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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시장 빈익빈부익부

7화: 차이

by 홍그리

눈에 보이는 것이 이제 없다는 걸 나는 느낀다. 아프리카초원의 맹수도 당장 오늘 저녁 먹을거리가 없다면, 내 새끼가 굶고 있다면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사냥을 나가는 법이다. 그리고 하이에나한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내 새끼가 사냥감을 먹는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 내가 지금 자기 객관화가 안돼 이것저것 가린다면 사자보다도 지능이 딸리는 놈이라는 것.


아침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9시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나는 그때 일어나서 허우적대고 있으니무언가 삶을 손해 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7시에 동네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도 시켰다. 문을 여니, 바로 신문이 배달되어 있다.

봐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분도 이렇게나 열심히 사시지 않나. 자극을 많이 받는다. 세상에서 제일 나 스스로가 한심할 때가 언젠지 아는가? 최근에 느껴보니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아침 아홉 시, 열 시에 일어나서 카톡을 확인하는데 카톡은 와있는 것도 없고, 프로필이 업데이트된 지인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볼 때다. 누구는 연애하고, 누구는 해외여행 가고, 누구는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누구는 결혼하고, 애 낳고. 아 물론, 나도 여기서 따라 할 수 있는 건 있다. 맛있는 브런치 먹으면서 종업원한테,

"이렇게 사진 쫌 찍어주세요"

하고 내 폰을 건넨 뒤, 아주 그럴싸하게 멋지게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릴 수 있다. 근데 하지 않는다 왜냐. 누구와 함께 왔을 때에만 장소가 주는 기쁨과 충만한 행복이 오는데, 같이 할 사람도 없고 돈도 여유롭지 않다면? 굳이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둘째는 사진첩을 볼 때다. 어느 순간부터 내 사진이 없다. 옷도 이쁘게 입고, 머리도 만지고, 살도 빠지고 해야 어딜 놀러 가더라도 사진 찍을 맛이 나지, 도저히 이몸뚱이로는 사진 찍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늦게 일어나고, 먹기만 한 끝에 살은 어느새 10kg가 쪘다. 70킬로에서 80킬로. 내가 살이 이만큼 쪘다는 사실을 평상시에는 전혀 알지 못하다가 청바지를 하나 사러 갔을 때 느꼈다. 허리 인치가 보통 30이었는데, 32를 입어도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34를 입는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는 거다.


취업을 한 놈들은 퇴근 후 운동을 가고, 영양제도 챙겨 먹으면서 머리도 만지고, 옷도 사고, 오히려 더 자기 관리에 열심이다. 직장이 있어 든든한 데다가 멋진 몸까지 만들어 소개팅도 잘 들어온다. 난 직장이 없으니 더 대충 살게 되고, 헬스장 갈 돈을 아끼게 되고, 취업을 안 했으니 아무것도 시작을 할 수 없다는 온갖 딜레마에 빠진다. 그래서 살도 찌고, 자책하고. 더 모든 것이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변명이라고, 그렇게 좀 살지 말라고들 말한다. 그 착각에서 제발 벗어나라고 하지만, 사실 이건 변명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다. 이 폭염에 바깥에서 달리기를 했다가는 더워서 기절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헬스장에 갈 돈은 있어야 하고, 머리 자르는 것도 사실 다 돈이다. 물가가 올라 남자커트도 웬만한 곳은 다 이만 원이 넘는다. 하루 24시간 중,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렇게 대부분을 현타 속에서 보낸다. 세상에 내가 전혀 필요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마시는 공기도 아깝다.


그러다 갑자기 문자가 하나 온다.


'00 공사 청년인턴 서류전형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면접은 9월 27일 오전 10:00 화상으로 진행 예정이오니, 아래 링크를 확인하여 해당 시간 10분 전까지 접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복장 및 주의사항 안내는 하단의 첨부파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럴 수가. 청년인턴에 합격했단다. 아니, 내가? 내가 어떻게 여기 서류합격을 하지? 어디 보자. 오늘이 9월 21일. 심지어 당장 다음 주다. 사실 회사 정규직에만 목숨 걸던 이번 주엔 자소서 쓰는 기계가 되면서 나는 여기 넣은 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차피 지금은 지갑에 백만 원도 없는 백수니까, 용돈벌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때우자고 생각했던 청년인턴에 바로서류합격을 하다니!

바로 네이버에 00 공사 청년인턴을 검색해 본다. 이번에 경쟁률이 10:1이었다고 한다. 서류전형 합격에서 열명이 지원했다면 그중에 한 명만 붙은 거다. 그 붙은 사람 중 한 명이 나라니. 갑자기 도파민이 끓어오른다. 아직은 내 삶에 희망이 있다고 스스로 위안 삼는다. 그러면서 순간 스치는 생각은 두 가지.


첫째는 내가 어떻게 10:1의 경쟁률을 뚫고 붙을 수 있었는지. 두 번째는 그렇다면 면접준비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걱정이다. 아. 대기업 서류를 그대로 '복사+붙여 넣기' 한 거니까, 어디서든 호환가능한 내 마법의 자소서 노트가 증명이 됐다는 의미로군. 하하. 역시 내가 실력이 없어서 떨어진 게 아니었어!

인생은 역시 운이라는 생각이 온 정신을 지배한다. 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이 공사에 대해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까 일단 면접스터디를 알아보자.


자소설닷컴 00공사 채팅창에 들어가니 마치 대한민국백수 집합소를 연상케 한다. 확실히 여기는 여기만의 세계가 있다. 이 회사 청년인턴에 지원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스펙을 공유하면서 내가 왜 떨어졌는지, 내가 왜 붙었는지, 붙은 커트라인과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의미 없는 논쟁을 하고 있다. 누구는 부동산학과에 토익이 900점인데 인턴을 떨어졌다느니, 여기는 자기소개서가 제일 중요하다느니, 싸우고 난리다. 여기 내가 끼어봤자 아무 득될게 없으니 다 무시하고, 타자를 친다.


'합격자 분들 중, 부산대 앞에서 면접스터디할 분 구해요. 4명 정도로 생각 중입니다. 단체톡방 들어와 주시고 비번은 1234입니다.'


라고 올려본다. 제목은 '25년 00 공사 청년인턴 면접스터디'라고 하고 개설한다. 이렇게 한 명이 총대를 메는 사람이 있어야 뭐든 일이 빠르게 진행된다. 이번에는 그 누구보다 간절한 내가 그 총대를 매기로 했다. 갑자기 단체 대화방에 몇 명이 미끼를 문다.


"저 할게요"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저도요!”


안 올지도 모르니 보증금 만원을 내 계좌로 받기로 한다. 현대인들은 이렇게 해야만 잠수를 안 탄다. 이건 팁이다. 남녀관계에서도 무언가 손해 볼 것 같은 사람은 잠수 타거나 손절 잘 안 한다. 받고 나서 대등해졌을 때한다. 20분 정도 지나니 벌써 4명이 찼다. 자, 이제 마감.

비공개계정이라 이름이나 프로필사진은 모르지만, 두 명은 여자고, 한 명은 남자다. 그냥 말투 보니 감이 그렇다. 노량진에서는 이런 그룹스터디가 섹터디라느니 해서 공부는 안 하고 연애만 하는 인생 망하는 루트라고 하는데, 인생을 그렇게 즐기려 해도 돈이 없어 그럴 여유조차 없다.


당장 다음 주에 면접이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일단 빠르게 통성명을 하고 내일 만나기로 한다. 어차피 청년인턴 면접스터디까지 오는 사람들이면 어디 정규직으로 일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냥 두시로 정해야겠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날 생각 하니까 뭔가 긴장이 돼 밤이 늦었는데도 잠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어쨌거나 내가 모은 인원이고 하니 책임지고 스터디 리딩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자리한다.


(다음날)


스터디카페의 한 회의실을 예약했다. 한 시간에 7천 원이다. 대학가 주변은 집값이 저렴해 청년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을 알고 있어서인지, 저렴하게 해 준다. 한두 명씩 들어오신다. 역시 내 예상이 맞다. 여자 2명, 남자 1명 나까지 총 4명.


각자 자기소개를 한다. 먼저 나와 같은 동년배 남성분이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김경섭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32살이고,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 기존에 회사를 그만두고 새시작해보려고 여기 지원했는데, 운좋게 됐네요.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습니다. 모두 좋은 결과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두 살이나 많다.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있다. 회사를 다닌 경험도 있다. 근데 여기 청년인턴을 지원했다고? 참. 요즘 아무리 취업난이라지만 이건 아니잖아.삶이 이렇게나 팍팍하다. 요즘 청년들 돈 벌기 진짜 힘들다 힘들어.


다음은 여성분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민정이라고 합니다. 취업준비생이고, 27살이에요. 사회복지학과예요. 전공 바꿔 공기업준비하다 경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지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민지입니다. 저는 28살이고요. 3년 공무원 준비하다 포기하고 취업준비를 하러 왔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와. 이 넷의 공통점이 뭘까. 아니, 정확히는 나 빼고. 나는 생계가 급해 지원을 한 거고 이들은 모두 경력이나 준비하던 경험을 다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여기에 진심이라는 거다. 정규직도 아닌 이 계약직보다도 못한 청년인턴에 이토록 열정을가지고 오다니. 스스로도 많이 배운다. 지방에서 지방대 나온 혹은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 마치 어떤 거라도 좋으니 해보자는 마인드라 그럴 수도 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랄까? 동정과 함께 우리 사이에서도 묘한 긴장감이 자리한다.


이처럼 지방에선 웃프게도 면접스터디를 하는 이유자체도 명확하다. 우리끼리 뭉칠 수밖에 없다. 서울은 수많은 정보 주고받으면서 같이 앞서가는데 지방은 그 정보가 오는 데도 한참 시간이 걸린다. 기업 현장 리크루팅이나, 채용설명회도 다 서울에서만 한다. 가끔 지방에 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거의 쇼라고 보면 된다.

어쩔 수 없이 정부 눈치 보면서 형평성을 강조하기 위한 기업의 보여주기 쇼. 사실 몇 번 가보면 알 수 있는 게 지방 순회는 일회성에 불과하고, 다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와중에 또 그거 하나 들으러 KTX왕복 10만 원의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또 그건 아니다. 그래서 지방에 남아있는 사람들끼리라도 어떻게든 뭉쳐서 뭐라도 해보자. 발버둥을 쳐보자라고 할 수 있는 게 면접스터디뿐인 거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김형규고 나이는 30살입니다.저도 지금까지 취업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실 뭐 스펙이 크기 없어 소개하기도 어렵네요. 영어랑 제2외국어 조금 합니다. 하하. 바로 시작하시죠!"


면접스터디의 진행방식은 이렇다. 각자 서류합격한 자소서를 꺼내놓는다. 2:2로 팀을 만들어 질문하고 싶은 내용을 다섯 가지 정도 추린다. 실제 면접장을 빙의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다. 상대는 그걸 들으면서 그대로 답변자의 대답을 타이핑하고 서로 수정보완하는 식이다. 이는 실제 면접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이, 내가어떤 말을 했는지, 그리고 타인이 볼 때의 이 대답이 과연 적절한지, 동문서답을 한 건 아닌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나랑 팀플레이를 하는 분은 민정 씨다. 어차피 이 면접에 붙든 말든, 이 00공사의 청년인턴 전형이 끝나면 안볼 사이기 때문에 딱 이 정도의 존칭이 적당하다. 나도 그랬다. 여태껏 토익스터디를 하든, 과제 팀플을 하든, 학원을 같이 다니든 끝나면 술도 마시면서 급 친해지는 무리들이 있는데, 그것도 어느 한 시절 이야기일 뿐이다. 나이 30살 넘으면 아무도 연락 안 한다. 단톡방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진짜 마음에 잘 맞았던 단톡방 역시 각자 삶이 바빠 무언가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공통적 수단 혹은 사람이 한 명은 최소 속해있어야만 단톡방이 죽지 않는다. 그래서 별로 정은 주고 싶지 않다.


나의 1분 자기소개가 끝나자, 민정씨가 실제 면접을 빙의해 질문을 한다.


"형규씨는 사투리는 고칠 생각이 없으신가요?"


헉. 이 여자 뭔가 좀 세다.



-8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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