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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Aug 29. 2024

창작의 고통은 아프지 않아.

더 중요한 건 나의 단어들

글을 처음 썼을 때를 떠올려 본다. 지금은 당시 내가 어떤 의도로 썼는지만 기억난다. 견디기 힘든 일들이 닥쳤고, 혼자 끙끙 앓기엔 무언가 분출해야 했다. 사람은 벼랑 끝으로 몰리는 순간엔 늘 본인이 행복했을 때를 떠올린다. 평생 동안 아니, 당장 최근에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는지를 떠올린다. 그 행복감으로 이 암담한 현실을 어떻게든 희석시키려 한다. 하지만 내겐 그 행복이 없었다. 아주 불행히도 꼭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 요리를 만든다거나, 악기를 잘 다룬다거나, 축구를 한다거나, 외국어를 배운다거나, 각자의 확실한 취미가 있는 이들은 그걸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 괴로운 순간들을 견뎌냈다면, 내겐 아무것도 없었다. 풀 때가 없으니 아주 우연히, 그냥 백지에 살아온 여정들을 썼다. 먹으면 노폐물을 배출하듯, 그냥 그렇게 썼다. 그게 지금까지 온 것뿐이다. 이제야 나도 기성복이 아닌 나만의 맞춤복을 입은 느낌이 난다.


오늘 친한 친구가 퇴사를 했다. 하루 8시간 동안 본인의 밝은 성격을 회사에서 잃어가는 게 스스로 눈에 보여 그게 너무 슬펐단다. 일요일 오전이면 심장이 두근거리는데, 대기업에 다닌다고 이런 연봉과 복지를 누리는 게 대체 뭐가 의미가 있냐고 한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명확한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 바로 '나만의 공간'을 만들 때의 행복. 호텔경영학과를 나와 어느 한 편안한 공간에서 본인이 쉴 수 있는 곳에서 큰 행복을 느꼈고, 그 공간을 직접 꾸밀 때 무엇보다 행복하단다. 그래서 한옥 호텔, 파티룸, 공간대여사업처럼 공간과 관련된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 이렇게 본인이 행복한 무언가를 이미 찾은 사람은 퇴사를 하든 뭘 하든 아무런 걱정이 없다. 남들은 수십 년이 걸리는 걸 본인은 이미 갖고 있으니, 이미 앞서간 것이다.

결국 우리 삶의 종착지는 '행복'이다. 이 친구는 공간대여사업을 할 때 본인의 공간을 이렇게도 꾸며보고, 저렇게도 꾸며보며 아주 행복해할 것이다. 거기에 고객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또 다른 희열을 느끼는 멋진 선순환.


이 친구와 난 다를 게 없다. 글을 쓸 때 행복을 느끼면서 독자들에게 잘 읽히기 위해 나만의 단어를 쓰는데 치중을 한다. 이런 단어도 써보고, 저런 단어도 써보고 독자들이 좋아하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나만의 단어들에 시간을 가장 많이 투자한다.

혹자는 글을 쓸 때 글감을 생각하느라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지 않냐고 묻는다. 글감이라, 사실 글감에 대해 결론만 말하자면 글감은 생각하지 않아도 하루 24시간을 살아가다 보면 저절로 나온다. 하루에 하나 쓰는 게 대단하다고? 조금만 매사를 주의 깊게 보면 하루에 3개, 4개도 쓸 수 있다. 다만 하루에 일도 해야 하고, 잠도 자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안 할 뿐이다. 경험한 하나의 경험과 사물에 기계처럼 수용하지 않고, 거기에 내 생각을 덧붙이면 된다. 그리고는 그날 주의 깊게 본 것 중에 내가 쓰고 싶은 걸 정한다.

 ‘오늘은 고향에 왔으니 경상도 사람들에 대한 글을 써 보겠다’, ‘오늘 닭볶음탕이 너무 맛있었으니, 요리관에 대해 써 보겠다’ 이런 식이다. 그러다 차츰 오늘 있었던일들을 써가고, 내가 느낀 것들에 하나둘 살을 붙여가면 그 글의 각자 고유한 단어와 틀이 잡힌다.

나는 틀이 잡혀가는 이때부터 독자를 생각했다. 내 생각과 견해, 인사이트를 어떤 단어로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지, 독자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늘 고민했다. 왜냐. 여긴 자본주의 사회라, 내가 아무리 내 글에 대한 자신감이 있고 잘 썼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독자들이 읽지 않으면 무시당하고 묻히기 십상이다. 글을 쓰면서 독자, 조회수, 책 판매량을단 한 번도 고려해 본 적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그건 거짓말이다. 마치 이는 돈만 벌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 “나는 돈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라고 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타인들로부터 사랑받고, 내 글이 유명해져야만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동기부여가 생긴다. 이건 너무나 당연하다. 근데 조회수나 명성, 돈벌이 수단보다 독자에게 어떻게 내 색깔을 알리는지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자연스럽게 돈보다 나만의 단어부터 먼저 연구하게 된다.


자, 그럼 나만의 단어를 쓰면 어떤 점이 좋을까. 글은 결국 단어와 단어의 조합이다. 결국 접두사와 접미사를 제외하면 단어가 키포인트다. 즉, 내가 선택한 단어를 쓰면 그 단어대로 생각하게 된다. 일기를 쓸 때에는 늘 오늘의 일에 관해 썼기 때문에 일어난 그대로의 사실을 쓰는데 바빴다. 하지만 차츰  쓰기 시작하면서 사회이슈,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생각들, 어떤 풍자를 하고 있는지 분석했다. 과거에는 내 경험이 먼저 우선시되고 그걸 글로 써 내려간 반면 이제는 내 단어를 선택해 쓰는 대로 경험하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하겠다!, 어떤 글을 써 내려가겠다!’라고 마음먹으면 실제로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책을 출간할 때도 꼭 책을 내겠다는 단어를 쓰자마자 출간의 기회가 찾아왔고, 해외출장이나 여행을 가기 전에도 그 나라에 대한 생각들, 견해를 내 단어들로 써보고 출발했다. 당연히 해외에서 아무 생각도 않고 간 것보다 그 경험이 더 풍요롭고 다채로웠다. 이것은 자기 암시와도 비슷한데, 내가 쓰는 단어대로 이루어지는 기적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글에 대한 내적갈등을 피할 수 있다. 글을 계속 쓰다 보면 돈이 되는 글쓰기를 하느냐, 내 신념에 맞는 글쓰기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무조건 생긴다. 조회수가 높고, 독자들이 좋아하는 주제를 쓰면 명성은 얻을지언정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못쓰게 돼 의미가 사라진다.  '돈이 되는 글쓰기'라고 하면 요즘 시대에 맞는 트렌드를 좇는 것이다. 예를 들어, Chat GPT가 대세이면 Chat GPT에 대한 글을 쓰고, 재테크가 대세이면재테크에 대한 글을 쓴다.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한창 사람들이 여행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 여행 관련된 글을 쓴다.  

아, 물론 이해는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아무리 출간 작가라고 해도 책을 낼 수도 없고, 돈벌이는 힘들다고 봐야 한다. 대부분의 작가가 어쩌면 전업작가의 비율보다 본업을 유지한 채  글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직 글로써 생계를 이어간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신념에 따른 글쓰기는 오직 나만의 단어를 찾기 위한 글쓰기다. 시대반영을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내 관심사에 집중한 글이다. 내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다면 미니멀리즘에 관한 글을 쓰고, 아무도 관심 없는 미지의 나라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면 그 나라에 대한 글을 써보는 그런 식. 나만의 신념이 들어가 있으면 나만의 단어가 있고, 결국 내 독자들이 어떤 글을 봤을 때 '이건 00이 쓴 글이네'라고 알 수 있는 개성을 가지게 된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작가가 있다. 아무리 출간작가라도 본인만의 색깔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가는 흔치 않다. 그만큼 글에서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기가 어렵다는 거다. 그건 본인만의 단어가 없어서 그렇다. 아니, 아침 출근길 지하철만 타봐도 보이지 않나.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모두 회색 빛이다. 무표정에 회색 빛. 모두가 똑같이 생겨서 한번 지나치면 다시는 기억 못 할 얼굴들. 그건 표정이 똑같아서 그렇다.글에서 그 표정은 바로 단어다.


이 단어를 찾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인풋이 무조건적으로 많아야 한다. 새로운 사람 만나기, 책, 더많은 경험을 쌓는 것 등 무조건 내 안에 들어오는 게 절대적으로 많아야 한다. 경험을 더 많이 쌓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주말을 이용해 여행을 가거나 한시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는 있겠지만, 월화수목금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 기준으로 더 많은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시간을 억지로 내야 하는 일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떤 모임에서 서로 약속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힘들다. 하지만 가끔이라도 이런 기회를 가져야 한다.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되면 그 자체로 고립된다. 늘 만나는 사람과는 하는 얘기도 똑같고 서로의 사정을 다 알기 때문에 늘 쳇바퀴 같은 얘기만 할 뿐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대화를 통해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내가 관심 없던 부분, 몰랐던 부분을 발견한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다가 10년 만에 연락이 닿은 형이 있다. 최근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형이 시계 전문가라는 것을 알게 됐고, 마침 결혼을 준비하며 예물 시계를 보러 다니던 때라, 시계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넓어진 관심사는 좋아하는 취미가 하나 더 생기는 것과 같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새로운 만남을 이어 갔기 때문이다.


타인을 만날 시간적 여유가 도저히 안되면 나만의 경험을 늘려가보자. 누군가와 약속을 하지 않아도 되기에 시간절약이 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오래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관심사에는 아낌없이 투자해 보기. 안경이나 피규어, 악기, 게임기 뭐든 괜찮다. 취미도 마찬가지. 돈이 없으면 도서관, 서점에서 책만 읽고 나와도 된다. 어차피 다 남는 거다. 생활 속에서 나만의 인풋을무조건적으로 늘리면 글 속에서 서서히 나만의 단어가만들어질 것이다. 그렇게 글을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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