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문로 연가

by 이상역

과천청사 앞 관문로에는 가로수가 숲을 이루어 정갈하다. 관문로는 과천청사를 들고나는 길이다.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이 길을 걸어가고 걸어오며 하루의 고단함을 달랜다.


가로수의 둥치는 제법 두툼해져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동년배 정도다. 관문로에는 청사의 직원뿐만 아니라 학생이나 시민들도 기대어 살아간다. 길은 사람과 사람의 연을 이어주고 풀어주는 곳이다.


이 길을 걸어가면 생의 의지가 솟아나고, 창문 밖 외침 소리도 들리고, 인생의 길잡이도 만난다. 그리고 단풍이 물든 계절에는 사색에 빠져들거나 고독을 곱씹는다.


하루에 걷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이 길에 들어설 때면 마음은 넉넉해지고 풍성해진다. 특히, 아침 출근길에 관문로 가로수를 걸어갈 때면 삶의 활력과 생명력을 느끼고,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삶의 향기도 전달받는다.


이곳은 계절마다 청사 밖에 있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몰려와 삶의 개선이나 개발에 반대하는 외침 소리를 들려준다.


이 길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많다. 혼자서 또는 무리 지어 오는 사람도 있고,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장애인도 휠체어를 이끌고 찾아온다.


그들이 이곳에 와서 외치는 목소리에는 삶의 절규와 간절함과 애절함이 깃들어 있다. ‘주민을 쫓아내는 재개발 결사반대’,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 건설 목숨 걸고 반대’라는 울긋불긋한 플래카드를 가로수에 걸어 놓고 청사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의 외침이 시답잖으면 아침 댓바람부터 단체로 몰려와 관문로를 점거하고 ‘민주노조 우리의 사랑 너와 나‥’라는 노래를 틀어 놓고 시위를 벌인다.


그런 날이면 청사 입구는 경찰이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 시위대가 외치는 소리, 청사를 지키기 위해 달려오는 전경의 군화 소리, 차의 경음기 소리가 혼합되어 부산해진다.


정당한 절차와 방법을 어겨가며 시위를 하는 데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위는 그렇다 해도 아침부터 청사 방향으로 확성기를 틀어 놓고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법 위반 여부를 떠나 동정받기는 힘들 것 같다.


그들을 바라보며 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고 살아내는 것도 만만치 않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정책이나 개발도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나 보다. 시나 소설도 자신에 대한 철저한 사랑을 통해 탄생한다. 사랑은 그리움, 슬픔, 외로움, 미움, 소망을 품게 하는 근원이다.


나 또한 이 길을 사랑하는 것도 이러한 시원에서다. 사무실을 오고 가면서 고향의 오솔길을 떠올리거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상상을 그린다. 이 길을 걸어가다 길 모롱이에 우두커니 서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옛 기억을 떠올리면 눈가엔 유년의 황톳길이 선하게 열린다.


가로수의 나뭇잎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면 나뭇잎의 기울기를 따라 과거의 미로 속으로 빠져든다. 관문로를 걸어가면서 인생의 시를 쓰고 싶다. 글로 쓰는 시가 아니라 인생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자연의 시를 쓰고 싶다.


시는 글로 써야만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삶과 자연이 서로 어울리면 그 자체가 아름다운 시다. 내게 시적인 삶의 무대를 제공해주는 틀은 가로수가 숲을 이룬 이 길에서다. 이 길을 바탕으로 인생에 대한 서두는 그럭저럭 쓴 것 같다.


다음 연에 대한 시를 써야 하는데 이것이 문제다. 남은 생애도 아름답고 추억이 서린 시를 써야 하는데 고민이다. 시의 다음 연을 부드럽게 연결 짓기 위해 기회가 되는대로 이 길을 걸어서 오고 간다.


시의 다음 연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서두를 부지런히 익혀 놓아야 다음 연을 멋지게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열망에 길을 걸어갈 때면 되도록 오래 머무르려고 한다. 가로수의 풍경도 살펴두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머릿속에 새겨 두려는 것이다.


인생과 시절을 노래하며 가로수 길을 걸어가는 시간이 나는 참 좋다. 계절이 가을이라서 더 좋고 사색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에 마음도 든든하다.


인생의 가을날에 사랑하고 노래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을 만난 것에 감사드린다. 사람이 없는 휴일에 이 길을 걸어가면 깊은 숲 속을 걷는 것처럼 마음이 고요해진다.


이튿날 출근길에 다시 이 길을 걸어가면 일상의 자화상을 만난다. 다른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고 걸어가면 하루를 살아가는 자신을 만나고, 도로를 오가는 차량의 흐름을 통해 세상에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존재 의식도 깨닫는다.


가을의 나뭇잎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것처럼 남은 삶도 멋지게 가꾸면서 생의 찬가를 부르고 싶다. 내가 무슨 인연으로 관문로에 발자국을 남기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을 떠날 때까지는 아름답고 향기롭게 마무리하고 싶다.


먼 훗날 이곳을 떠나 가로수 길을 떠올리며 멋진 시를 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고향의 돌담길을 돌아가면 지나간 시절의 추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듯이 청사 앞 가로수 길을 오갈 때면 삶의 그리움이 화수분처럼 솟아오른다.

keyword
이전 11화영주 부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