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회갑연을 한다면 그런 것도 하느냐고 반문하는 시대가 되었다. 회갑은 육십갑자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시점이다.
나는 경자년에 태어났으니 다시 경자년이 돌아오는 해가 회갑이다. 금년 연말에 직장을 퇴직하면 내년 1월에 회갑을 맞이한다.
내가 태어난 날은 음력 섣달이라 한 해가 지나가야 생일상을 받는다. 가족에게 회갑연을 갖겠다고 하자 다들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아내가 회갑연을 왜 하냐며 나를 바라보는 마음도 이해는 간다. 회갑연을 거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형제들만 초청해서 가족과 식사나 하자는 것이다.
아버지 회갑연은 일가친척을 모시고 밴드까지 대동해서 무병장수를 축원했다. 그때만 해도 회갑연은 장수의 상징이자 아들딸 잘 두었다는 일종의 과시적 행사였다.
물론 회갑연을 한다고 장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이 함께 모여 생일에 같이 식사하는 것도 의미는 있다. 사람의 미래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미래에 일어날 무언가를 대비하기 위해 회갑연을 갖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함께 자란 형제들과 생일날에 밥 한 끼 나누는 것이 소중해서다.
요즈음은 가족 간에도 명분이 있어야 만날 수 있다. 회갑연은 자신의 삶도 돌아보고 가족과의 관계도 돌아보며 앞으로 건강하고 무탈하게 지내자는 관계의 의식이다.
형들과 누님도 가족과 함께 식당에서 조촐하게 회갑연을 가졌다. 삶이 무슨 기념일을 챙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도 때가 되면 정해 놓은 시기마다 ‘나 살아있소’ 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
사람은 시기마다 회갑이나 고희나 팔순을 맞는다. 그런 시기마다 가족과 생일을 기념해서 식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나이 육십이나 칠순이나 팔순은 부끄러운 나이가 아니고 그렇다고 살 만큼 산 나이도 아니다. 삶에서 시기마다 행사를 갖는 것은 그 사람의 무병장수와 삶을 돌아보고 축복해 주는 의미가 강하다.
더불어 삶의 고비를 잘 넘기며 건강하게 살아온 것에 축복도 해주고 앞으로 잘 살아가라는 격려의 의미도 들어있다. 세월은 저 홀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기울어 가고 익어간다.
그렇게 가는 세월에 서로 나이 듦을 축하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온전한 가족의 몫이다. 회갑연을 왜 하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삶을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의 생각이다.
삶은 어느 한순간도 의미 없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일정한 나이의 턱을 넘어갈 때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은 삶을 풍성하고 깊게 한다.
지금까지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른다는 것은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의미다. 삶은 나이의 마디마다 곡절을 새겨 넣어 축복해 주는 것에 깊은 의미를 두어야 한다.
그렇다고 회갑연을 화려하고 성대하게 갖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간소하게 가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면 족하다.
고향에서 자라던 시절 회갑연은 마을의 커다란 행사이자 축제였다. 그때는 회갑까지 사는 사람도 드물었다. 한 마을에서 회갑을 넘겨 장수하는 사람은 고작해야 한두 명에 불과했다.
당시는 과학과 의술이 발달하지 않아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인정과 인심만은 풍요로웠다. 지금은 과학과 의술이 발달해서 회갑까지 사는 것이 보통명사가 되었지만, 인정과 인심은 반대로 빈약하고 사나워졌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족을 초청해서 식사하는 것도 자주 하면 좋겠지만 몇 번밖에 하지 못한다. 사실 내가 회갑연을 갖자고 한 것은 핑계고 직장을 퇴직한 기념과 수필집 발간을 기념해서 형제들과 식사나 하고 싶었는데 가족이 반대하니 한걸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회갑연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식사하는데 비용은 들겠지만,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는 나이가 육십이 아니던가.
지금 회갑연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하라고 권하고 싶다. 인생살이에서 회갑연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가족과 오순도순 식사 한번 나누는 것도 삶에 커다란 행사이자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잘 살고 잘 먹자고 회갑연을 갖자는 것은 아니다. 의당 사람이 해야 할 것은 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살이다.
내년에 회갑연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이다. 회갑연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알고 있지만, 가족이 반대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깊어간다.
회갑연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출발점이자 전환점이다. 비록 인생의 전환점이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은은한 촛불처럼 빛나는 출발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