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影幀)은 사람을 화가가 그린 것이고, 영정사진(影幀寫眞)은 사진사가 사람을 사진기로 찍은 것이다. 두 단어의 차이는 사람의 모습을 붓으로 그리느냐 사진기로 찍느냐다.
요즈음은 사진기 발달로 유명한 화가에게 영정을 그려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매년 음력 시월 이십삼 일은 내게 특별한 날이다. 계절이 추워지는 길목이면 어김없이 내 가슴에는 아쉬움과 서운함이 들어찬다.
내가 태어난 날도 추운 겨울이었듯이 아버지와 이승에서 영원한 이별도 추운 겨울에 했다. 마치 추위는 전생의 업보처럼 따라다닌다.
아버지는 겨울이면 유난히 추위를 타셨는데 누군가 내의라도 챙겨드리는지 걱정이다. 아버지와 생의 이별을 한 지도 몇 해가 지났다.
그런데 해가 거듭될수록 아버지 부재의 그리움이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라 커져만 간다. 삶의 횟수가 거듭되면 정의 부피가 늘어나듯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세월의 부피만큼 깊어만 간다.
내 가슴에는 아버지란 그림자가 큰 기둥처럼 남아 있다. 그 기둥은 삶에 지치거나 마음이 흔들릴 때 나를 지켜주는 버팀목 역할을 해준다.
지금 고향에는 아버지의 그림자만 보이지 않을 뿐 구석구석에 수많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 고독하고 쓸쓸한 자리를 어머니가 홀로 외롭게 지키며 사신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살다 가신 흔적과 이별이 싫다며 자식들 손을 뿌리치고 삶의 애증을 끌어안고 살아가신다.
모처럼 아버지 기일에 온 가족이 모였다. 여덟 남매가 시골집에 모이자 넓게만 보이던 방이 협소해졌다. 아버지께 올릴 음식을 준비하며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자 시골집이 따뜻해지고 살가운 정이 샘솟는다. 제사 음식을 준비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제사를 지낼 자시가 가까워졌다.
제사 지낼 시간이 되자 마을에 사는 친척들이 한분 두 분 도착한다. 아직도 시골에는 전통을 지키는 관습과 풍습이 강하게 남아 있다.
예를 따져 기제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이 돼야 친척들이 모이니 어쩔 수 없이 관습에 따를 수밖에 없다. 시골은 전통과 관습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가족과 제사 음식을 차리는 도중에 친척들이 모두 모였다. 매년 기제사 음식을 진설하지만 순서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아 애를 먹는다.
나이가 먹어도 이러니 자식 세대가 걱정이다. 우리 세대는 아버지 세대에게 책망을 들어가며 기제나 명절에 음식의 진설을 배웠다.
다음 세대는 핵가족에 친척의 의미도 희박해지는 현실에서 고유한 전통이나 풍습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제사 음식 진설을 마치고 ‘현고학생부군 신위’라는 紙榜 대신 아버지 영정사진을 올려놓았다. 제사상에 영정사진을 올려놓자 사진 속의 아버지가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바라보며 “내 새끼들 왔느냐?”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아버지는 그새 주름살이 늘어나고, 머리카락도 염색해야 할 정도로 흰머리가 자랐다.
아버지의 영정사진은 사진관에 가서 사진사가 찍은 것이 아니다. 직장에 다닐 때 우연히 시골에서 가서 휴대폰 사진기로 찍어 확대해 놓은 것이다. 나중에 사진관에 가서 사진사에게 부탁해 찍어 드리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 그러지를 못했다.
아버지 영정사진은 어머니와 함께 읍내 장에 가시기 전에 시골집 안방에서 찍은 것이다. 평소 장에 다니시던 모습이 그대로 영정사진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까칠까칠하고 이마에는 잔주름이 깊게 잡혀 있다. 세월의 시간을 피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은 초점을 잃은 듯하다.
기제사의 순서에 따라 촛대에 촛불을 사르고 향을 지피고 잔을 올리고 아버지에게 절을 올렸다. 친척들과 제사를 끝내고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다시 내려놓으려니 마음이 못내 서운하기만 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이별의 말도 한마디 나누지를 못했다. 영정사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 혹시라도 돌아가실 때 하지 못한 말씀을 듣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엷은 웃음을 띤 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아버지와 나와의 만남이 우연이라면 생의 이별은 필연이다. 평소 살아가시던 모습을 영정사진에 담아놓아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버지 기일에 영정사진을 대하고 나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부모님이 고향의 바다를 지키는 포구라면 나는 고향을 들고나는 조각배다. 삶이란 바다에 나가 풍랑을 만나서 격랑에 휩쓸리다 포구로 돌아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나마 다 스러져가는 고향의 포구에서 나를 지켜주는 부모님이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이 든든하다. 그 든든함이 마음의 울타리가 되어 타향에서 살아가는 가족을 보호해 주는 것 같다.
고향이란 포구에 들어설 때면 언제나 그리움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반대로 포구를 나설 때면 가슴에 애증이 들어찬다. 세상의 바람은 일렁이는 파도와 같이 수시로 변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세상의 거친 바람에 맞서 살아내고 살아가는 힘은 나를 지켜주는 부모님과 고향이란 포구다. 아버지는 고향의 온갖 소식을 전해 듣고 있기라도 한 듯이 기제에 참석한 가족과 친척들을 바라보며 “내가 없는 동안 잘들 지내고 있었느냐!.”라고 묻는 것만 같다.
나도 언젠가 아버지의 영정사진처럼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떠날 것이다. 비록 영정사진 속의 아버지는 초라한 모습이지만, 그 속에는 삶의 열정과 자식을 사랑했던 치열한 흔적이 담겨있다.
제사상에 올려놓은 영정사진을 내려 다시 영정함에 넣어 두었다. 아버지 영정사진은 다음 명절이나 기일에 만나야 한다. 그동안 홀로 사시는 어머니가 쓸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버지 영정사진이 어머니 곁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결 편안하고 따듯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