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이 있는 삶

by 김거인



나는 눈을 뜨면 먼저 방마다 창문을 열고 밤새 집안에 쌓인 공기를 환기시키는 것으로 아침을 깨운다. 요즘엔 어쩐일인지 미세먼지 없이 매일 공기가 좋은데다 늦여름의 꽃향기까지 바람에 실려와 아침부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아침 새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덤이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서 자리를 정리하고 매일 세탁하기 어려운 베개와 이불을 널어 햇볕에 말린다. 정말 소독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광욕을 한 직물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제 부엌으로 가서 1.8리터 짜리 티포트에 정수기 물을 받아다 끓인다. 이 정도의 양이 하루 할당량이다. 포트는 꽤 커서 물을 담는 동안 시간이 좀 걸리는데 그동안 멍때리면서 물줄기를 바라보는 게 약간의 힐링 포인트이다. 물이 다 끓으면 머그잔에 한 컵 따라 거실 테이블로 들고 와서 앉아 컴퓨터를 켠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주저 없이 일어나 거실 베란다 창 밖으로 양팔을 뻗어 광합성을 한다. 창 밖 아래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멀리 있는 건물이나 녹음을 바라보며 햇빛을 받는 시간은 순전히 건강상의 이유로 시작했지만 그 자체로 나에게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세레모니가 되었다. 햇볕에 몸이 따뜻해지면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나는 목 디스크가 있어서 잊지 않고 매일 하려고 한다. 아주 간단한 동작들이고 모두 하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확연히 증상이 완화되는 것을 느끼고 있다.


차분히 앉아 따뜻한 물을 마신다. 물은 맹물이 좋고 찬물은 마시지 않는다. 물을 마시면 금새 배가 고파지는데 지체없이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한다. 칼로리 소비량이 많지 않아 하루에 두끼를 먹는 것으로 정했다. 건강을 고려해 되도록 일정한 시간에 영양 밸런스가 맞는 식단으로 준비하고 있다. 언제까지 관철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배달음식은 되도록 먹지 않으려고 한다. 밥은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으려고 생각은 하지만 아직까지는 습관이 안되어서 그런지 여전히 빨리 먹게 된다. 다 먹고 나서 입가심으로 과일을 먹고 식후에 먹어야 하는 영양제도 챙겨 먹고 설거지를 한다. 유산소 운동은 최소 격일로 한 시간씩 하며, 외부 일정이 없는 한 저녁식사도 마찬가지로 건강을 고려한 식단으로 차려 먹고 영양제를 먹는다. 수면은 하루에 8시간은 하려고 하고, 자정 이전에 잠에 들려고 노력한다.


어느 수도승의 하루 일과냐고? 아님 어느 초등학생의 방학 일과냐고? 아니다. 절제력이 부족한 것이 늘 고민이었던 어느 인간의 요즘 이야기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눈치 채셨을거라 생각하지만, 앞서 설명한 하루 루틴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심사숙고 후 선정하여 배치한 결과물이다. 지금껏 세상을 살아오며 겪어온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도출한 나라는 인간을 제대로 운용하기 위한 최적의 솔루션인 것이다.


나는 매일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것이 늘 어려웠다. 필 받으면 미친듯이 빠져서 하고 그 외의 것은 신경쓰지 못하는 사람. 지금에 와서는 그런 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았기 때문에 나름의 컴플렉스였다. 그런 성향은 일단 단체생활이 어렵다. 매일 등교나 출근을 해서 8시간씩 한 자리에 앉아 누군가가 정해준 공부나 일을 하는 것, 나보다 윗사람이라고 상정되는 누군가의 강요로 보내는 시간이 극도로 괴로웠다. 뭐든 제대로 하려면 좋아 미쳐서 해야하는 사람인데 왜 해야하는지 납득이 안되는 일에 몸이 움직일리 없잖은가. 하지만 그렇게 30년 쯤 살다보면 누구라도 적응은 한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다고 포기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 버티는 것을 생존전략으로 삼아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 틀 안에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싫지만 그 와중에 얻는 성공의 경험이나 주위의 인정은 정말 모순되게도 쾌감을 준다. 어렵게 얻은 것이니만큼 더 그러하리라. 그런 열매가 하나 열리면 그걸 따 먹으며 어떻게든 버텨왔다. 게다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나로서는 살아갈 수 없지만 적어도 비난을 받거나 위험에 내몰리는 일은 없다. 그런 패턴이 너무나 뿌리깊게 내재화 된 나머지 자신의 삶의 태도를 인지하지 못한채 우습게도 나는 내가 누구보다도 독립적이며 내 삶을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선택의 문제이며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데도 자각 조차 못했던 것이다.


비록 자각을 못했을 지라도 생겨난 감정은 어디에 가지 않는다. 내가 인지했든 못했든 간에 풀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은 그대로 내 안에 축적되어 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하루를 살아가는 스트레스는 30년 간 차곡차곡 쌓여 가끔씩 극도의 분노로 표출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무기력증으로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기는 내가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사회적 신분이나 물질적인 것들을 성취해 낸 때와 궤를 같이한다. 그것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가장 안전해보이고 주변에서 인정해 줄 만한 것들로만 선택을 거듭하여 얻어진 결과였다. 하란대로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 끝에 그런건 없었다는 허무함이 결정적으로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 길을 걸어온 것이 딱히 후회스럽다거나 성취한 것들이 자랑스럽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시 그 선택들의 갈림길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렇게 살 수가 없었다. 이젠 정말 좋아해서 미쳐서 몰두해서 했던 것들을 하며 살겠다. 하면서 즐겁고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해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일.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우선 퇴사를 했다. 다니던 직장은 안정적이고 나름대로 시간분배를 유동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것이 큰 메리트였지만, 내가 나로 있을 수 없는 곳이었기에 하루의 가장 긴 시간을 그곳에 머무르는 한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절대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론을 내린 이상 단 하루도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퇴사는 늘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고 나름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다만 예상보다 3년 쯤 빨라진 정도이다. 이대로 있다간 10년 후에도 “3년 뒤에 그만둘거야” 하면서 그대로 살고 있을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도 결심을 당기는데 기여했다. 어찌되었건 그렇게 하루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설계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껏 거의 비는 시간 없이 이래저래 10년 가량을 일 해오면서 안식년을 간절히 바라왔던 터라 이 넘치는 시간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터지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늘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었던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시작했다. 세포 하나하나에서 활기가 느껴졌고,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기대되어 눈이 저절로 떠졌다. 학창시절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늘 지옥이었는데 말이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나로서 존재하는 100%의 충만한 하루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뭔가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갈수록 점점 활력이 떨어지고 조금씩 우울감의 구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방향성은 분명히 이쪽이 맞을텐데 뭐가 문제일까 싶었다. 그런데 사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제든 어디서든 일정 선에 닿으면 반드시 드러나는 나의 캐캐묵은 고민거리이자 한계점. 바로 절제력 부족.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몰두해서 너무 달려나가는 것. 이 때문에 그 외의 것을 챙기지 못하고 그것이 쌓이면서 오는 밸런스의 붕괴. 그것은 종종 건강의 악신호로 감지되거나 그에 따른 우울감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좋아하는 일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으로 인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결여되어 주위의 시선에 대응해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을 관철시킬 수 없었던 것도 컸다고 생각한다. 지긋지긋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려는 이 중요한 때에 또 다시 발목을 잡힐 순 없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이젠 정말 마주봐야 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고 하지 못한다고 도망다니던 매일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는 일상적인 것들을. 습관이 되어 일말의 사고 과정 없이 체화되어 몸이 먼저 반응할 수 있도록 해야했기에 루틴을 계획했다. 잘못된 습관이 들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루틴의 단계 하나하나에 대한 사전 조사를 선행하여 선별하였다. 루틴으로 정해 놓은 것들은 현재 부족하다고 절감하고 있는 신체적인 건강 회복에 초점을 맞춰 구성하였다. 그러면 그 외 시간에는 좋아하는 일에 마음놓고 몰두할 수 있다. 믿음직한 삶의 틀을 만들면 그 안에서 하고 싶은일을 마음껏 해도 되고 그렇게 안정적으로 원하는 지점으로 갈 수 있는 삶의 방향키를 내가 쥐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다.


퇴사 전 내가 남의 인생을 살때는 삶의 목표도 의지도 희미했기 때문에 나와 내 주위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유령처럼 빈 껍데기로 사는 동안 너무 낙이 없어서 식탐을 부리거나 여행에 빠져 여기저기 돌아다니거나 했다. 속이 텅 비어 있어서 뭐라도 입으로 구겨 넣어야 했고, 새로운 장소에 가면 잠시 인식이 환기되는 것에 중독되어 매주 어디든 가야했다. 차분히 앉아 내 몸이 보내는 신호라든가 마음이 외치는 것을 듣고 있을 여유도 의지도 없었다. 불행이 기본값이고 이것 저것 소비하면서 겨우 지속해나가는 삶을 살았다.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소우주라고들 흔히 말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딱히 몸에 나쁜 것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망가지고 삶에 대한 열정이 없으니 몸도 자연스럽게 같이 망가져가고 있었다. 살이 찌고 염증반응이 일어나고 소화가 안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속되다 보니 눈에 띄게 노화가 진행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아픈건 싫고 죽고 싶은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삶을 길게 지속할 이유도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사와 동시에 다시 태어남을 천명한 나에게 건강한 몸을 관리하는 것은 아주 큰 과제가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여러 분야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관련된 기술을 연마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이 시간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금전과 체력이 같이 요구된다. 가장 중요한 3요소 중 한 축이 크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 부터 건강을 챙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다가왔다. 삶의 목표가 분명해지고 이유가 생기니 에너지가 차올라서 뭐든 할 수 있는 준비상태가 완성된 것이다. 그 힘이 너무 커져서 평생 할 수 없었던 매일매일 조금씩 꾸준히 지속하는 하루 루틴을 수행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루틴이 있는 삶이 완성되었고 매일 지속해나가고 있다.


누군가는 코웃음을 칠 수도 있다. 그런건 누구나 당연히 하는 일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인생을 산다. 나의 어린시절과 10대, 20대, 30대를 어떤 환경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는 나만이 안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기질과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고민하고 행동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은 나만이 적나라하게 알고 있다. 어제보다 조금 성장한 나의 모습에 단순하게 기쁘다. 나는 지금의 내가 고민하는 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루틴이 있는 삶을 계획하여 살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내가 원하는 모양의 삶이 되어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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