와 이야기하다 보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행복했습니다.  

어느덧 산 아래에 내려왔습니다. 소녀는 또 놀러 오라며 인사를 했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소녀를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 넌 어디에 사니?


내 질문에 소녀는 웃으며 가만히 손을 뒤로 뻣었습니다. 소녀의 손끝이 향한 곳은 유달리 커다란 보름달이었습니다. 소녀는 말했습니다.


-내가 들려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또 만날 거야




그렇게 행복에 젖어 온갖 괴로운 일들을 다 잊어갈 무렵, 문득 나는 소녀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숲해설가야?'

나는 그렇게 숲 해설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숲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도 소녀와 같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 이제 그 이야기를 여러분에게도 들려주기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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