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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욱 Feb 04. 2022

퍼실리테이터의 중립과 개입

개입과 중립, 절차와 내용, 촉진과 조작의 혼란에 관하여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에서 중립(neutrality)은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이다. 퍼실리테이터가 중립을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퍼실리테이션을 한 것이냐 아니냐를 판가름 하는 기준이 된다. 


퍼실리테이션은 퍼실리테이터가 중립적으로 개입하여 그룹이 일을 쉽게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므로 중립은 퍼실리테이션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중심이 된다. 퍼실리테이터의 중립이란 '그룹워크(회의 또는 워크숍)에서 회의 내용에 관하여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것, 어떤 의견에 찬성하거나 반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워크숍을 어디로 갈 지 논의하는 회의에서 퍼실리테이터는 설악산에 갈 지, 제주도 갈 지에 대한 의견을 내지 않고, 설악산이 좋다는 의견에 동조하거나 반대하지 않는 것이 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퍼실리테이터가 중립을 잃으면 그 것은 가르침(teaching), 조언(advice), 자문(consulting), 지도(coaching), 상담(counseling), 중재(abitration), 심판(judgment), 질책(reproach)과 같은 다른 개념의 개입으로 변질된다.



이렇게 중립성은 퍼실리테이션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퍼실리테이션이 기대하고 있는 효과를 내는 데 매우 중요하지만, 퍼실리테이션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중립의 의미에 대하여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퍼실리테이션을 실제로 접한 경우가 많지 않다 보니 개념적인 설명을 들은 것 만으로 그 것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실행에 옮기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중립과 개입의 혼란>


중립을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퍼실리테이터의 중립이란 중립적 개입을 의미한다. 가르침, 조언, 자문, 지도, 상담, 중재, 심판, 질책은 모두 개입의 일종이다.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개입을 시도한다. 무슨 수단을 동원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회의적 시각을 가지지 않는 한 사람은 현재의 상태를 개선해 가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는 모두 개입의 다양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퍼실리테이터가 어떤 상황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때로는 소극적으로 지켜보는 개입을 해간다. 


시간이 지연되면 서둘러 달라고 개입하고, 의견을 내지 않고 있으면 의견을 내달라고 개입한다. 분위기가 처져 있으면 에너지를 부여하고, 지나치게 활발하여 장난으로 번지는 우려가 있으면 주제에 돌아오도록 개입한다. 다만 이 모든 상황에서 참여자를 존중하고 강요하지 않는 개입을 시도한다.






<절차와 내용의 혼란>


퍼실리테이터의 중립이란 내용상의 중립을 말한다. 절차에는 오히려 단호함을 가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회의는 처리하고자 하는 정보를 일정한 시간 동안 다룬다. 그러므로 퍼실리테이터는 시간을 관리한 의무를 지니게 된다. 또한 그룹이 시도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쉽게 돕기 위하여 바람직학 절차를 제공한다. 


이 때 절차의 제공은 참여자의 의견에 따르기 보다는 퍼실리테이터가 미리 설계한 순서에 따르게 된다. 즉 퍼실리테이터의 의지와 전문성을 반영하여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절차를 제시하여 회의를 이끌어 가는 것은 퍼실리테이터의 의견에 따른 것이므로 중립을 잃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퍼실리테이션에서의 중립적 개입은 주로 내용상의 중립을 말하는 것이다. 절차에 있어서는 오히려 퍼실리테이터가 단호함(assertiveness)을 보여야 한다.






아이디어를 내보는 시간에 참여자가 타인의 의견을 자꾸 비판하는 경우 그 비판을 나중에 하고 지금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 집중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다. 이 때 퍼실리테이터의 개입은 중립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퍼실리테이터가 강하게 의견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것은 절차에 관한 것이고, 이 절차를 정하여 회의를 순차적으로 진행해 가는 것에 의견을 내는 것은 퍼실리테이션의 중립을 잃는 것이 아니다. 논의 되는 내용에 의견을 내거나 참여자의 의견에 찬반을 표시하지 않는 내용상의 중립과 구분해야 한다.



<목적과 내용의 혼란> 


일반 회의와 마찬가지로 퍼실리테이션 회의에도 목적이 있다. 비전을 만들거나, 업무계획을 세우거나,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전략을 수립하는 것들이 그 예이다. 이 때 비전을 만드는 워크숍의 경우 비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므로 퍼실리테이터는 참여자들이 비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내용을 언급하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 대하여 중립을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물어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 회의나 워크숍의 목적은 스폰서 혹은 참여자가 정하는 것이고 퍼실리테이터가 정하는 것이 아니므로 중립을 잃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회의 도중 그 목적에 해당하는 내용을 다루어가도록 하는 것은 회의의 본성에 해당하는 것이지 중립을 잃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만약 이 때 퍼실리테이터가 비전에는 '최고의'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면 이는 중립을 잃은 것이 된다. 


그러나 좋은 비전을 만드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비전을 만드는 목적을 당연한 본성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기억하기 좋은 것'이라거나, '고유성을 포함한 것'이라는 등 좋은 비전의 특징이나 원칙을 말하는 것만으로 중립을 잃었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고유성을 잘 나타내는 어떤 표현을 참여자가 말했을 때 이에 퍼실리테이터가 반색하는 것은 중립을 잃는 것이 된다.





<촉진과 조작의 혼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좋은 비전을 만들 수 있도록 특징이나 원칙을 제시하는 것 만으로 중립을 잃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좋은 비전,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 이 때 최고를 향해 가도록 강조하는 것은 유도나 조작이라고 할 수 없다. 촉진하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본연의 성취 욕구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퍼실리테이터가 숨겨둔 엉뚱한 목적을 실현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작은 참여자를 이용하여 스폰서나 퍼실리테이터가 기만적인 이득을 얻는 것을 말한다. 비전은 만드는 목적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숨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는 조작에 해당한다. 



스폰서의 마음 속에 'No. 1'이라는 문구를 염두에 두면서 이 문구가 나올 수 있도록 처음부터 정해 놓은 답을 찾아나가는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라면 역시 유도나 조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No. 1'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비전 만들기를 목적으로 잡고 워크숍을 진행한다면 이는 조작에 해당하지 않는다. 숨겨진 다른 목적이 있지 않고 명확하게 명시되었기 때문이다. 






중립은 퍼실리테이션의 정체성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중립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아야 중립을 지킬 수 있고 그래야 퍼실리테이션이 실현된다. 자신이 하고 있는 개입이 중립성을 잘 지니고 있는지 아닌지를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중립을 잘 지켰을 때 퍼실리테이션의 실제 효과를 경험할 수 있고 이는 퍼실리테이션을 더욱 믿고 잘 활용하는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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