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의 눈물

by 이상역

지금껏 살아오면서 큰 소리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고향 집 담벼락을 타고 넘어졌을 때나,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도 눈물만 흘렸을 뿐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마을 길을 걷다가 나무뿌리나 돌에 차여 넘어졌을 때도 아픔 때문에 눈물만 조금 흘렸을 뿐 큰소리로 엉엉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사람의 눈물은 감정을 따뜻하게 보듬고 격한 성정을 가라앉힌다.


내가 눈물을 좀 흘렸던 것은 군대 훈련소에서 훈련 중에 원산폭격이란 체벌을 받으며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를 불렀을 때다. 그때도 머리가 아파서 눈물이 나온 것에 노래가 가슴을 아리게 하고 마음이 서러워 눈물을 흘렸을 뿐 어깨를 들썩이며 엉엉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의 목소리로 엉엉 소리 내어 울어보고 싶다. 사람은 끝이라는 막다른 길에 들어서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오늘따라 큰 소리로 울면서 감정을 삭여보고 마음을 달래보고 싶다.


그렇다고 삶에 한이나 설움이나 미움이 쌓여 있어서만은 아니다. 울음은 한을 녹여주고, 설움을 가라앉히고, 미워하는 마음의 앙금을 풀어주는 매개체다.


자신을 진실하게 돌아보게 하는 것은 울음이란 거울을 통해서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소리 내어 눈물을 흘리지 않아서다.


삶의 한, 애증, 서러움, 슬픔 등을 해소하는 것은 울음이다. 큰소리로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나면 감정이 맑아지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그만큼 울음은 감정을 풀어내는 카타르시스다.


사람의 울음은 은연중에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원초적 역할을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감정이 점점 메말라 간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연민이나 감정의 샘물을 무디게 만들고, 나라는 본래의 모습도 점점 잃어간다.

세월이 나라는 본래의 모습을 추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내가 태어날 때 울었던 그 목소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


가짜로라도 눈물을 펑펑 흘리며 큰 소리로 울어보고 싶다. 어쩌면 울고 싶은 본연의 마음에는 본래의 나를 그리워하는 구도자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큰 슬픔이 마음을 너무 옥죄어서 눈물이 나오지를 않았다. 대신에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만 우렁차게 나왔다.


그때는 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이 너무 크고 슬퍼서 눈물을 제대로 흘리 지를 못했다. 정작 눈물을 흘린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참이 지나 서다. 아버지를 만날 수 없는 존재의 외로움과 나를 둘러싸고 있던 아버지의 그림자가 사라져 간다는 섭섭함에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사람은 왜 나이가 들어갈수록 감정은 점점 무디어 가고 표출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일까. 얼마 전에는 어머니가 만든 보름떡이 먹고 싶어 고향을 다녀왔다. 차를 몰고 산자락을 돌아서 고향의 어귀에 막 들어서는데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따뜻한 석양빛이 차를 향해 들어왔다.


석양의 햇살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자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눈물이 너무 쏟아져서 차를 운전할 수가 없어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마음을 추슬렀다.


무슨 연유로 눈물이 나오고 흘렸는지는 모른다. 고향이란 향수 때문인지 어머니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 저녁 햇살의 따사로움을 오랜만에 맛본 그리움 때문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고향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서 어머니의 구부정한 허리를 바라보자 또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머니와 나라는 억겁의 인연 때문이 아니라 평소 젊었던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 지를 않고 초라하게 늙어 가는 잔주름이 많은 어머니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어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은 본래의 자신을 찾아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보다 고향과 어머니라는 명사가 나를 더욱 눈물 나게 한다.


바람이 황량하게 부는 쓸쓸한 저녁에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소리 내어 울어 보고 싶다. 비록 가식적일지라도 눈물을 흘려가며 ‘고향 집에 홀로 계신 어머님 그리워’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애잔한 마음이나 달래며 눈물을 실컷 흘려 보고 싶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유행가 노래처럼 눈물은 자신을 사랑하는 에고의 씨앗이다. 마음이 메말라만 가는 현실에서 정이라는 연민도 눈물이란 에고이즘도 삶에서 점점 멀어져만 간다.


인생이란 이런 것인가. 삶을 돌아보려고 하면 남은 생애가 얼마나 남았는가를 헤아리는 마음이 되고, 이제부터야 하고 마음을 다져 잡으면 세월에 지쳐가는 자신의 육신만 바라보게 된다.


오늘은 다른 것 모두 접어두고 태어날 때의 목소리로 엉엉 울어가면서 아무도 모르게 진득하게 눈물이나 실컷 흘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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