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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May 19. 2024

달님의 소원

안녕하세요. 숲해설가입니다. 여러분의 환한 얼굴을 보니 오늘 산행은 매우 즐거울 거라 예상되네요. 우리 모두는 자연의 방문객입니다. 모두 예를 갖추고 경건한 마음으로 숲으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혹 우리가 잘못해 숲을 노하게 한다면 다칠 수도 모두 저의 안내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렇다고 너무 겁먹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해설가님 참나무가 뭐예요?


아! 참나무라는 건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흔히 '참나무'라고 하죠. 여기서 참나무의 '참'은 '진짜'라는 뜻이 있어요. 

조금 더 설명해 드리자면 참나무의 종류에는 나무껍질이 굵은 '굴참나무'

줄기를 갈아치우는 '갈참나무', 짚신을 바닥에 깔았던 '신갈나무'

잎과 열매가 제일 작은 '졸참나무', 떡을 싸기도 하였던 '떡갈나무'

그리고 도토리가 가장 많이 달린 나무로써 도토리묵을 쑤어 임금님 수랑 상에 올랐다 하여 상수리나무가 있죠. 

어때요. 참나무도 우리가 몰랐던 이름이 참 많죠? 


-해설가 선생님 그럼 달에는 계수나무가 진짜 있나요? 


하하 그럴까요. 말 나온 김에 계수나무가 사는 달의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그럼 잠시 쉬는 사이에 제가 재미있는 숲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아니 수만 년 전, 소녀는 아무것도 없는 검은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달이라 부릅니다.  달의 소녀는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고, 배 고프다고 울고, 졸리다고 울고, 심심하다고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 울음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달의 소녀는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소녀에게 세상은 무채색이며, 놀거리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소녀의 눈앞으로 하얀 돌고래가 날아왔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그 고래가, 소녀는 무척 반가웠습니다. 소녀는 하얀 돌고래를 타고 놀았습니다.  소녀는 깔깔 웃었습니다. 그러나 무채색의 달은 웃음소리를 삼켜버렸습니다. 그렇게 100 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시간의 속도는 돌고래가 나타나기 전처럼 다시 느려졌습니다. 돌고래를 타고 노는 것도 이제는 지루해졌습니다. 어느 날 소녀는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푸른 별이 보였습니다. 하루에 한 번 떠오르는 그 푸른 별은 검은 하늘의 눈동자와 같이 반짝였습니다. 그 빛이 너무 아름다워 소녀는 푸른 별이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또 100 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소녀는 푸른 별을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는 땅이었는데, 작은 생명들이 생기고, 건물들이 이 생기고, 움직이는 자동차, 비행기들이 생기고, 가끔씩 폭탄이 터지며 서로를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천년이 지났을 때쯤 소녀의 귓가에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의 목소리, 아니 수 백 수 만 개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좀 더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같이 똑같았습니다. 


- 달님,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푸른 별의 사람들은 소녀를 '달님'이라 불렀습니다. 

 너무나 많은 말들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와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그중에 가장 잘 들리는 목소리를 찾았습니다. “달님. 제발 저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그 목소리가 말하는 소원이란, 소녀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소녀는 그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가 말하는 소원을 들어주고, 그 다음 소원도 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소원을 들어줄수록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 커져갔습니다. 더 많은 소원을 들어주기를 원했습니다. 소녀는 궁금했습니다. 왜 푸른 별의 사람들은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많은 것인지, 소녀가 사는 이곳에는 무채색의 흙과 돌뿐인데 저토록 아름다운 푸른 땅에 살면서 무엇이 그토록 부족한지 말입니다. 그래서 소녀는 푸른 땅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푸른 별이 가장 가까이 다가와서 커다랗게 빛날 때 소녀는 하얀 돌고래를 타고 푸른 별로 날아갔습니다.


 그렇게 푸른 별에 도착한 소녀는 땅을 밟아 보았습니다. 소녀가 살던 땅과는 전혀 다른 땅이었습니다. 푹신했고, 향긋했습니다. 처음 보는 푸른 생명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온갖 색들이 반짝였습니다. 소녀는 생각했습니다. 이곳이라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라고요. 소녀는 주변을 뛰어다녔습니다. 꽃과 나무들이 내뿜는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습니다. 열매를 따서 맛도 보았습니다. 아! 이것이 단맛이구나. 이것이 쓴맛이구나. 소녀는 천 년만, 아니 백 년만이라도 푸른 별에 살고 싶어 졌습니다. 그렇게 소녀는 푸른 별에 사는 사람들의 세상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녀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이 풍족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했으면 했습니다. 소녀는 숲을 떠나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유랑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권력, 돈, 건강... 그런 것들을 이뤄주는 것은 소녀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기적을 이뤄내면 사람들은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소녀를 떠받들었습니다. 


 소원을 이루어주면 사람들은 새로운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을 이루어주면 또 다시 새로운 소원을 빌었습니다. 소녀는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줬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행복해하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면 또 다른 것을 원할 뿐, 그들은 만족을 몰랐습니다. 욕망을 채워주는 방법으로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었습니다. 소녀는 답답했습니다.  


 소녀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소녀의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소녀를 떠받들며, 끊임없이 소원을 빌었습니다. 어느덧 소녀는 한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아니 그들의 신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소녀를 숭배했습니다. 사람들은 소녀가 온 세상의 왕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하고,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소녀는 그 소원마저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이웃 나라를 침략하도록 도왔습니다. 이웃나라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이 이룬 것들을 파괴하고 그들의 영토를 빼앗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렇게 소녀의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하고,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소녀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소원은 모두 들어주었다고요. 이제 더 이상 푸른 별의 사람들은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할 거라고요. 소녀는 사람들과 춤추고 노래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푸른 별의 사람들은 더 이상 기뻐하거나 행복해하지 않았습니다. 소녀의 나라는 둘로 갈라졌고 소녀를 두고 서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소녀에게 둘 중 한 쪽 나라를 선택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그들의 소원이라며..


 소녀는 슬펐습니다. 소녀는 어느 한쪽의 소원만 들어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녀는 성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성밖의 세상은 고요했습니다. 눈이 내려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었습니다. 고요했고, 가끔 부는 바람에 눈발이 날리기도 했습니다. 푸른 별의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성 안의 사람들은 왜 모를까? 소녀는 하얀 세상 속에서 한동안 깊은 잠을 잤습니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습니다. 긴 잠 도중, 어느 날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소녀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 마녀야! 정체를 드러내라. 세상에 나와 천벌을 받으라!


 마녀!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소녀를 마녀라 불렀습니다. 달님도, 왕도, 신도 아닌 마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다른 신을 섬긴다고 했습니다. 소녀는 슬펐습니다.


 -마녀야! 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세상을 떠나라.


 사람들이 이제 소녀에게 푸른 별을 떠나라고 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소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소녀는 떠나기 싫었습니다. 푸른 별을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무채색의 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푸른 별에 사는 것이 소녀의 소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녀는 생각했습니다. 


- 그래, 소원이라는 건 뜻대로 되지 않아야 소원이구나. 그래서 인간들은 그렇게 간절했구나. 온 힘을 다해 빌면 우연히라도 이루어질지 모르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이구나. 


 소녀는 문득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소녀가 사람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려 한 것은 그들의 운명을 바꾸는 행위였습니다. 사람들이 소녀에게 모든 소원을 다 들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운명을 저버리는 행위였습니다. 소녀에게도 자신의 운명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무채색의  달에서 혼자 사는 것이 결국 소녀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태어날 때 지니고 있는 것이 운명구나. 나는 내 운명을 저버리고 푸른 별의 사람들의 운명을 저버려서 이렇게 벌을 받는구나. 


 그렇게 소녀는 푸른 별을 떠나 다시 무채색의 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주지 않았습니다. 또 푸른 별의 사람들도 더 이상 소녀에게 소원을 빌지 않았습니다.






자!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여러분도 소원이 있겠죠. 하지만 소원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힘을 내서 정상에 가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 이제 출발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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