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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후트리 Aug 28. 2024

책 동산

오늘 내게 펼쳐질 세계는 무엇일까 라는 설렘을 안겨줘

수어 그림 < 책 > / 지후트리 / 2017 



책 동산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거나 자주 읽었던 사람은 아니었다.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성향이라 재밌어 보이거나 해볼 만할 것 같을 때 흉내를 내보며 점점 그 문화와 친해졌다. 모르면 물어보고 학습했고,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들과 감성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 열심히 읽고 열심히 써 내려갔다. 동경하고 공경하고 공감하고 동감하고 싶어 호기심으로 시작된 이런 행동들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내면의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은 활자들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걸 체감한 후로는 부담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과 서점을 자주 드나들었다. 처음 드나들 때는 과제를 위해서 또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책을 펼쳤다면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세상사람들이 어떤 말을 담아내려고 했을까, 하고 싶은 말이 그렇게 많았을까, 어떤 책이 나를 이끌게 하지? 이런 질문들을 가득 안고 있으니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기게 됐다. 


대학교 1학년 시절, 공강시간에 조용히 있을 수 있고 돈이 들지 않는 곳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도서관을 찾게 됐다. 학생들이 제일 찾지 않는 깊숙한 어느 곳에 1인용 소파가 놓여 있길래 그곳을 아지트 삼아 자주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앉아서 조용히 시선을 이곳저곳에 두며 마주친 책장에서 철학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발견하곤 하나씩 꺼내어 보며 몇 문장을 훔쳐다 저장했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하루 문장들을 모아서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그 시절의 향수 잔향이 오래 남아 도서관을 가는 것이 거리낌이 없어진 어른이 되었다. 오늘은 내게 펼쳐질 세계는 무엇일까 라는 설렘을 안겨주게 된 것이다. 


자취하는 집에다가 조그마한 책 동산들을 만들게 되었는데 책을 완독 하지 않더라도 책을 가지고 있을 때의 안정감이 생겨 좋았다. 그렇게 두면 꽤나 유용하게 책 동산이 자기만의 역할을 수행할 때가 있다. 바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하거나 멍 때리며 시선을 옮겼을 때 그 시절에 내게 필요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책을 꺼내 한 두 페이지 읽어 넘겨가다 보면 어느새 한 권을 통째로 다 읽을 때도 있고 쉽사리 읽히지 않아 안절부절못하며 상상 속에서만 있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때로는 동기부여 연설가가 되어주기도, 철학자가 되어주기도, 인문학자가 되어주기도, 에세이스트가 되어주기도, 법조인이 되어주기도, 심리상담사가 되어주기도 했다. 책 동산은 내게 다채로움을 조금씩 확장시켜 주었다. 삶의 다양한 방향성에 대해서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아 참 좋다. 


아직도 읽어내야 하고 읽고 싶을 책이 많지만 어느 정도 취향이 생기고 포용하고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책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앞으로 책 동산에 어떤 책을 심어 둘지 생각하니 벌써 즐겁고 설렌다.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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