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터봉과 이별

by 이상역

마오리어로 이별이란 단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별이란 말에는 헤어지는 슬픔과 다음에 다시 만남을 기약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가이드가 남섬의 마이터봉과 이별이 서러운지 버스가 밀포드사운드를 출발하자마자 이별과 관련된 노래를 틀어주고 아쉬움을 달랜다.


일행에게 노래는 수면제인데 가이드는 노래를 틀어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밀포드사운드와 이별이 못내 아쉬운 것인지 아니면 우리와 이별이 서러워서 노래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려는 것일까.


까마득히 치솟은 마이터봉과 이별하고 근 한 시간을 달려왔지만, 아직도 산 정상에 만년설을 인 모습과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머릿속에 고스란히 떠오른다.


버스를 운전하는 캡틴만이 버스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목적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무엇인가를 보려면 만남이 필요하고, 무엇인가를 보았다면 이별이 따른다.


일상의 반복이 모여 삶을 이루지만 여행의 반복은 삶의 뜰을 넓혀주는 봄바람이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에는 구름 몇 조각이 바람을 타고 유랑을 즐기고, 초원은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어서 오라고 유혹한다.

가수 조수미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버스 안의 분위기를 잡아주고, 일행은 버스의 움직임과 노랫소리에 맞추어 시계추처럼 고개를 움직인다.


북반구에서 가을을 즐기다가 계절을 거슬러 남반구로 내려와 새로운 봄을 만끽하는 여정의 길. 내 몸의 어디선가 알지 못하는 깊숙한 곳에서 봄의 향수가 배어 나오는 것만 같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친구 삼아 버스의 흐름에 몸을 맡기자 마음은 정처 없이 먼 곳을 향해 떠난다. 버스 창밖에는 오전에 밀포드사운드로 들어가면서 만났던 넓은 벌판이 다시 나타난다.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여행도 돌고 도는 물레방아와 같은 여정의 연속이다. 내가 언제 다시 뉴질랜드를 찾아와서 밀포드사운드를 여행할 수 있을까.


여행은 새로운 만남으로 시작해서 이별로 끝날 수밖에 없다. 북반구를 떠나 남반구에서 느끼는 봄의 사치스러움. 창밖에는 푸른 초원을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풀을 뜯는 양들의 모습이 더없이 부럽기만 하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얼굴들. 빡빡한 일정 속에서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美에 대한 갈망을 품게 했다. 대자연의 미적인 풍경을 통해 마음 밭에 심어진 그리움과 사랑.


이곳에 사는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바라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이번 여행에 함께한 부부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가족 곁을 떠나 이억만 리 타국에 와보니 새삼 가족의 의미와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에 못내 아쉽기만 하다.


하루에 사계절을 품고 있는 날씨라지만 오늘은 두 계절만이 존재한다. 날씨가 너무 좋아 하늘은 자신의 가슴을 활짝 열어젖혔다. 들녘이 광활한데 공기가 맑아 그런지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 위로 우뚝 솟은 먼 곳의 산도 가깝게 시야로 다가온다.


이곳 남섬에서 일 년간 산다면 삶의 많은 것이 달라질 것 같다. 우리가 탄 버스 앞에 두 대의 버스가 같은 방향을 향해 나란히 질주해 간다. 캡틴도 앞 버스를 따라잡기 위해 손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여행지의 코스가 정해져 있듯이 일정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몇 번에 걸쳐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남섬의 밀포드사운드를 관람하던 배에는 영어, 한국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독이, 불어로 된 안내 책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각국의 언어로 된 안내 책자는 그 나라의 국력처럼 느껴졌다. 어떤 언어를 선택할 것인가 보다 어떤 나라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국력의 차이 문제로 다가왔다. 외국에 나와 내 나라의 언어로 된 안내 책자를 만날 때면 다른 무엇보다 가슴에 자긍심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밀포드사운드를 유람하기 위해 배에 오르는데 안내원이 내게 "Chinse?"하고 묻길래 "No"라고 답하고 “Korean"이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고는 부탁하지 않은 사진을 찍어 놓고 안내원은 30달러를 내고 찾아가란다.


나는 사진을 일부러 찾지 않았다. 내가 사진에 찍히는 것도 자유지만 사진을 찾지 않는 것도 자유다. 북반구에 있었으면 낭만의 계절인 가을을 즐기며 낙엽이 지는 계절을 노래해야 하는데 생뚱맞게 봄을 맞이하는 노래를 부르려니 마음이 좀 그렇다.


낯선 곳에서 여행하는 신세를 읊조리려니 기분이 영 아니다. 여행지에 대한 감상은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읊조리며 이국적인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움직임의 제약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의 감정을 털어내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뉴질랜드에 왔으면 이곳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지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도보나 자전거나 자동차나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 여행지를 돌던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을 진실하게 담아내는 것이 여행의 표현이자 기술이다.


지금처럼 버스에 가만히 앉아 창문을 통해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감정을 풀어내는 것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아무리 좋은 문구나 감정을 동원해서 여행지를 각색해서 꾸며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이번 여행에서 내 몸을 움직여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니 버스에서 눈으로 바라보며 즐기는 감정에 만족해야 한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목적이자 버스에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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