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동면기

by 이상역

겨울로 접어들면서 몸의 긴장감이 느슨해졌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몸의 긴장감이 그럭저럭 팽팽하게 유지되다가 계절이 바뀌면서 축 늘어지고 움직임이 둔화되었다.


몸의 긴장감이 줄어들고 마음이 늘어지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는 것도, TV를 시청하는 것도, 컴퓨터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조차 귀찮고 싫어진다.


몸이 이러니 길가에서 이리저리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면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다. 지난봄부터 아파트 단지 공원에서 들려오던 새소리도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도 찬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아파트 단지에는 고요와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간헐적으로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비행기의 묵직한 소리만이 들려온다.


그간 낮에는 글이라도 끄적이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몸이 늘어지고 움직임이 둔화되면서 시들해졌다. 몸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지쳐있는 것 같다.


몸에 무리가 가도록 특별하게 무엇을 한 것도 없는데 몸이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무언가 무리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무겁고 반응이 무뎌진 원인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전환하면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일까.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자 그에 덩달아 몸의 움직임이 현저히 느려지고 게을러졌다.


계절의 전환기에 며칠간 외출하고 오는 날이면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내 몸의 특성은 무언가를 집중하고 있다가 다른 것에 잠시 골돌 하게 신경을 쓰거나 바깥바람을 쐬고 오는 날이면 쉽게 무너지는 것 같다.


그런 성격을 잘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은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하고 한 가지 일에 깊숙이 빠져야 일을 하는 성격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무언가에 집중해서 할 만한 일거리도 특별하게 없다.


그저 내가 집에서 하는 것이라곤 글쓰기 흉내 내는 것이 유일하다. 내 몸의 상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데 걱정이다.


겨울은 몇 달간 지속될 것이고 벌써 몸이 추운 것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 긴 겨울을 어떻게 지내면서 버틸 것인지 고민이다. 그렇다고 따뜻한 남쪽에 가서 잠시 머무르다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도 유명한 작가들처럼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며 글이나 쓰면서 살고 싶다. 글을 쓰면서 여행도 다니고 그곳에서 새로운 경험과 세상을 구경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던가. 낯선 사람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이국적인 멋과 풍경을 바라보며 글을 쓰는 것도 좋은 삶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그런 삶을 누릴 수는 없지만 꿈에서나마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일본의 소설가 하루키처럼 다른 나라에 머물면서 마라톤도 뛰며 글도 쓰고, 소설가 김영하처럼 외국에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모든 작가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외국을 여행하며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세상을 동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출판사나 방송국의 도움을 받아 외국을 여행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가 몇 명이나 될까.


그런 세상에 다가가는 꿈을 꾸어 보지만 이루지 못할 꿈이고 소망만 할 뿐이다. 이 세상은 글을 잘 쓰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철저하게 구분 짓고 차별하는 것 같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은 내 돈을 들여가며 여행기를 써도 남들이 잘 읽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 여행을 다니며 여행기를 써도 남들이 잘 읽어준다.


세상은 글을 잘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도 없고, 태어날 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없다. 또 태어나서 아무리 글쓰기 노력을 해도 일정한 한계를 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도 계절의 전환에 따른 여진으로 마음이 뒤숭숭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창밖에서 찬 바람은 불어오고 생명을 마감한 낙엽이 길을 잃고 헤매는 날은 더하다.


며칠간 흰 여백에 한글 자도 쓰지 못하고 빈둥거리며 하늘만 바라보는 신세다. 마음을 한 곳에 올곧게 집중하지 못하고 허공만 넋을 잃고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마음이란 그릇이 진중하게 가라앉은 상태에서 글을 써야 길이 쉽게 열리는데 마음이 다른 세상에 가 있으니 근심과 걱정만 가득하다. 오늘같이 마음이 뒤숭숭하고 싱숭생숭한 날에는 여행이 제격이다.


여행은 마음의 위안을 얻고 응어리진 상처를 치유한다. 며칠간 다른 것 접어두고 섬 여행이나 다녀볼까. 비록 코로나로 여행에 제한은 받고 있지만, 여행이나 다니면서 지친 마음을 달래고 보듬어 주고 싶다.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면 마음은 늘 어딘가를 서성이게 된다. 그 연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몸의 특성상 어쩔 수가 없다.


요즘 같이 마음이 뒤숭숭한 날에는 허름한 주막집이나 찾아가서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쓸쓸함이나 달래고 싶다. 그리고 들녘으로 사라져 간 가을 노래나 부르면서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


올해도 그럭저럭 지나간다. 공직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것을 보고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공로연수를 신청하고 코로나로 집에 들어앉아 쉬게 되자 시간은 나도 모르게 훌쩍 가버렸다.


공직에서 물러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저것 고민해 보았다. 내가 사회에 나가서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일 년이란 긴 시간 동안 고민해 보았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오늘처럼 마음이 진중하지 못하고 뒤숭숭한 날에는 이런저런 고민은 접어두고 내 마음의 돛대를 흔드는 것에 대한 해답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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