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서울 송파구 장지동이다. 장지동(長旨洞)이란 명칭은 마을의 형세가 손가락처럼 길다 하여 붙인 이름이고, 잔 버들이 많이 자라서 ‘잔버드리’ 마을로 불린다.
장지동은 개발이 되기 전까지는 서울 근교 농촌 마을이었다. 농사는 벼농사를 주로 짓고, 참외, 수박, 오이, 고추 등을 재배하고, 김해 김 씨와 풍천 임 씨가 터줏대감으로 살아왔다. 마을로는 안 마을, 뒷마을, 주막거리, 잔버드리 등이 있었다.
이런 유래와 전설이 깃든 곳에 이사를 와서 산 지도 수년이 되어간다. 서울에 올라와서 아이들과 한 곳에서 붙박이로 살아보는 것도 꽤 오랜만이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까치고개에서 첫아이가 태어날 무렵에 몇 년을 살아보고 이번이 두 번째다. 이곳에 이사 올 때는 몇 년쯤 살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한 곳에 붙박이로 사는 것이 소원은 아니라지만, 서울은 한 곳에 정착해서 살기가 어렵다. 이곳에 오기 전 가락동에서 아파트 층간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이사 갈 곳을 찾다가 왔다.
이곳에서 살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고 살만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외곽순환 고속도로가 옆에 있어 시골에 갔다 오기 좋고 아파트 주변이 평지라 걸어 다니기도 편하다.
장지동도 마을의 유래와 달리 눈에 띄게 성장해 간다. 동의 형세는 개발의 변혁기를 거치면서 이리저리 손을 대는 바람에 형세를 잃어가지만 그나마 옛 흔적은 천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천변을 걷다 보면 장지천과 탄천에 버드나무가 자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사람이 심은 것인 줄 알았는데 마을의 유래를 접하고 저절로 자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장지동도 도시화 바람이 불면서 벼농사나 밭농사를 짓던 농부들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대를 이어 살아왔던 김해 김 씨와 풍천 임 씨도 마을을 떠나 어디에 가서 사는지 찾을 길이 없다.
장지동에 남아 있던 고유한 전통과 사람들은 천변의 버드나무를 제외하고는 번화한 도시와 빌딩 숲으로 사라졌다.
오늘날 장지동은 강남구 세곡동과 송파구 가락동과 거여동, 성남시와 하남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유명한 건물이나 특산물은 없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유명한 것이 없는 것은 똑같다. 장지동을 대표하는 것이라곤 버스 차고지와 물류단지와 가든파이브뿐이다.
최근에 장지동과 이웃한 문정동과 세곡동과 위례는 도시 개발이 한창이다. 위례는 장지동 일부를 포함하여 개발되고, 문정동에는 법원단지가 들어오면서 오피스텔과 아파트와 지식산업센터와 같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면서 신도시 수준으로 변모해 간다.
장지동 변화의 주역은 장지택지개발지구 지정으로 아파트 13개 단지가 들어서면서 주거단지로 급부상했다. 택지개발지구에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장기임대와 분양 주택을 혼합해서 입주시켰다.
장지택지개발지구 장점은 임대 위주의 아파트를 건설해서 입주시킨 점이다. 요즈음 분양아파트 단지에 임대아파트를 짓는다고 하면 주민이 목숨 걸고 반대하는 형국이다.
지난 몇 년간 이곳에 살면서 정도 들었다. 주변에 편의시설이 많아 생활이 편리하고, 천변에 나가 산책을 즐기거나, 가든파이브로 시장 보러 간다.
장지동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를 두루두루 갖추고 있어 거주하기에 좋은 곳이다. 서울에서 장지동은 변두리다. 변두리란 서울의 가장자리다. 변두리는 중심지에서 밀려난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중심지처럼 개발해서 중심지와 다를 바가 없다. 지도를 놓고 보면 장지동은 송파대로 남쪽에 자리해서 서울과 성남과 하남을 연결하는 교차점이다.
이제 장지동은 마을의 유래와 전설이 깃든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때를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버드나무가 휘휘 늘어진 주막이 자리하고, 김해 김 씨와 풍천 임 씨가 텃세를 부리던 시절은 지나갔다.
어느 마을이나 고유한 유래와 전통을 지키며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그 마을을 지키며 사는 후손의 몫이다.
비록 장지동에 살면서 지켜야 할 전통은 그리 많지 않지만, 장지동을 장지동답게 하나하나 복원해 가며 현대와 조화롭게 가꾸고 꾸미는 것은 ‘잔버드리’를 떠나지 않고 사는 자의 의무다.
장지동이 그리워 이사를 오든 특별한 사연으로 장지동을 떠나든 '잔버드리'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오고 가는 길손을 반갑게 맞이하고 웃으며 배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