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직장에 일찍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하기 전까지 글을 쓰고 있다.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와서 글을 쓰다 보면 글의 주제와 윤곽이 대충 그려진다.
아침에 글을 쓰는 것에 습관을 들이지는 않았지만, 글쓰기라도 몸에 익혀 직장을 퇴직하면 습관을 이어 가기 위해서다. 사람의 몸은 습관에 적응하게 마련이다.
아침에 가방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서면 마음이 상쾌하다. 그런 상태에서 무언가를 끄적거리면 머릿속은 밝아진다.
남들은 직장을 퇴직하기 전에 자격증 취득이나 민관기간에 일자리를 알아보느냐 애를 쓰고 있는데 나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직장을 퇴직하고 밥벌이보다는 좋아하는 글이나 읽고 쓰면서 여유롭게 살아가고 싶어서다. 그렇다고 내게 직장을 퇴직하고 일을 도와달라거나 부탁하는 사람도 없다.
내게 작은 소망이 있다면 직장을 물러나기 전에 수필집 한 권을 출간하는 일이다.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일보다 나를 위한 시간에 투자하고 집중하고 싶다.
그런 투자의 경험을 살려서 사회에 나가면 글쓰기 강좌를 듣거나 글쓰기 강사 자리라도 구해서 글을 좋아하는 문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우렁더우렁 지내고 싶다.
비록 글을 전업으로 쓰는 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취미 삼아 써보려고 한다. 최근 사무실에 출근해서 쓰는 글은 주로 출퇴근길에 느낀 계절의 감흥이나 잊어버린 옛 추억이나 아이들과 지내온 이런저런 이야기다.
어떤 대상을 놓고 전문적으로 깊게 생각하고 사유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고 느낀 감상을 생각나는 대로 일기를 쓰듯이 쓴다.
이런 글에는 순간순간 빛나는 찰나의 생각과 감정과 정서가 반영된다. 특히 봄이 되면 환하게 피는 봄꽃과 싹이 트는 초록의 생명을 만나면 글쓰기도 생명을 만난 듯이 활발해진다.
글쓰기 수준이 일정한 경지에 다다르지는 않았지만, 어느덧 자리는 잡혀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한참은 정진해야 하고 많은 연습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쓴 내 글에는 철학자처럼 생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도 깔려있지 않고, 시인처럼 대상을 적절하게 비유하거나 은유하는 표현력도 부족하다.
아침에 집을 나와 출근길에 들어서면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써볼까. 무엇을 소재로 써볼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면 마음은 한없이 밝고 맑아진다.
법정 스님이 쓴 글을 읽으며 감명 깊게 읽은 대목이 생각난다. 글쓰기는 상대방에게 편지를 쓰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써야 한다는 내용이다.
우리 주변에 글쓰기 강좌를 개설한 평생교육원이나 도서관 등은 많다. 하지만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 주는 곳은 별로 없다.
그간 글쓰기 강좌를 수강하면서 많이 들은 말은 그저 열심히 써보라는 것뿐이다.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글을 써보라고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없다.
법정 스님의 글을 읽고 연애편지를 쓰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자신만의 글 세계를 갖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듯이 글을 써보니 줄거리가 술술 풀리는 것 같다. 글을 상대방에게 말하듯이 생각나는 대로 쓰자 내용이 훨씬 부드럽다. 물론 이 글을 잘 썼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마음에 담고 있던 생각의 실타래가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단어의 연결이나 문맥이 이전보다 매끄럽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남들에게 글을 잘 쓴다고 인정을 받으려면 부지런히 연습해야 한다.
직장을 퇴직하기 전까지 글쓰기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이 가상하고 마음에 위안이 된다. 글은 쓰는 재주보다 습관이 먼저란 생각이 든다. 노력을 이기는 천재가 없듯이 습관을 이기는 작가도 없다.
뒤늦게 몸이 아닌 마음으로 기댈 언덕이 생긴 것 같아 다행이다. 직장을 퇴직하면 지금처럼 아침마다 글쓰기 습관을 이어받아 부지런히 자판기나 두드리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외로운 길을 가다 보면 자신과의 진실한 만남도 기대되고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내일을 기다리며 평안하고 소박한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