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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짜 Feb 25. 2024

마지막으로 나누는 인사



 요양병원 야간 경비원으로 일 한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당장 일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던 게 생생한데 말이다. 늘 똑같은 패턴으로 출퇴근을 하는 게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병원 정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대화가 조금씩이라도 오가던 원무과가 조용하다.


 의자에 앉아 일지를 작성하려 하는데 면회실에서 이별의 인사가 들려온다.


 “엄마… 잘 가!”


 “엄마!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엄마… 가시는 길에 아버지 만나서 화해하시고…”


 인사 몇 마디가 내 가슴이 중력을 2~3배 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 테이블 의자에 앉아서 보호자의 부탁이 올 지 몰라 대기를 했다. 요양보호사, 간호사가 와서 보호자들이 떠나면 면회실 정리를 부탁한다며 말하고 병실로 들어간다. 사람도 물건도 정리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5분이 지나서였을까. 40대 중반의 한 남성이 들어와 고개를이리저리 돌리며 무언가를 찾는다. 그러다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는지 면회실 문을 열어 확인하고는 재빨리 들어갔다.


 “엄마…! 엄마…! 죄송해요… 흑흑…”


 “엄마! 우리 막내 왔어요.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막내 아저씨는 환자를 보자마자 폭발하듯이 울음이 터졌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가족들의 인사와 대화가 끝이 나자 환자는 천에 꽁꽁 싸여 병원을 나갔다. 누군가는 생명이 다해야지만 나갈 수 있는 곳이 병원이다.


 고3 시절 어머니가 많이 위독하셨다. 가족들은 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그때였을까? 내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건지 현실도피가 있는 건지… 어쨌든 믿고 싶지 않은 사실과 말들을 외면했다.


 평소처럼 어김없이 집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를 썼다. 두려움과 불안을 억지로 짓누르고 있을 때 전화 벨소리가 번개처럼 갑작스럽게 내리쳤다.


 “oo아. 엄마 이제 마지막이다. 얼른 병원 갈 준비 하거라. “


 병원에 도착하니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 옆에서 울고 계셨다. 정신없이 우시다가 나를 발견하시고는 울먹이며 말씀하셨다.


 “oo아. 엄마한테 이제 인사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해요’하고 보내드려.”


 그냥 말하면 안 들리니 귀에다 대고 말하라고 하셨다. 나는 귀에 대고도 마지막 ‘사랑해요’가 잘 나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다. 워낙 표현 없는 아들이라 그런 건지, 그당시 현실이 믿기지 않았는지… 한 가지 확실한 건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못해 죄송하고 아쉽다.


 책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사벨, 결국 고통은 사라진다. 그러나 사랑은 남는다. 그렇다. 육신은 사라지지만, 결국 추억은 남고, 그 추억은 오기와 분노를 이기고 사랑으로 영원히 남는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이 책을 읽었을 때 가슴에 너무나 와닿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아버지를 용서 못하고 분노했으며, 예민한 감수성에 조금이라도 누가 건들면 물어뜯고 미워하셨다. 그러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모든 게 바뀌었다.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며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떠나신 것이다. 삶의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지워지고 ‘사랑’만이 남는다.


 삶을 덜 후회하며 살려면 하고 싶은 일, 서로 사랑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사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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