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쯤인가. 어떤 입시강사가 인터넷 강의 중에 했던 말의 캡처(인지 쇼츠)를 본 일이 있다. 서울대 신입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입시강사 본인이 만나본 다른 대학의 신입생들과 달리 서울대 신입생들은 노벨상 수상처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해보이는 꿈을 진지하게 품더라는 이야기였다. 입시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지금 당장의 입시 결과보다 더 큰 이상을 품고 꾸준히 정진하길 바라는 입시강사의 동기부여성 발언이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이 이야기는 나에게 꽤 인상 깊게 들린다.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아직까지 서울대 출신이 한 명도 나오지 못한 현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모두가 삶의 중요한 고비라고들 말하는 대학 입시를 이제 막 성공적으로 치른 이들이 그보다 더 큰 고비를 준비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남다르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 꿈을 꾸던 신입생들도 한 학기만 지나면 태도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와는 별개로 말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다니는 동안 나는 이 입시강사가 이야기했던 서울대 신입생들을 떠올리고는 했다. 나의 아카데미 동기들 가운데에도 서울대 신입생들이 노벨상의 꿈을 꾸었던 것처럼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는 꿈을 진지하게 품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꿈은 칸 영화제로 대표되는 해외 영화제 진출이었다. 노벨 상과 다른 점이라면 칸 영화제 진출은 성공한 사례가 꽤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인지 적지 않은 동기들이 퍽 진지하게 칸 영화제 이야기를 했다. 그런 동기들의 영향으로 나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단편영화 가운데 어떤 영화들이 칸 영화제에서 상영이 되었는지 찾아보았다. 이들과 같이 작품을 만드는 이상 어떤 영화들이 이 동기들이 목표로 하는 영화제에서 상영이 되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 시네프 부문에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 윤대원 감독의 〈매미〉, 황혜인 감독의 〈홀〉, 단편 부문에 문병곤 감독의 〈세이프〉, 송민석 감독의 〈밤은 우리를 잡아 먹는다〉 등. 그렇게 찾아본 단편영화의 목록에는 흐름이나 경향이라 할 만한 요소들이 보였다. 그것은 현실의 문제를 어둡고 환상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칸 영화제로 대표되는 세계의 영화시장이 한국의 영화에 바라는 주요한 성격은 아닐까. 이것이 결국 세계적인 것이라 할 만한 방식의 영화는 아닐까. 작품이나 연출자의 지향점과는 별개로 안정적으로 영화를 하기 위해서는 이런 평단과 관객의 취향과 요구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가진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이 같은, 세계적인 것이라 생각되는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나는 “번데기”란 제목의 메모를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첫 메모를 남긴 지 4년, 그 메모에 새 내용을 추가한지 2년 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