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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신자 Feb 12. 2024

피신하는 사람의 기쁨

시편

주님께로 피신하는 사람은 누구나 기뻐하고, 길이길이 즐거워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기쁨을 누리도록, 주님께서 그들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시편 5편 11절》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가 바라본 종교는 현실의 고통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진통제였고, 거기서 더 나아가 아편에 중독되는 것처럼 중독시켜 현실을 잊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피신하는 자들은 현실의 고통과 고통의 끝에 있는 죽음을 명확하게 인지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사라지지 않는 죄와 죄악 된 세상으로부터 오는 고난에 고통받으며, 낙심하고 절망하여 구원을 찾아 헤매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존재들이었습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우리가 고통과 절망의 끝에서 종교라는 중독적인 마약을 사용했다면, 우리는 고통과 절망을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죄의 책망함에 대해 둔감한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몽롱함에 취해 완전한 회복의 기쁨은 전혀 누리지 못하고 그저 약이 주는 쾌락에만 탐닉하는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죄책에 둔감한 존재가 아닙니다. 현존하고 실제적인 고통과 절망을 무시하는 존재는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죄에 용서를 구하고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죄로 인해 유발된 고통을 힘겹게 용서하고 절망을 주는 상대방을 사랑하려고 다가갑니다.

이런 발버둥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먼저 가신 길을 그저 따라갈 뿐입니다.


우리가 현실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발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고통받으시고 죽으셨으나, 부활하셔서 완전한 회복의 기쁨을 보이셨습니다. 본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고통 가운데서 그 본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기에, 부활의 끝짱 나는 기쁨을 이미 들었기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함께 하나님으로 피신하여 기뻐합시다.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기대하고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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