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초는 개구리밥의 異名이다. 여름철에 논이나 시냇물에 물결을 따라 두둥실 떠다니는 작고 옅은 초록의 클로버와 비슷한 풀잎이다.
부평초는 몇 가닥의 실뿌리에 의지해 바람이나 물결에 휩쓸리며 연악한 목숨줄을 연명하며 살아간다. 사람도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사는 삶을 ‘부평초 같은 삶'이라 한다.
사람의 삶 자체가 역사이듯이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라면 한 보따리의 사연을 풀어낼 것이다. 그리고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라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고생했다며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오늘이란 현재를 살아가는 누구나 자신의 집을 소유할 돈이 없거나 부족해서 이리저리 떠돌며 살아간다. 나도 결혼 전까지는 고향에서 붙박이로 강산이 세 번은 바뀌었을 기간을 살았다.
그러다 고향을 등지고 보낸 세월은 어느 유행가의 노랫가락처럼 ‘다시 가라 하면 나는 못 가네.’라는 말처럼 돌아가고 싶지 않다. 고향에서 보낸 세월 이상을 밖에서 떠돌며 살아가지만,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신세다.
이사를 한두 번 다녔다면 이사란 말조차 꺼내지도 않는다. 결혼 후 일 년마다 다녔으니 부평초 같은 삶을 살았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내와 결혼해서 첫 삶은 광명시 철산동 언덕인 60번 좌석버스 종점에 뿌리를 내렸다. 아내와 맞벌이를 하기 위해 서로 출퇴근에 지장이 없는 중간지점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광명시에 첫 삶의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서울 사당동으로 이사를 갔고, 사당동에서 몇 번에 걸쳐 옮겨 다닌 후 평촌, 과천, 예산, 대전, 서울, 세종 등으로 떠돌아다녔다.
말이 이사지 괴나리봇짐을 싸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장돌뱅이 신세나 다름없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라곤 결혼할 때 방 하나 구하라고 준 지참금이 전부다.
전세를 얻으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했지만, 그 돈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몇 년은 모아야 했다. 전세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이사 갈 준비를 해야 했고, 전세금을 올려줄 돈이 없어 서울 변두리로 변두리에서 다시 수도권으로 밀려났다.
이사를 다닌 것은 전셋돈이 부족하거나 층간소음이나 직장 인사로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간 이사를 다니면서 이사비로 얼마나 지출했는지도 모른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라는 속담이 맞는 것 같다. 아내가 결혼하면서 사 온 가구며 살림살이는 이사 다니며 부서지고 깨져서 모두 바뀌었다. 가족에게 남은 것이라곤 연약한 아이들과 야위어가는 아내뿐이다.
결혼 전에 맞벌이라도 해서 집 한 칸 장만하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맞벌이로 인해 소득은 늘었을지 몰라도 아이들의 정서는 나빠졌고 육아비용과 생활비로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다.
세상을 이리저리 떠돌다 보니 우리나라 산천 구경은 많이 했지만 이사로 인한 이사비와 소개비와 쓰러져가는 마음뿐이다. 이사로 인해 중개업소와 이삿짐센터만 배부르게 해 주었다.
이사 때마다 깨어지고 부서지는 살림살이를 다시 준비해야 했고, 이삿짐센터 직원과 빈번한 다툼으로 얼굴에 잔주름만 늘었다.
그런데 문제는 또다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소유한 집이 아니라서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시 집을 비워주어야 한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 계절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의 삶이 부럽다. 그들은 이동하는 장소가 곧 거주지다. 집을 소유할 필요도 없고, 남들한테 집을 빌려 살 필요도 없다.
그저 하늘을 이불 삼아 대지를 구들 삼아 머무는 곳에서 거주하면 그만이다. ‘한 곳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리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라는 유목민의 격언이 생각난다.
어쩌면 우리 가족도 유목민과 같은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집을 사서 한 곳에 둥지를 틀면 희망이 없어진다고나 할까. 초원을 떠도는 유목민의 삶이 우리 가족의 삶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이사 가는 것도 지쳤고, 몸도 마음도 지쳤다. 아이들도 이사를 그만 다니자고 성화다. 학교를 옮기면 다른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데 스트레스만 쌓인다고 한다.
이사를 자주 다니다 보니 결혼 후 잘 지내는 이웃도 없다. 이웃과 어쩌다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혹시 집을 비우면 집이라도 가끔 보아 달라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본래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성장한다. 관계라는 것은 나와 너, 너와 나와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집 옆집 윗집 아랫집을 다 막고 지내는 것이 오늘의 삶이다. 집을 자주 옮기다 보니 이웃도 자주 바뀌었다. 이웃과 대화도 나누고,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하는 것이 세상살이다.
어쩌다 이웃과 모임에 참석해도 사무적인 말만 오고 간다. 이웃과 정겹게 음식도 나누어 먹고, 놀이도 가고, 힘든 일이 있으면 함께 하는 것이 이웃이다.
이사를 자주 다니는 바람에 이웃이 생겨날 시간이 없었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옆집에 강도가 들어도, 부부싸움을 해도, 심지어 사람이 죽어가도 모르는 곳이다.
우리처럼 이사를 자주 다닌 사람은 그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보다 더 많이 다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웃도 모르고 삶의 정착지를 찾지 못하고 떠돌이 같은 삶을 왜 살아가는 것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물 위를 바람 따라 물결 따라 떠다니는 부평초가 부럽기만 하다. ‘화려한 불빛 그늘에 가려 세상을 살다 가지요…’라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처럼 우리는 화려한 오늘이라는 무대에서 삶을 누리다 말없이 사라지는 존재다.
아! 언제쯤 부평초처럼 떠돌이 삶을 살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날이 찾아올까. 정착이란 단어가 그립고 그런 날이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