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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욱 Jul 14. 2020

퍼실리테이션은 조작인가, 해방인가?

그 명백한 차이의 모호한 경계를 깊이 들여다 봅니다.

퍼실리테이션을 배울 때는 중립을 마음에 품지만, 실제로 현장에 다가가면 조작의 유혹이 크게 다가옵니다. 타인의 조작에 대하여 분개하다가, 어느 덧 자신의 손길에도 조작이 묻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한 번 저지른 조작의 잘못, 되돌리기 쉽지 않고 어쩔 수 없다하면서 조작의 반복이 일어납니다. 이에 대한 점검을 해보고자 합니다.


이 주제를 다루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퍼실리테이션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실제 업무에 적용하는 사례도 많아지면서 퍼실리테이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습니다. '퍼실리테이션이 어떤 점에서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볼멘 소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소리는 공공분야 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에서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공공분야의 경우,
주민 원탁토론, 공론화, 주민참여 예산제, 도시재생 대학, 농촌 현장포럼 등의 이름으로 퍼실리테이션이 도입하면서, 한 층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기도 하지만, 참여자들의 냉소와 적대적 반응이라는 부작용도 동시에 낳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원인을 찾고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기업의 경우에는,

과거의 잘못된 퍼실리테이션에 대한 경험이 조작으로 이끄는 영향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퍼실리테이션의 고객들이 퍼실리테이션을 근사해 보이는 유도, 교모한 설득의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눈에 띕니다.


이러한 접근은 퍼실리테이션의 유용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퍼실리테이션은 조작이 아니라 해방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조작도 맥락에 따라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조작이 아닌가요?


대부분의 경영 활동은 개입을 수반합니다.

퍼실리테이션 역시 개입입니다.


개입이라는 말에는 나쁜 뉴앙스가 담겨져 있는데, 이 때 개입은 ‘조작하려는 개입’을 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 조작 또한 안좋은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입 자체가 나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죠.

퍼실리테이션은 명백한 개입입니다.

중립적 개입입니다. 중립적 개입은 조작이 아니고, 그래서 좋은 개입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개입과 나쁜 개입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조작과 해방의 정의>

manipulation 조작 : controlling someone or something to your own advantage, often unfairly or dishonestly


emancipation 해방 : the act of freeing a person from another person's control:


The Emancipation Proclamation, made by President Abraham Lincoln in 1863, freed slaves in the southern American states during the US Civil War.


https://dictionary.cambridge.org/


'조작은 상대를 통제하는 것,'

'해방은 통제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르네요.
인간의 본성이며 본질적인 욕구인 '자유'와 관련되어 있네요.


조작은 조작한 사람의 유리함과 이득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 공정하지 않고 거짓이 수반된다는 점을 포함한 개념이고,


해방은 타인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 즉 주인이 되게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개념이네요.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하는 것은 해방의 주체입니다.


해방의 주체는 해방 당하는 당사자가 아니므로,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작과 닮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조작과 해방이 뭔가 닮아보이고 헷갈리에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정한다는 것, 즉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자율 - 인간은 누구나 어떤 일의 원인행위자가 되고 싶어하는 욕구’을  지니고 있다. autonomy - universal urge to be causal agents, Ryan and Deci 2002)




퍼실리테이션에서 조작과 해방이란 어떤 의미인가?


조작을 쉽게 말하면 답정너 워크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세요.'라고 말해 놓고,

'난 짜장면요.'하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워크숍 자리에서 답을 열어놓고 실제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리더 또는 퍼실리테이터의 머리 속에 정해둔 정답 또는 결론에 다다르도록 참여자들을 유도하여 조작하는 것입니다.


설득, 정신교육, 가르치기 등을 염두에 두면서, 외형상 퍼실리테이션(모둠과 포스트잇)의 모양을 갖추어 진행하는 회의 역시 조작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해방은 참여자들이 실제로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결론에 도달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실질적인 의사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됩니다. 타인의 결정에 구속되어 있다가 자신이 결정하는 상황으로 바뀌게 되므로 해방이 부를 수 있는 것이죠.




조작과 해방의 실제 사례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개념으로만 설명하면 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생활에서의 예를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백화점에 아빠와 딸이 옷을 사러갑니다.>
백화점 방문의 목적은 '딸의 옷 구입'이 되겠네요.


이 때 퍼실리테이션(해방)이란 따님이 즐겨 입을 옷을 스스로의 선택(자율)으로 구입하도록 돕는 것을 말합니다. 방문하고 싶은 매장을 둘러보고, 가격도 물어보고, 점원에게 문의도 하고,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으로 검색도 할 수 있겠네요.

이 때 퍼실리테이터로서의 아빠는
1. 어떤 옷에 관심을 보였는지 기억해 두었다가 적절한 시점에서 '아까 A 매장에서 너가 좋아하는 것 같았어.'라는 말로 기억을 도울 수 있겠네요.
2. 시간이 좀 흘렀다고 생각되었을 때, '혹시 힘들면 음료를 한 잔 마시면서 좀 쉬었다 돌아보자.'라고 제안을 해볼 수 있습니다.

3. 따님이 다른 층에 매장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면, '다른 층에도 매장이 있는데 알고 있어?'라면서 대안의 확장을 도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 조작은 아빠의 취향을 은근히 권하여 그 것을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되겠네요. '이 것을 사거라.'처럼 직접 지시와 명령을 하는 것은 아니어서 외관상 퍼실리테이션과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때에도 아빠는 자신의 취향을 권하는 방법이 교묘하여 어쩌면 따님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게 되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때 조작자로서의 아빠는
1. 미리 자신의 맘에 드는 옷을 골라두거나, 매장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옷을 선택합니다. '너는 빨간 옷이 잘 어울리더라.'라면서 그 골라둔 옷을 떠올리도록 의견을 표명합니다.

2. 옷의 품질보다는 가격이나 브랜드에 집착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일 때, '브랜드를 너무 따지는 것은 사치가 아니니?'라면서 자신이 가진 평가기준을 은근히 나타냅니다. 이 때 물음은 진정한 질문이 아니라 유도 질문이기도 하네요.

3. 따님이 다른 층 또는 더 많은 옵션을 탐색하려 할 때, '다른 곳에 가봐야 별것 없을 거야.' 하면서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옷이 있는 곳에 머무르게 합니다.




실제 워크숍 사례에서는 어떤 조작이 있나요?


1. 고객(스폰서)이 퍼실리테이션을 잘못 알고 조작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까 아빠처럼 스폰서에게 미리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죠.


매출 목표를 구성원들이 정하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금년 대비 10% 상향'이라는 결론이 나오기를 미리 정해놓고 있는 경우입니다. 매출 목표를 정한다는 워크숍의 목적을 정한 것을 두고 답정너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마음 속에 10%가 미리 확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을 답정너라고 말합니다.



2. 반대로 참여자(스폰서의 반대 의견)가 퍼실리테이션을 잘못 알고 조작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여자들이 10%이하가 되어야 한다고 미리 확답을 받아야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과거에 유도나 조작의 경험이 많은 경우에는 결국 자신의 뜻대로 결론이 만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미리 확답을 받아두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보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역시 퍼실리테이터는 워크숍을 조작적으로 이끌 수 밖에 없는 조건이 됩니다.



3. 퍼실리테이터가 퍼실리테이션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돈벌이를 위하여 처음부터 조작적인 방법으로 설계하여 운영하는 경우입니다.


스폰서의 의중을 헤아려 그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의도적이며 적극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는 경우입니다. 대규모 원탁회의에서 참여자의 의견을 아예 다른 말로 바꾸거나 통계를 조작하기까지 않다는 증언을 들은 바도 있습니다.

 


4. 마지막으로 퍼실리테이터가 중립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지만, 시간, 결과물의 압박으로 인하여 참여자를 몰고가는 경우입니다.


이는 설계와 진정성이 중요한 경우입니다. 고객의 요청이 무리하게 시간을 짧게 책정하여 의뢰하는 경우라면 그 의뢰를 받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진정성을 지켜야 하는 지점입니다. 고객과 협의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기대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거나, 주어진 시간에 달성할 수 있는 만큼의 목적의 크기를 적절하게 줄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작을 방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1. 참여자의 공동의 목적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0% 이상의 목표 설정,' '10% 이하의 목표 설정'이 대립하는 경우 워크숍의 목적은 '목표 설정'이 공동의 목적이 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상위 목적으로 올라가면 서로 목적이 같아집니다.


2. 답이 정해져 있거나,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 하지 않을 경우에는 퍼실리테이터가 퍼실리테이션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직업 퍼실리테이터라면 일감을 놓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진정성이 필요합니다. 내부 퍼실리테이터라면 고지식하다는 평판을 감수해야 합니다. 아쉬움이 들지만, 두 가지 선택 모두 결국 고객과 스스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진정성의 힘이죠.


3.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워크숍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능력에 비하여 조금은 어려운 것을 시도해야 퍼실리테이션 역량을 높여갈 수 있지만, 지나치게 어려운 사안에 도전은 퍼실리테이션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4. 이견을 다루는 유능함을 가지는 것입니다. 퍼실리테이션의 경험을 많이 쌓아서 의견이 대립되는 상황을 잘 다룰 줄 알게 되면 조작하려는 성급함이 사라지게 됩니다.


5. 인간은 누구라도 효과성을 추구한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조작하려는 마음가짐의 밑바탕에게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조작을 방지합니다.




혹시 마지막 주의사항이 있다면 보태 주세요.


네, 있어요.

한 가지 마지막 주의사항은 해방과 조작 역시 이분법적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모든 워크숍은 해방과 조작의 요소를 모두 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혈주의적 해방에 강박적으로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조작을 권장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만병통치약은 세상에 없습니다.
해방이 옳으냐, 조작이 옳으냐는 결과적으로 바람직한 효과를 냈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옳거나, 모든 경우에 옳은 것은 없을 겁니다. 항상 워크숍의 결과와 효과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다음 번에 더 바람직한 개입을 해 나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관련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pQcfMBBI_0cPg1V4oHWx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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