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해요?”라는 말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과 다르거나 상대방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밖으로 표현할 때 사용한다. “어떡해요”라는 말 외에 “어쩌죠?”, “어떡해”라는 줄임말로 표현하는데 그 의미는 같다.
요즈음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산모의 태아 성별을 구분해서 알려주는 것을 금지한다. 하지만 산모의 궁금증과 조바심을 외면할 수 없어 의사는 함축적인 말로 표현해준다.
의사가 산모에게 “어떡해요?”라거나 “축하합니다.”라는 말로 성별을 대신한다. 의사가 “어떡해요?”라는 말 뒤에는 “아들입니다.”라는 의미가 “축하합니다.”라는 말 뒤에는 “딸입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언어의 전이 현상이 성별을 구분하는 것에도 나타난 것이다. 90년대는 산부인과 의사가 산모에게 “축하합니다.”라고 하면 아들로 “어떡해요?”라고 하면 딸이란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말의 의미는 같은데도 시대적 흐름과 상황에 따라 의미가 전이된다.
엊그제 젊은 조카가 오십도 안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 문상을 갔다 왔다. 문상을 가서 젊은 조카들이 나누는 대화를 어쩔 수 없이 엿듣게 되었다. 한 조카가 임신 중이었는지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어떡해요?”라고 하더란다. 조카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하면서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조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로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떡해요?”라고 표현하는 의사나 그 말을 아들로 알아듣는 산모의 모습이 사회적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서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도 늦게 하고 아이도 한 명만 낳거나 아예 낳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대세다.
이전 세대들은 아들을 낳기 위해 갖은 방법과 수단을 동원했다. 그 결과 가정마다 오 남매, 육 남매, 칠 남매, 팔 남매 등 대가족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가정마다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을 여섯이나 일곱을 낳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저 아들을 낳기 위해서라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거나 칠성님께 치성까지 드려가며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이전 세대가 아들을 낳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자 정부는 산아제한을 계몽하기 위해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은 못 면한다.’라는 거친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정부의 구호는 허사였다. 전쟁을 겪은 세대고 소중한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거나 죽어서 아들은 더욱 귀했다. 그리고 아들을 통해 가문의 대를 잇고자 하는 유교사상이 지배하고 있어 아들은 든든하고 소중한 존재였다.
니와 같은 세대는 전쟁은 겪지 않았지만, 이전 세대와 가난과 배고픔을 함께 겪으며 성장했다. 그에 따라 자식 세대에게 가난과 배고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자식은 낳았으나 많이 낳지는 않았다. 아버지 세대와 성장기에 겪은 가난과 배고픔의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있어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은 가난과 배고픔의 대물림이란 인식이 가슴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정부의 산아제한도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로 바뀌었다. 우리 세대는 자식을 많이 낳지는 않았지만, 이전 세대에게 아들은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압에 못 이겨 아들을 낳기 위해 정성을 기울인 사람도 있다. 때로는 산부인과에 가서 성별을 물으면 의사가 “어떡해요?”라고 말하면 아들을 낳기 위해 임신중절도 서슴없이 자행했다.
우리 세대는 아이를 낳는 것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최근 자식 세대가 결혼 적령기에 이르러 결혼과 아이를 낳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제 자식 세대에게 결혼하란 말조차도 함부로 꺼낼 수 없고, 딸 아들 구별 말고 잘 낳아 기르라는 말도 꺼낼 수 없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결혼도 어렵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도 힘든 시대가 되었다.
사회적 환경이 결혼에 따른 주거비와 교육비 상승으로 가정을 꾸리는 것도,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도 어려운 시대로 바뀌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전에는 산아 제한을 외치더니 이제는 출산을 장려하는 문화로 바뀌었다. 자식 세대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출산장려금까지 지원해준다.
병원에서 조카를 문상하고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에서 “어떡해요?”, “축하합니다.”라는 말이 맴돌았다. 산모가 딸을 임신하면 “어떡해요?”에서 “축하합니다.”란 말로 변한 것에는 사회 현상의 변화도 포함되어 있다. 즉 남성 중심에서 여성 중심으로 시댁 중심에서 처가 중심으로 결혼 문화가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나도 어떻게 하다 보니 딸만 둘이다. 결혼 후 어머니와 이모로부터 아들은 꼭 낳아야 한다는 지청구를 수없이 들었다. 그런 말을 듣다 살다 보니 어느새 세상의 변화된 흐름에 맞추어 “축하합니다.”라는 대열에 본의 아니게 합류해서 살아가는 신세다.
나와 같은 세대에서 아들 낳기를 소원했던 사람들은 지금 속으로 “어떡해요, 어떡해요”를 외치며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안타까운 목소리가 내게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우려하는 목소리로 들려오는 것 같다.
사실 삶을 살아가는데 아들이나 딸이나 별반 달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사회적 흐름은 점점 아들보다는 딸을 선호하는 문화로 변해만 간다. 아마도 사회적 변화 현상에 대한 정답은 “축하합니다.”, “어떡해요?”라는 언어의 전이 현상에 함축적으로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