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주차-가족
1. 로또에 당첨된다. 몇십억을 하루아침에 거머쥔다.
2. 아픈 곳이 없다. 건강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 즉, 경제적 자유를 이룬다.
3. 잘생겼거나 이쁘다. 춤도 잘 추고 노래를 잘한다. 타인이 가지지 않은 능력이 있다.
4. 그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피해받은 적이 없다.
5. 매사에 긍정적이고 늘 희망을 가지고 산다. 자아실현을 한다. 주위에는 그를 응원해 주는 사람만 있다.
자, 이 모든 걸 한 사람이 가졌다 했을 때 타인이 바라보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세상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삶일 테다. 자, 그런데 조건을 하나 붙여보겠다. 가족이 없거나, 사랑하는 애인이 없다. 아이가 없다. 그렇다면? 한창 놀다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 넓은 집에 본인을 반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그건 불행한 삶에 가깝다. 나이가 들어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사는 사람들, 돈이 많아 아무 걱정 없는 사람들도 늙으면 주위에 남는 사람은 자연스레 적어진다. 본인이 아무리 돈을 쓴들, 베푼들, 시간과 돈, 그 어떤 노력을 해도 본인 곁에 끝까지 남아주는 사람은 없다. 왜? 그들은 가족이 있거든.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그 어떤 무언가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이 있거든. 가족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부자든, 긍정적이든, 능력이 있든, 계속 함께 할 시간이 없다. 그는 그 외로움을 돈으로 달래려 한다. 방법은 여러가지겠지. 그렇게 그 돈으로 삶을 행복이 아닌 버거움으로 만든다.
기쁨을 느끼면 기쁨을 공유할 누군가가 있어야 배가 된다. 그리고 본인에게 충만함이 온다. 반대로 갑자기 예키지 않았던 불의의 사고라던가, 비보를 접했을 때 곁에 누군가가 없다면 그 외로움과 슬픔은 배가 돼 한 사람을 낭떠러지로 내몬다. 큰 비보를 겪은 사람을 혼자 두면 안 되는 이유 그리고 결혼식은 안 가더라도 장례식장에는 어떻게 해서든 꼭 가서 위로해 주려는 이유가 다 그런 것이다. 결국은 내 사람, 가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족이 본인 인생의 첫 번째가 되어야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밥을 먹고, 사업준비를 하고, 출근을 하고, 예적금을 들고, 주식을 하고, 재테크와 승진에 목숨을 걸고, 이 재미없고 지루한 일상을 채우는 무언가의 본질을 거슬러올라가면 결국은 가족을 위해서 이렇게 사는 것.
혼자 살면 사실 아무짝에 다 필요가 없다. 직장도 대기업에 안 들어가도 편의점 알바만 해도 솔직히 먹고 산다. 프리터족 봐라. 혼자살아 돈이 남아서 주식도 하고적금도 든다. 먹고사는데 전혀 지장 없다. 혼자 평생 산다고 가정했을 때 한 남성은 3억 정도만 있어도 그냥 파이어해도 된다. 조금 보수적으로 잡으면 5억. 국내나 미국 배당주 ETF만 사서 배당받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SCHD나 JEPI에 몰빵해도 배당으로 먹고사는데 아무 지장 없다.
근데 왜 한 성인이 좋은 대학에 가려고 아등바등, 대기업에 가려고 아등바등, 재테크 공부를 하고 어떻게든 투잡, 쓰리잡 뛰면서 그렇게까지 꼭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동기부여를 생각하면 답은 하나뿐이다. 가족.
내 새끼, 내 아내를 내가 지키기 위해서 그 힘이 나오는거다. 만약 혼자 산다면?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퇴근 후 투잡, 쓰리잡 할 에너지나 의지 자체가 없다. 그 힘의 근원자체가 다르기에 자연스레 퍼포먼스를 낼수 있는 힘의 크기가 달라지는 셈.
자, 그러면 결혼적령기에 있는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하겠지.
나도 빨리 여친/남친을 만들어야지
그래서 결혼해야지. 결정사에 가입해서 좋은 조건의 이성을 만나 빨리 결혼해서 가정을 일궈야지. 그게 본인이 돈을 버는 이유가 될 테니.
그리고 이미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아! 나는 이 자체로 성공한 삶이구나. 돈을 얼마 벌지 못해도, 잘생기지 않아도, 아무 능력이 없어도 최소한 지금 내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만큼은 벌고 있으니까 된거구나’
아니? 이 자본주의는 가족의 유대감과 충족감을 변질시켜 놓는다. 예를 들어보겠다.
1. 가족이 있어도 아빠는 퇴근 후티비만 보고, 엄마는 집안일 하고 아이쇼핑하고, 아들/딸은 각자 방에서 핸드폰만 하면서 대화자체가 없는 가족. 과연 행복할까?
2.할머니/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슬퍼하기는커녕 편육을 먹고 육개장을 먹으면서 소주를 들이키며 재산분할에 대한 심각한 눈치게임을 한다. 행복할까?
3. 돈 얼마로 죽니사니 하고 몇십 년 안 보고, 서로에게모르는 사람보다도 못한 짐짝이 되어 손절해 버리고, 어디로 실종됐는지도 모르는 가족. 행복할까?
4. 본인이 자식에게 당연히 대접받아야 하고 평생을 빌붙어 살려고 빨대 꽂는 부모와 거기에 힘들어하는 자식, 반대로 서른다섯이 넘어 부모집에 얹혀살면서 취업은 안 하고 용돈하나 없이 부모등골 빼먹는 자식. 행복할까?
이런 사회문제가 안 생기려면 가장 소중한 그 가족에게서 가장 기본적인 도리가 갖춰져야 하는데 이 세상은 돈 앞에 무수히 많은 것들이 변질되고 왜곡되고 잊혀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 원래부터 맞았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냥 그 당시 좋아 결혼하고 살다 보니 애 생겨서 애 낳고 가족이 만들어졌고 ‘그냥 다 이렇게 사나 보다~’ 가족이 뭐 대순가하며 ‘돈’과 관련된 본인인생에 몰빵 하는 케이스를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본다. 그리고 그들은 유대감과 삶의 충족감 없이 피폐해지고 각박한 현대사회에 아주 자연스럽게 젖어든다.
앞서 말한 저 최고의 조건 속 가족이 없다면 의미 없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해석하면 가족이 있다면 저 조건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란 거다. 없어도 된다. 로또가 당첨되지 않아도 돈이 없어도 빵 한 조각도 가족과 나눌 수 있으면 엄마는 행복해한다. 아픈 곳이 있어도, 아이 앞에선 그 누구보다 강한 아빠가 된다. 아무런 능력이 없어도 노가다라도 해서 내 가족을 지킨다. 밤에는 대리운전이라도 한다. 긍정적이지 않고 지금 불행해도현실을 직시하고 어떻게든 이 힘든 상황을 벗어나려 한다. 그게 가족이다. 넓은 집에서 맛있는 음식 먹으며 풍족한 가족의 모습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서로 힘이 되어 보호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게 제삼자가 볼 때 더 기억나고 감동적인 것처럼. 그런 거다.
결국은 가족뿐이다. 매사에 일어나는 모든 내 주체적인 결정과 행위는 결국 직간접적으로 가족을 위한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매사의 결정들은 꽤나 명료하고 단순해진다.
이 글을 왜 썼냐고요? 갑자기 무슨 가족 타령이냐.
와이프가 용돈모아 깜짝선물로 맥미니 사 줬습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