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관리인가
주말 아침, 레이저제모를 하러 강남 피부과를 방문하면 놀라는 것이 있다. 문을 여는 9시부터 남녀노소 불문하고 아예 앉을자리가 없다는 것. 아무래도 제모는 남녀 모두 자기 관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보니 그럴 것이다. 유명하면 유명할수록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문조차 할 수 없다. 20-30대는 차치하고,
40-50대들도 힙하게 옷을 차려입고 주말 아침부터 일찍 시간을 내 방문했다고 생각해 보면 자기 관리 중에서도 외모를 가꾸는 일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는지 새삼 느낀다.
카운터에는 일본어, 중국어가 유창한 직원 아니, 외국인 직원이 상주해 있다. 옆에 살짝 물어보니 한국이 피부과나 성형외과는 전 세계 탑이기 때문에 여행 오는 겸 성형 의료쇼핑을 하러 오는 사람이 많단다. 어쩌다 한국사회는 이토록 보이는 것이 중요해졌을까.
2030 청년은 각자의 삶에 치여 과거보다 이성을 만날 기회가 많이 없다. 그래서 지인을 소개해줄 때가 많은데, 그중에서 늘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사진을 주고받는 '서류전형'이다. 서로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 외모가 상대에게 괜찮은지를 보여준다. 몇천 장 찍어서 그중에서 가장 잘 나온 사진만 골라골라 보여준다.
여기에 어느 좋은 회사를 다니고, 취미는 무엇이며, 성격은 어떻고, 얼마나 성실한지 아름답고 듣기 좋은 단어만 정성스럽게 모아 부연설명을 곁들여야만 가까스로 통과가 된다. 그러면 이제 '면접전형'으로 넘어간다.이 면접전형이 바로 서로 대면해서 밥도 먹고 커피 한잔 마시며 '이 사람이 나와 연애를 할 수 있는가? 할 자격이 있는가?‘ 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단계라 하겠다. 서류전형이든 면접전형이든 밸런스는 극도로 중요한데, 여기서 사진과 얼굴이 다르다거나, 혹은 외적으로 깔끔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하면 상대 이성으로부터 호감을 사기가 어려워진다. 이 사람이 얼마나 내면적으로 인성이 바르고, 성실하며, 가정적이고, 인품이 훌륭하고, 여성에게 다정다감한지는 둘째 문제고, 그전에 코털이 삐죽 튀어나왔다거나, 수염정리가 안 됐다거나, 눈곱이 꼈다거나, 머리상태가 엉망이라던가 하면 손도 잡기 싫을 것이다. 이처럼 외면적 요소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상대로부터 거부감이 안 들게 만들도록 하는 최소한의 의무사항이된다. 그 최소한의 기반이 갖춰지고 더 나아가 멋을 부린다고 하면 가령, 노랑 컨버스를 신었다거나, 오버핏이 어울리는 힙한 정장을 입었다거나, 명품 시계를 찼다거나 본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나타날 수 있다. 거부감을 피하는 최소한의 과정을 넘어 개성을 표출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는 꼭 본인을 외적으로 치장하는 걸 넘어 다이어트를 한다거나, 근육을 키운다거나 하는 자기 계발적 요소도 다 포함된다. 이러면 이제 상대는,
"아, 꾸준히 운동을 하는 성실한 사람이구나"
라는 신뢰감까지 마지막으로 가진다. 즉, 거부감을 피하고, 개성을 표출하고, 편안함과 신뢰감까지. 상대에 대한 인식을 정하는 모든 단계별 절차가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래서 외적인 부분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스티브잡스가 청바지와 폴라티만 입고 다닌다고? 그렇지 않아도 다 성공한다고? 똑같은 옷, 똑같은 신발 여러 개 미리 사놓고 본인은 미니멀리스트고 이렇게만효율적으로 단벌신사처럼 살면서 이성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고? 당연히 있다. 어차피 개성을 드러내는건 포기해도 아무 상관없다. 상대에게 거부감만 주지 않으면 되거든.
근데 이 방법이 성공하려면 단 한 가지 전제가 있다.
'깔끔함'이 꼭 수반되어야만 한다는 것. 깔끔하면 반이라도 간다. 머리는 아이비리그컷처럼 남자답게 짧게, 수염도 제모를 하지 않을지언정 깔끔하게 밀고, 손톱도 짧게, 눈썹정리도 하고,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을 보이면 이성뿐만 아니라 만나는 그 어떤 상대에게도 신뢰를 줄 수 있다. 온갖 미디어에 자극적으로 노출된 연예인이 원인이 되어 일반인들에게 상향평준화된 외모관리가 현실에서는 사실 깔끔함 딱 하나만 있어도 된다는 거다. 굳이 유행 좇아, 연예인 쫓아 꾸며봤자 본판이 다르기 때문에 사실상 그 느낌도 완벽히 구현되기 어렵다. 괜한 돈낭비 할 필요 없이 이 방법도 꽤나 현명하다.
겉모습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때와 장소에 맞는 격식만 잘 갖춘다면 사실 외모관리는 본인에게 손해 볼 것이 없다. 각자 선호하는 스타일만 있을 뿐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나의 외적인 부분을 어필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면 사실 진짜 코어는 내면이다. 연예인 외모 4인방 장카유설이니 뭐니 연예인 노출은 매일 뉴스 1면을 채우고 가십반 동경반으로 우리는 매일 외적인 모습을 가지고 시간낭비를 하는데 사실 이 모든 건 내면에서 드러나야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바로 '누구에게 보일 것인가'에 치중하지 않고 '내 내면을 어떤 모습으로 상대에게 보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외적인 모습도 그에 따라 바뀐다고 확신한다.
아까 잠시 예시를 들었던 스티브잡스를 보자. 청바지에 블랙 터틀넥.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이 옷차림이 사실상 조금 분석해 보면 스티브잡스 본인만의 시그니처 룩으로 치환된다. 가식 없이 솔직 담백하고, 새로움과 모던함이 옷차림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그게 그의 혁신적인 모델 아이폰에도 정확히 묻어나 있다. 아이폰을 떠올리면 혁신적이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로고 자체가 사과 달랑 하나 그려져 있고 군더더기 없이 미니멀한 느낌을 준다. 그게 그의 옷차림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지 않나. 전적으로 본인의 내면을 외적으로 보인 하나의 예시다.
나이 들수록 우리가 단순히 비싼 옷을 사 입는 이유도 여기서 답할 수 있다. 우선 젊을 때 저렴한 스파브랜드옷을 입는 건 그 젊음 자체에서 빛이 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은 외적으로는 늙지만 성숙함, 노련함, 세월이 섞인 품격 있는 내면적 요소를 외적으로 보여주려 한다. 그런 옷은 당연히 비싸기 마련.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라는 말이 있듯이, 회사에서 한낱 말단사원도 시간이 흘러 팀장이나 부장, 높은 위치에 올라가게 되면 태도나 말투 모든 부분에서 신경을 써야 한다. 밑에 직원들을 케어하고 윗사람의 의중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다. 자칫하면 밑에서 무시당할 수 있고, 위에서 깨지는 샌드위치 포지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 진짜 내면적으로 모나지 않은 깔끔한 면모를 상대에게 보여준다했을 땐 외적으로도 그런 모습이어야한다. 그래야 당연히 일처리도 뭔가 믿음직스럽고, 뒤끝도 없고, 말이 세 나가지도 않고, 관계에서 신뢰감을 주는 인상으로 비친다. 내가 설령 그런 내면이 있다고 자랑하지 않더라도 외적인 모습으로그런 옷걸이와 그런 모습이 되면 심리적으로 생각의 깊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나, 존중까지 저절로 보일 수 있다는 거다. 태도나 감정을 외적인 모습으로도 충분히 나타낼 수 있으니 우리는 온갖 화려함보다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정장을 입으면 약간의 불편함과 동시에 격식을 갖추게 되고, 청바지를 입으면 좀 더 유연한 이미지가 되며, 구두를 신으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느낌이 확실히 나지 않나. 트레이닝복을 입으면 그냥 편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회사에 출근할 때 트레이닝복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단순히 내가
‘레이저제모를 함으로써 누군가에게 깔끔하게 보여야지‘ 라는 생각보다는 이 대기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모두가 본인의 깔끔하고, 믿음직한 내면을 외적으로 더 증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거였으면 한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외모관리를 진짜 잘한다는 건, 옷을진짜 잘 입는다는 건 단순히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내 교양과 안목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옷차림이 최고의 옷차림이라는 걸. 그래서 아직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