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떠난 삶

by 이상역

직장인은 인사라는 명령에 따라 자리를 이동한다. 그 인사로 종종 가족 곁을 떠나 홀로 살아야 하는 낯선 삶이 기다린다. 정들었던 둥지를 떠나 홀로 낯선 곳에 가서 살면 자신을 구속하고 속박했던 것에서 해방된다.


먼저 아침에 아내가 이것저것 챙겨주던 소소한 것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둥지를 벗어나면 구속에서 해방된 것 같지만, 자유가 갖다 주는 대가는 둥지에서 누렸던 안락함보다 크다.


사람은 낯설고 물선 타지에서 첫 밤을 보내면 모든 감각이 정지된다. 주변에 딱히 아는 사람도 없고, 익숙한 것이 없는 곳에서 홀로 떨어지면 때때로 자괴감이 생긴다.


그리고 혼자란 사실에 잠도 설치고, 마음도 편협한 방향으로 쏠리게 된다. 둥지의 규칙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홀로 생활하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린다.


그로 인해 몸을 움직이는 것도 귀찮고 그렇다고 둥지 떠난 삶을 때려치울 수도 없다.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고 그립지만, 가족의 부양이란 책임감에 직장도 그만둘 수가 없다.


삶의 일상을 벗어난 여행에는 자유스러움이 존재하지만, 삶의 틀의 연장인 낯선 삶에는 자유보다 방종에 빠지기가 쉽다. 가족 곁을 떠나 홀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


타지에서 홀로 사는 삶에 익숙해지려면 수많은 시간과 고독을 감내하는 고통을 견디고 나서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도 홀아비 아닌 홀아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그들은 저녁은 밥 대신 술로, 아침에는 빈 가슴을 안고 출근할 것이다. 아침에 끼니를 챙겨주거나 넥타이 색깔을 골라주는 사람도 없고, 직장에 늦는다고 채근하는 사람도 없다 보니 몸의 긴장감은 늘어질 대로 늘어져서 추스르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둥지를 떠나 홀로 사는 삶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면 여유롭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면 빈한해진다. 서울은 움직임이 곧 돈이다. 방 하나 얻는 것도 만만치 않고, 주인집에서 밥 한 끼조차 얻어먹는 것도 힘들다.


돈은 돈대로 들고 마음은 마음대로 궁핍해진다. 서울에서 홀로 지내다 보면 이것도 삶인가 하는 자괴감과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게 되면서 자아의 상실감도 높아진다.


몇 년 전 직장의 인사로 서울을 벗어나 지방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낸 적이 있다. 그곳에서 누군가의 소개로 생면부지인 마을에 방 하나를 얻어 생활한 적이 있다.


언젠가 하루는 직장에서 퇴근해 집에 와보니 서산의 해가 이울려면 한참은 멀어 보였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와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다가 다방에 들어가서 차나 한잔 마시며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다방에 들어가 잠깐 앉아 있는 시간이 몇 시간은 흘러간 것처럼 더디게 느껴졌다. 나는 할 수 없이 다방을 나와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대화할 사람을 찾았다.


낯선 마을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람의 그림자도 만날 수 없어 다시 다방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지만, 말을 받아주는 사람도 이야기를 나눌만한 사람도 없어 지루하게 보냈다.


그날 이후로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동료를 붙잡고 운동을 하고 난 뒤 사무실 앞 선술집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며 시간을 달랬다.


사람은 아무런 준비 없이 낯선 곳에 떨어져 외톨이가 되면 초라해지고 그에 덩달아 고립된 마음에 불안감만 증폭된다. 이러한 긴장감은 지방보다 서울로 올라오면 더하다.


서울이란 낯선 곳에 홀로 방에 앉아 있기가 뭐 해 방을 나가면 밖에는 온갖 네온사인이 번쩍인다. 서울은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곳에 들어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려면 인정보다 돈이 있어야 한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고 반겨주는 사람이 없어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방에 앉아서 지나가는 차 소리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지루한 밤을 보내야 한다.


직장에 출근해도 퇴근 후에 집에 가도 반겨 주는 사람이 없어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을 하거나, 퇴근하는 동료를 붙잡고 술잔을 기울이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점점 익숙해진다.


동료들이 퇴근한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비애감, 퇴근해도 막상 반겨주는 사람이 없는 방은 고독하고 쓸쓸하다.


그런 생활에 차츰차츰 젖어들면 주중에는 저녁 시간을 누구와 함께 보낼까 하는 것에 잔머리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 직장인의 삶이다.


가족이 살아가는 둥지는 삶의 원천이다. 직장의 인사로 불가피하게 가족 곁을 떠났다면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군대가 사람을 만들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군대에서 적막한 밤하늘에 홀로 떨어져 보초를 서면서 고독과 사색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다. 하루 이틀이 아닌 긴 시간의 고독과 사색이 사람을 성장시킨 것이다.


사람은 가끔 정든 둥지를 떠나 홀로 고독한 생활을 해봐야 한다. 그래야 둥지에서 배우자에게 의존해 왔던 타성적인 삶을 돌아보게 되고, 둥지에 묻혀 보이지 않던 나라는 정체성도 찾을 수가 있다.


직장에서 인사로 어쩔 수 없이 둥지를 떠나 홀로 생활하게 되었다면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장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직장과 둥지를 위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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