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올라와 결혼하고 어찌어찌 살다 보니 금쪽같은 아이들이 태어났다. 큰딸과 막내는 세 살 터울이다. 큰아이를 키우면서 온갖 사연을 겪는 바람에 둘째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막내는 1994년 9월에 태어났다. 당시 나는 국방부에서 교육부로 자리를 옮기던 해다. 그때 처가는 사당동 까치고개에서 단독주택을 다가구로 재건축해서 살았고, 우리 가족도 처가에 전세를 얻어 살았다.
막내는 해산 예정일보다 며칠 늦게 태어났다. 막내를 임신하고 산부인과에 다니던 아내는 해산일이 지났다며 초조해했다. 그러다 유도분만이라도 해서 아이를 낳겠다며 사당역 근처 오산당병원에 입원했다.
막내도 큰아이처럼 세상에 나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아내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혹시 일이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당부하고 직장에 출근해서 저녁에 병원으로 오기로 했다.
그런데 사무실에 출근하자 직원들이 나를 바라보고 웃으면서 왜 출근했느냐며 병원에 다시 가라고 한다. 나는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직원이 전해 준 꽃다발을 들고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내는 내가 사무실로 출근하는 시간에 막내를 낳은 것이다. 병원에 도착해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아내를 찾아갔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한 모습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막내는 오산당병원에서 태어나 3일 만에 아내와 함께 퇴원했다. 사당동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잠도 잘 자고 먹는 것도 잘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막내는 큰아이를 키우던 것에 비해 고생을 덜했다. 다른 사람에게 낯을 가리는 것 외에는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랐다. 문제는 아내와 맞벌이를 하면서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일이었다.
막내는 낮 가림이 심해 어린이집에 맡기고 헤어질 때마다 심하게 울었다. 직장에서 퇴근해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들러 보모에게 물어보면 부모와 헤어진 뒤에도 근 한 시간을 울었다고 한다.
큰아이와 막내는 성격이 좀 대조적이다. 큰아이는 좀 묵직하고 듬직하고 외향적인데 막내는 내성적이고 귀엽다. 여자아이들이 자랄 때는 집에 있어도 집에 없는 것 같은 분위기다.
남자 형제들은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뛰어다니며 시끌벅적하게 지내는데 두 아이는 싸워도 싸운 것 같지 않았다. 큰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성장통을 겪어서 그런지 막내는 무럭무럭 성장했다.
가끔 막내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났을 때 어떤 모습이었고 어떻게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는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아기가 태어난 모습을 사진으로 찍거나 엄마가 아기를 갖는 순간부터 과정을 기록한 아기 수첩도 없었다.
유년 시절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이 한 장만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통해 나의 유아기 시절을 유추해 볼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없는 것이 아쉽고도 안타까울 뿐이다.
내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 또한 큰아이처럼 부모님에게 자주 아프고 잦은 병치레로 손이 많이 갔던 아이가 아니었을까. 나의 유아기 시절은 생각나는 것이 없지만 내 생애에 두 아이를 만나게 해 준 아내와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울러 내 아이들도 잘 성장해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삶을 멋지게 살아갔으면 한다. 그리고 당당하고 건강한 성인이 되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삶을 누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