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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제작기 07] 글을 쓰게 하는 힘

by 기은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가. 마감이다. 아무리 많은 금액의 원고료가 주어진다 해도 마감 만큼 작가를 직접 움직이는 것은 없다. 아직 전문/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궁금하다면 나에게 많은 금액의 원고료와 함께 청탁을 해봐도 좋다.


이 마감이란 것을 프로 작가는 원고료라는 돈과 함께 받는다. 아마추어 작가는 그 마감을 돈을 주고 산다. 창작 강의에 수강료를 내고 과제 제출 기한을 받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세미프로 작가는? 돈을 받기를 바라며 마감을 준비한다. 공모전 상금이나 창작지원금 등의 지원 마감일을 목표로 글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프로와 세미프로와 아마추어. 글을 쓰는 모두가 작가라고 말하는 이 시대에 굳이 이 세 단계로 작가를 구분하자면 나는 지금 세미프로에 해당한다. 처음 정식으로 발표한 손바닥문학상 수상작부터 그랬다. 그 대회의 주제와 마감일이 없었다면 내가 〈한사람이다〉 같은 글을 쓰는 일은 아마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마감에는 신비한 힘이 있는 셈이다. 스스로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글을 써내게 하는 힘 말이다.


나의 첫 단편영화인 [내 자전거]도 마감이 없었다면 그렇게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영화의 첫 메모는 아마 그대로 찍었다면 5분짜리 스케치에 불과했을 분량의 내용만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5분짜리 스케치 메모는 강원영상위원회의 강원영상인 발굴지원 사업이라는 공모의 마감일이 더해지며 17분이라는 일반적인 단편영화 분량으로 이야기 규모가 갖춰질 수 있었다. 제작지원 사업 공모를 위해서는 그에 맞게 분량을 맞출 필요가 있다 생각해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몇몇 설정을 추가한 결과였다.


올해 작업을 준비중인 단편영화 또한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아나운서를 꿈꾸는 전직 방송작가인 주인공이 번데기 발음을 고치려고 하는 장면 하나만 적어둔 이 메모에 마감일이 더해지면서 조금은 다른 이야기로 완성이 된 것이다. 그 마감일은 다름아닌 2024년 강원영화학교 지원이었다.


강릉과 원주와 춘천. 강원영화학교는 이 강원도 대표 3개 도시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영화 교육 프로그램이다. 강원도에 사는 이라면 성별, 연령, 경력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강원영상위원회의 지원으로 모든 교육과정은 무료로 진행되고, 여기에 단편영화 제작에 필요한 장비 및 소정의 제작비까지 주어진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이후 여전히 영화 교육과 경험을 필요로 했던 나는 이런 메리트에 이끌려 강원영화학교에도 지원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이곳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단편영화로 작업할 만한 내용의 시놉시스를 한 편 내야 했다. 이에 나는 지원 마감일을 두고 어떤 이야기로 시놉시스를 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에는 해외 영화제에서도 흥미를 보일 법한 소재와 장르 특색에 대한 생각들도 함께 이뤄졌다. 이전에 칸 영화제에 진출한 한국 단편영화의 사례를 한 차례 찾아본 영향 때문이었다. 그 고민의 결과 나는 이전에 적어둔 [번데기]라는 제목의 메모를 바탕으로 새 이야기를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쓰여진 주요 수정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케이팝 아이돌 래퍼가 되고 싶은 아이가 자신의 번데기 발음을 고치려고 한다.


로그라인으로 할 만한 이 문장을 바탕으로 나는 시놉시스를 쓰기 시작했다. 마감일에 맞춰서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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