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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후트리 Aug 22. 2024

얻어걸린 삶, 덤으로 사는 삶

아빠의 부재 

수어 그림 < 때, 시간 > / 지후트리 / 2022




얻어걸린 삶, 덤으로 사는 삶


아빠가 하늘의 별이 되고 난 이후의 내 삶은 어찌 보면 얻어걸린 삶이란 생각이 든다. 슬픔을 마주해야만 했었고, 슬픔을 멀리 밀어두려 기쁨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발달과정에 있어서 성장과업이 존재한다.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청소년기를 거쳐 노년에 이르는 인생 단계를 거치게 된다. 부모를 통해 태어나며, 유년기에는 가족의 배려로 지적, 정서적, 신체적, 사회적 성장을 한다. 유년기 때까지만 해도 나와 내 동생은 부모님의 배려로 잘 성장하고 있다가 청소년기를 접어드는 시기에 아빠의 부재를 안아버리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가족들에게도 크나큰 부재가 되었다. 그만큼 아빠가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인간 된 도리를 잘 지켰기 때문이리라. 청소년기를 시작하려던 무렵의 장녀인 나는 무의식 속에서 엄마와 내 동생을 지켜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방안에 있으면 가만히 조용히 있던 아이었다고 한다. 타고난 기질 자체가 내향인이었던 나였다. 그런데 아빠의 부재를 겪은 엄마의 초점 없던 공허한 눈빛을 보고선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내가 이대로는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 활발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아빠가 없는 첫 번째로 보내야 했던 내 생일이 다가올 때쯤, 엄마에게 집에서 생일파티를 열어달라 했다. 온갖 친구들을 초대해 집이 시끌벅적했으면 했던 것 같다. 집으로 초대된 친구들에게 열심히 준비한 음식들을 나르며 엄마는 행복해했다. 그때 만들어주신 피자 맛은 잊을 수 없는 맛이 되었다. 이 시간을 통해 엄마는 밖으로 나가 일을 하지 않고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직업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베이비시터였다. 동네 계모임을 하는 친한 이모의 소개로 알게 된 재심이모의 둘째 딸을 돌봐주는 일이었다. 아기가 어찌나 뽀얗고 귀엽던지 새로운 동생이 생긴 기분마저 들었다. 집안에 활기가 돌았다. 서로의 온기를 주고받고 의지해가며 엄마도 나도 동생도 생을 살아냈다. 

청소년기에 만난 아이들 중에 내가 연락하고 지내는 이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나를 시기 질투하여 따돌리려던 아이들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배신을 당했고, 미움을 받았다. 사람을 좋아해서 상처의 타격감이 컸다. 난 고향에서 떠나왔고, 가족들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면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정도로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슬픔으로 점철화된 나의 고향에서 건강하고 진취적으로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서글픈 결핍들을 나에 대한 건강한 사랑으로 채우려 나는 상경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관찰하고 배워 나가며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성장도 했고, 실패도 하고, 성취도 이뤄나가고 있다. 내 안에 있는 덤으로 살아나가는 삶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봐야겠다. 그러니 도전하고 나아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을 되돌아보며 계속 전진해야지. 얻어걸린 삶도 소중하고 중요한 거니까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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