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쭉 써 내려간 초등교사 K의 10년일기 3

3-2. 첫 다툼

by 꿈몽글

3-2. 첫 다툼


제 성격도 참 여러 번 바뀌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 때는 버릇없고 괘씸한 꼬맹이였다가,


중학생 때는 그간의 삶을 반성하고 '정의로운 것'을 추구하며 활발하게 열심히 살았어요.


고등학생 때는 머릿속이 하도 복잡해서 제 할 일에만 집중했구요.


대학생 때는 워낙 다양한 군상이 섞여 있어서, 또 하나하나 고민하기 복잡해서, 제 마음에 맞는 사람들하고만 잘 지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교사가 된 시점에서의 전 다툼을 크게 싫어하는 극도의 내향적 사람이었어요.


거의 '착한아이 콤플렉스'에 가까운 수준이었지요.


그냥 "네", "알겠습니다."하고 말아버렸죠.


그러다가도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 하나 발생하긴 합니다.





[2016년 10월 20일 목요일, 날씨: 흐림]


즐거운 현장체험학습이었다.


아이들이 만들기 시간에 만든 물건을 들고 와서는 내게 쫑알쫑알 말을 했다.


"선생님, 이걸로 여자친구한테 고백해요!"


"와, 고백 한 번에 성공할 듯! 크크크크."


웃으며 아이들을 대하던 그 때에, 7반 선생님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야, 너네 선생님은 안 돼. 그런 걸로 되겠냐."


순간 벙- 쪘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


원래 평상시에도 심한 농담을 툭툭 던지던 선배인지라 그냥 참고 들었지만,


아이들 앞에서 무안을 주는, 그리고 맥락을 알 수 없는 이런 말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내 학생들 앞에서 싸울 순 없어서 잠시 참았다가, 아이들이 사라진 후 말을 꺼냈다.


"선생님, 아까 말씀하신 내용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요?"


"응? 뭐?"


"아이들 앞에서 '너네 선생님은 안 돼.'라고 말씀하신 부분요."


"그게 뭐?"


"저한테 농담하시는 건 그냥 웃으며 받을 수 있는데, 학생들 앞에서 저를 과하게 깎아내리는 그런 말은 조금 상처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을 전하자 그 선배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아이들 활동이 끝난 후 그 선배는 나를 불렀다.


"야, 너 귀여워해주고 오냐오냐 해주니까 뭐 된 것 같냐? 선배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그따위로 말하라고 누가 가르쳤냐?"


온갖 심한 모욕이 오갔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여기서 더 말싸움을 꺼냈다가는 큰 싸움이 번질 거라 생각했다.


꾹 참고 듣고만 있었다.


20분 정도의 일장 연설을 듣고 밥을 먹으러 왔다.


이미 입맛이 다 사라졌다. (후략)





그 선배는 원래도 심한 말을 가볍게 던지곤 했었어요.


꽤나 상처가 되는 말들도 많았지요.


그래가지고 교사 일을 잘하겠냐는 둥, 아직도 여자친구가 없어서 어쩌냐는 둥.


사적인 내용의 심한 말들도 많았네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러다가 아이들 앞에서까지 그런 말을 하니까 한 번 용기를 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 컸어요.


동학년 선생님은 모두 여자분이셨는데, 그 중 영향력이 큰 대선배님도 그 선배를 지극히 아꼈거든요.


결국은 모든 일들이 내가 잘못한 걸로 소문이 난 느낌이랄까요?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때 한 선배님이 손을 잡아줍니다.



[2016년 10월 25일 화요일, 날씨: 비]


2반 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선생님, 요새 무슨 일 있죠?"


"아닙니다, 별 일 없어요…."


말 끝을 흐리며 피하려는 나를 다시 붙잡았다.


"선생님, 괜찮으니까 이번 수업 끝나고 교원연구실에서 봐요."


한 시간 수업이 끝난 후, 교원연구실에서 선생님과 만났다.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7반 선생님이랑 그 때 무슨 일 있었죠?"


다 아시는 눈치라 아이들 앞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그리고 내 기분이 어땠는지 말씀드렸다.


"그래서 도시락 먹을 시간에 따로 불러서 또 이야기를 한 것이고요?"


"네."


그 때 기억이 떠올라서 눈물이 맺혔다.


사실 난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그 선배가 아예 무시를 하고 함부로 대하는 시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걱정마요, 선생님. 그 친구 원래 선배들한테도 함부로 대하고, 후배한테도 함부로 대하고 그랬었어요. 선생님이 신규인데도 웃으며 잘 받아줘서 별 일 없겠거니 하고 걱정 안 하고 있던 건데. 결국 일이 하나 터진 셈이죠. 선생님 잘못 아닌 거 아니까, 걱정마세요."


그렇게 위로를 해주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흘렀다.


2반 선생님은 나를 다독여주셨다.






사실 교육대 출신이 선배와 다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곤 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초등학교 선생님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그 특유의 '순응성'이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친구들 이야기로는 고등학교는 출신 대학도 다르고, 출신 과도 다르기 때문에 선배-후배의 관계가 또렷하게 느껴지거나 하는 부분도 없고, 교장 및 교감 등 관리자의 영향도 거의 없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초등교사는 조금 달라요.


대부분이 교육대 출신이지요.


거기다가 한 지역에서는 같은 교육대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학 내 반이 심화전공을 기준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모두가 초등교육과 출신이구요.


그러다보니 선배와 후배간의 관계가 명확해서 학번을 통한 위계질서가 좀 더 분명하다 볼 수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동학년은 저 빼고 모두가 여자 선생님이시고, 부장님이 그 선배를 아끼는 분위기에, 그 선배랑 다툰 제 입지가 얼마나 초라하고 힘들었겠습니까.


학년 회의에서 무언가를 제안하기만 해도 반박하고, 무시하는 시간들도 덩달아 따라왔구요.


얼마나 많은 뒷담이 있었을지는 또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구요.


그러던 와중에 이런 일이 있었던 거죠.





[2016년 11월 23일 수요일, 날씨: 구름 많음]


동학년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갑자기 2반 선생님이 손을 번쩍 드셨다.


"선생님들, 발표가 하나 있겠습니다."


원래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선생님이시기에, 동학년 회의에서 이렇게 모두를 집중시키는 행동을 하신 적이 없으셨다.


무슨 일이신걸까.


"저 다음 달에 결혼하잖아요."


결혼을 하신다는 것은 지난 번에 받은 청첩장으로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른 하실 말씀이 더 있는 것이겠지.


"그 때 축가 승우 쌤한테 부탁하려고요."


응? 나?


"승우 선생님. 당연히 해주실 거죠? 선생님 목소리 정말 좋아서, 그리고 노래 실력도 좋은 거 우리 학교에서 다 아니까 꼭 부탁 드리고 싶었어요. 결혼 축가 해주는 겁니다? 약속!"


내 두 손을 꼭 붙잡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축가에 대한 부담은 여러 번 해봐서 전혀 없었어요.


시간이 두 달 정도 남았으니 얼마 안 남긴 했는데, 노래를 뭘로 골라야 할까 잠깐 머리가 아프다가….


아니, 지금 여기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죠.


동학년 회의에서 모두가 모인 앞에서 2반 선생님은 대놓고 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주신 느낌이랄까요?


그 이후로 7반 선생님은 저를 더는 괴롭히지 못했어요.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손을 잡아준 선생님께 정말 감사했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이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요.


이런 따뜻한 선배님을 만난 건 너무나 큰 축복이었겠지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리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 덕분에 제가 버틸 수 있었어요.


선생님 덕분에 제가 살아있을 수 있었어요.


정말로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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