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퇴임식

by 이상역

직장에 근무하면서 동료의 퇴임식만 바라보다가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자 감회가 남다르다. 직장 동료가 떠나갈 때는 아쉬움과 섭섭한 마음이 들었는데 반대로 나는 직장에 더 남아 일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스럽다. 내가 당사자가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감정의 깊이와 느낌이 달라진다. 코로나로 인해 퇴임식은 마스크를 쓰고 대강당이 아닌 원장실에서 진행되었다.


물론 가족도 초대하지 못하고 치른 조촐한 퇴임식이었다. 퇴임식에서 그간 직장에 다니며 수고했다는 재직기념패도 받고, 동료들과 사진도 찍고, 원장과 동료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소회를 나누었다.


원장실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함께 퇴직하는 동료와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퇴임식에 앞서 사무실에 도착해서 직원에게 첫 수필집인 『세종청사에서 맞이한 이순의 봄』을 한 권씩 선물했다. 직장을 빈손으로 떠나는 것보다 직원에게 수필집 한 권이라도 남겨 주고 싶었다.


아침에 수필집을 들고 사무실에 출근하는데 마치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기분이 묘하고 착잡했다. 오늘 이후는 아침에 가야 할 목적지도 없고 가고 싶어도 갈 곳 없는 신세다.


직장에서 퇴직이란 말 그대로 자리와 지위가 영원히 없어진다는 의미다. 내 자리에 누가 앉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직에서 한 사람의 자리는 역사의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간다.


퇴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동료들의 눈빛을 바라보자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퇴직자를 챙겨주는 직장 동료의 마음이 고맙고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직장을 위해 한평생 몸담았던 수고와 고생했던 마음을 알아주고 배려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인연을 맺은 옛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퇴임식을 마치고 집으로 떠나올 때는 직원들이 따뜻한 배웅을 해주었다. 함께 근무하던 과의 직원들이 차를 주차한 곳까지 따라와 잘 가라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코로나가 아니면 퇴임식을 끝내고 직원들과 사무실 밖에 나가 점심이라도 사주고 싶었는데 코로나로 나갈 수 없어 서로 인사만 나누고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차를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간 직장에 다니며 겪었던 추억과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자 지나온 시간과 세월이 가슴에 밀려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제는 청춘의 뼈를 고스란히 묻은 직장은 영원한 과거의 일이 되었고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야 한다. 직장에서 물러나며 그나마 직원들에게 수필집을 한 권씩 안겨줄 수 있어 마음은 기뻤다.


수필집을 전해 받은 직원들이 잘 읽었노라며 언제 이런 글을 썼느냐는 등 이런저런 소식을 전해왔다.


퇴직할 때 직원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빈손으로 떠날 것 같았는데 그나마 나의 마음을 담은 수필집을 직원들에게 전해줄 수 있어 많은 위로가 되었다.


앞으로 수원을 오고 가는 용인서울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일도 없을 것 같다. 직장에서 물러나니 개인적인 일 외에는 특별하게 사무실을 찾아갈 일도 없어졌다.


퇴임식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 마치 긴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고, 아주 먼 나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든다. 오늘 저녁에는 호젓한 곳에 가서 홀로 잔잔한 음악이나 들으면서 맥주 한잔 기울이며 지나온 시간을 천천히 돌아보고 싶다.


직장에서 따뜻한 환송을 받고 집에 와서 가족과 그간 고생했다는 파티라도 열면서 시끌벅적하게 보내야 하는데 방구석에 앉아 글이나 쓰는 신세다. 그런 마음을 담아 짧은 글로 남겨 두려는 것이다.


이런 나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족은 밖에 나가 식사하는 대신 피자나 한판 먹자고 성화다. 어쩔 수 없이 전화로 피자를 주문해 놓고 피자집에 가서 피자를 가져와 가족과 함께 먹는데 큰딸이 아빠의 퇴임을 축하한다며 편지를 건네준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아빠!

정년퇴임을 축하드려요?


매일 다녔던 출근길이 오늘은 감회가 새로우셨을 것 같아요? 기분이 어떠셨을지 상상이 안 가네요. 저는 아직 멀어서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간소하게 하셨을 것 같아 아쉽네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플 때나 힘들 때나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생하셨을 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네요. 항상 저를 믿고 허용해 주시고 아낌없이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의 도움으로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항상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이제 아빠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하겠습니다.


앞으로 몸 건강 잘 챙기시고 즐겁게 보내기를 바랍니다. 엊그제 아빠가 이제 기댈 언덕이 사라진 느낌이라고 하셨는데 앞으로 가족이 그 언덕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퇴임을 축하드려요. 큰딸 올림(2020.12.30.)


딸이 건네준 편지를 읽고 나자 직장을 퇴임했다는 현실이 또렷하게 다가온다. 아빠를 생각해서 편지까지 써준 딸의 마음이 가상하고 고맙다.


아빠의 영원한 우상은 언제나 딸이다. 그런 딸이 아빠가 직장을 다니며 고생한 것을 알아주고 인정해 줘서 마음이 더욱 기쁘고 든든하다. 날씨는 춥지만, 가족의 따뜻한 온기가 온몸에 전해져 온다.


나는 그래도 복 받은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한 직장에서 무사히 정년까지 다니고, 따뜻한 퇴임식도 베풀어주고, 집에서 가족들이 피자로 퇴임식 파티를 열어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


게다가 성장한 딸이 퇴임을 축하한다며 편지까지 전해주었으니 행복한 기운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이런 기운과 축복을 받으며 제2의 인생도 잘 헤쳐나가기를 기원해 본다.


다음 주부터는 묵은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아직은 퇴직하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정해진 것은 없다. 천천히 시간적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볼 계획이다.


내일부터 직장에 다녔던 기억은 깨끗하게 지우고 새로운 여정에 나서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처럼 제2의 인생은 사회인으로 새롭게 준비하고 정착해야 하는 시작점이다.


사회인으로 어떤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든 그간 직장에 다녔던 마음과 올곧은 정신으로 제2의 인생도 열정과 성심을 다해서 살아갈 생각이다.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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