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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과 기혼 경제관 차이

주거의 안정에 대하여

by 홍그리

20대 후반이나 30대 초 첫 일자리를 구한 순간이 오면이전과 확실히 다른 삶의 안정감이 찾아온다. 과거에는 편의점에서 뭘 하나 산다 해도 가격표를 보고, 쇼핑을 가서도 10만 원이 넘으면 괜히 주저했는데, 이제 그정도쯤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지인들에게 술 한잔도 그냥 막 산다.

직장을 구한 곳이 서울이라 가정하자. 서울에서 원룸 월세 70-80을 내면서 살면 서울 한복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잘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심지어 대기업에 다녀 회사 사택이나, 복지차원에서 얼마 이상의 주거 지원을 통해 주거비를 아예 안 낸다면 더더욱. 친구나, 지인과 같이 살면서 월 30~40만 원 정도만 주거비를 내는 사람도 봤다. 어쨌거나 이때는 이 정도의 금액을 제외하고는 사실 주거가 쉽게 해결되기에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 쉽다. 당장 적은 금액의 보증금과 월세만 있다면 다른 곳에 (코인이나 주식)에 재테크를 하면서 자산형성을 하는 데 큰 안정감을 느낀다. 와이프도 없고, 자녀가 없다면 더더욱 원룸에서 그냥 나 혼자만 잘 살고 있으면 되니까 큰 부담이 없다.


이 미혼 청년들은 돈을 어디다 쓸까. 똑같다. 월 300만원 받는 직장인이 있다면 주거비 최대 잡아 70을 잡으면 230이 남는다. 보험료, 통신비, 식비 빼면 보수적으로 잡아도 120~130 이상은 남겠지. 데이트하고, 맛있는 거 먹고, 친구들과 술 한잔 해도 사실 큰 부담이 없다. 이조차 아끼는 사람들은 쓸데없는 유흥에 돈을 안쓰면서 악착같이 모아 30대 초 정도에는 평균적으로

1억~1억 5천만 원 정도 모은다.

자, 이젠 겨우 시작점이다. 여기서 나랑 비슷한 상대와 똑같이 결혼을 해서 어떻게 자산을 불려 나가는지로 보자면 이제 겨우 그 자격에 갖춰진 출발점에 섰다는 거다. 이 출발점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최소한 결혼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맞춘 거니, 그 기준은 빨리 맞춰야 한다. 근데도 간혹 본인이 이 정도 자산이 있으면 본인은 주식으로, 혹은 무언가로 의미 있는 자산을 만드는데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결혼이나,출산이나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들을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어찌어찌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 결혼을 준비한다해보자. 결혼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7할 이상을 차지하는 게 바로 신혼집 즉, 주거다. 지방에 있는 친구들이 유독서울에 있는 사람보다 결혼과 출산을 빨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출발선이 빠른 것도, 지방은 집값이 서울보다 저렴하니까 서울집값과 지방집값의 그 차액으로 결혼하고, 차사고, 주식하고 하는 거다.

자, 그럼 우리 가족은 당장 어디 살아야 하는가? 풋풋한 신혼이라고 마냥 몸테크 한다고 서울에서 원룸엔 들어가기 싫고, (본인은 그럴 의지가 충만하다 한들, 본인과 똑같은 마음을 가진 상대를 만나기가 굉장히 힘들다) 좀 넓은 집에 살고 싶은데 지금 모은 1억, 아니 둘이 모아 2억이라도 전세도 택도 없고. 그 중간의 어떤 타협점을 찾아 구축아파트 전세라도 들어가면 다행이다. 이것도 굉장히 높게 가정한 거다. 자, 그럼 나머지 3할. 결혼식대비, 결혼식대관비, 신혼여행비, 사진비용, 스드메에, 웨딩밴드에, 예복에 이 모든 돈은 누가대주는가? 또 둘이 상의해서 너무 호화스럽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없어 보이지 않게 마련해야 한다. 이 돈도 진짜 아끼고 아낀다 해도 총 3천만 원~4천만 원은 들겠지. 다 보수적으로 잡은 거다. 그럼 본인이 30대 초에 모은 1억이 실제로 그 1억이 아니게 된다. 결혼하고 새 마음으로 다시 리셋된다고 보면 된다. 지금 주식이나 코인으로 수익 좀 낸 게 본인이 자만하면서 재테크를 잘하고 있다는 게 아니란 것. 나 혼자일 때는 당연히내가 지인들과의 술 조금 덜 마시고, 여행 안 가고, 식비 아끼고 하면 돈 모으는데 쉬울 줄 알았지. 중요한 건이 모든 가정도 '나처럼 아끼고 이 나이 때에 1억 이상 모은 30대 초 상위 10% 이내 이성'을 만났을 때의 얘기다. 나머지 90%는 이보다도 훨씬 쪼들리는 삶을 살게 된다.


자, 문제는 이제 더 커진다. 자녀가 생긴다. 참고 참아온 뚜벅이 짠돌이니 30대 초에 1억을 모았을 것이다. 자녀가 태어나는데 차가 없을 수 없다. 병원도 가야 하고, 장도 봐야 하고. 차를 사면 또 몇 천 깨진다. 그리고 전세만기는 다가온다. 자녀에게 드는 비용도 만만치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신혼 2년~혹은 3년간 우리가 얼마를 악착같이 모았고, 재테크를 잘했는지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쪼들리지만 현실이다. 만약 잘했다면, 둘이 안정적인 급여소득자라면 대출을 많이 당겨 서울에 집을 샀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또 전세대출을 받아 전세를 전전할 것이다. 자녀가 있는데 2년마다이사를 다니는 삶이란, 한없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둘 중에 한 명은 또 육아휴직을 할 테니 소득은 반으로 당연히 줄어들 테고, 돈 잘 벌고 안정적인 급여소득자가 아니라 소득이 불안정한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라 해보자. 이럴 확률이 사실 훨씬 더 높지 않은가. 머리가 아파온다.


주거의 문제는 여기서 나타나는 거다. 최근 강도 높은 또 다른 부동산 규제가 발표되면서 밤 열 시가 넘은 시각에도 국토부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어떻게 좀 더 나은 곳에서 안정감을 가지고 사는가’ 모든 게 여기에 집중돼 있다. 더 나은 곳은 당연히 교통이며, 주거며, 생활인프라 모든 걸 압도하는 서울일 테고, 거기에 자녀 학군이 포함되면 서울의 특정지역으로 스포트라이트는 집중된다. 그 서울 가운데서도 강남, 서초, 마용성은 머지않아 진짜 장벽이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본인만의 리그, 본인만의 철옹성을 쌓아가겠다는 논리다. 현금 없는 사람은 빚도 내지 말고, 그냥 서울을 쳐다보지도 말고 지방에서 그렇게 조용히 살아라. 이런 거다.

재테크에도 수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그 원초적인 목적은 어쩌면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악착같이 그렇게 20대 후반부터 식비 아끼고, 술값 아끼면서 돈을 모았는지 모른다. 사람은 원시시대 때부터 보호본능 즉, 나와 내 가족의 몸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1순위였고, 이 생존본능이 모든 본능을 압도해 왔다. 현대사회에서 이 생존본능은 당연히 주거가 된다.


집을 산다는 것. 특히나 그것도 서울에서 집을 산다는 게 돈이 묶여있어서 리스크가 있고, 또 경기침체로 장기하락세가 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다고 혹자는 말한다. 근데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최소한 가족이 있고 가족을 꾸릴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집 안 사고 주식, 코인에만 올인한다면 수익실현을 해도 과연 삶에 있어 최소한의 안정감이란 게 생길지 의문이다. 미혼은 절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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