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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짜 Oct 27. 2024

4화



 04     

 

 야간 경비근무를 마치고 1시간 정도 집에서 쉬었다가 오전 11시까지 초등학교로 출근을 한다. 나를 포함한 남자 2명과 이모님들 4명이서 함께 점심 배식을 하고 청소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워낙 낯을 많이 가리고 소심한 성격인 나로서는 같이 일하는 분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가 제일 걱정이었다.     


  처음 몇 일은 서로가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역시나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그런게 금방 풀려가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요양병원 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니 이모님들 대하는 게 그리 힘들고 불편하지 않았다. 조금 더 가까워지면서 이전에 같이 일했던 남자들을 얘기 해주는데 다들 그만두고 성질내는 이상한 사람들만 봐와서 그런지 우리가 오히려 어색(?)하다고 했다.     


  “여기는 일이야 둘째치고 일단은 서로가 마음이 잘 맞아야 되는데 그런부분은 이전에 있던 사람들 보다 낫네요. 일 그만두지 말고 끝까지 같이 가요? 알겠죠? 홍홍홍.”     

 

 같이 일하는 작업반장님이 눈빛이 꽤 강렬해서 다음에는 가방에 선글라스를 넣어두고 다녀야 되나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같이 일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대화도 점점 늘어났다. 특히 이모님들은 다 가정이 있는 분들이라 가족 얘기만 나오면 도무지 끝이 나지 않는 대화를 했다. 유일하게 끊을 수 있는 건 시계바늘이었다.     

 

 “아이고야! 벌써 시간이 저리 됐뿌네! 입만 열었다 하면 시간이 와이리 빨리 가뿌노! 자 무거운 궁디들고 일어나입시더! 홍홍홍.”     

 

 쉬는 시간동안 이모님들의 대화를 듣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침과 밤에 하는 일이 분명히 다른데 일을 하면서 귀가 아픈건 똑같다는 것. (일한지 한 달이 가까워졌을 쯤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두 명이서 짝을 지어 각층에 있는 학년들에게 여유분의 음식을 나누어준다. 나와 이모님은 저학년을 맡았다. (작업반장님 말로는 2학기가 되면 자기가 맡는 학년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우리를(알고보니 나를) 낯설어 하고 경계했다. 복도에서 신나게 놀다가도 우리 앞을 지나갈 때는 갑자기 뛰어서 교실로 들어갔다.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아직 어려서 무서워 할 수도 있을 거라며 내 나름 합리화를 했다.     

 밥 먹는 양이 적어서 그런지 아이들은 더 먹으려고 우릴 찾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공상에 빠지거나 아이들을 보면서 내 어릴 적 생각을 하곤 했다. 그때는 배가 불러도 무조건 나와서 반찬을 더 받았던 기억이 난다. 복도에서 조금이라도 뛰는 소리가 나면 선생님이 교실 문을 확 열고 큰 소리로 호통을 치셨는데. 지금은 오히려 아이들이 복도에서 뛰어 놀아도 선생님이 별 말을 하지 않는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나에게는 쓰이지 않을 것 같은 단어 ‘격세지감’. 내 생각과 정신은 아직도 미숙하고 어린걸 잘 알기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거겠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나와 이모님이 서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도 슬슬 적응해 가는 것 같았다. 우리 앞에서도 자기들끼리 치는 장난이 점점 강도가 세졌다.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세상이 떠날 듯 지르면 나도 옆에서 같이 지르고 싶었다. 그만 소리지르고 교실에 들어가서 밥을 먹으라고. 하지만 아이들의 장난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서로 장난을 치면서 나는 웃음소리가 그랬다. 아이들의 웃음은 어른들과 달랐다. 뭔가 좀 더 깨끗하고 맑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천국에 있는 기분이 든다.’ 솔직히 천국까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건 사실이었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나도 아무 걱정없이 놀고 웃기만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는...그때는 엄마가 내 옆에 계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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