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점점 깊어만 간다. 가을비가 내릴 때마다 나뭇잎의 색깔이 진한 갈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은 쪽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길가의 가로수 나뭇잎은 세상을 향해 출가를 서두른다.
가을의 화두는 낙엽이다. 낙엽이 생을 마감하고 자연으로 회귀하는 모습은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살아가라는 수구의 마음을 갖게 한다.
서울에 올라와 직장에 다니면서 사무실에서 집까지 걸어서 퇴근한 적이 없다. 서울은 걸어서 퇴근하는 것이 어찌 보면 불가능한 곳이다. 차량에 소음에 거미줄 같이 얽힌 교차로를 건너가며 걷는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울은 버스 한 정거장도 차를 타고 가는 곳인데 하물며 대여섯 정거장 이상을 걸어서 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곳이다. 오늘은 과천에서 평촌까지 걸어서 퇴근해 볼 생각이다.
과천에서 평촌까지는 약 6㎞다. 굳이 걸어서 퇴근하는 이유는 외적으로는 부족한 운동을 보충하려는 것이고, 내적으로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사색에 빠져보고 싶어서다.
학창 시절부터 분신처럼 따라다닌 가방을 손에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남들은 무엇 때문에 사서 고생하나 싶겠지만 세상은 몸으로 부딪쳐봐야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는다.
청사의 울타리를 벗어나자 고등학교 정문 앞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나란히 서서 환영해 준다. 가로수 길에는 은행나무가 양쪽으로 도열해서 반겨주듯이 얼굴을 노랗게 물들이며 색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그 길을 벗어나 십 분 정도 걸어가자 과천 시내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렀다. 날씨가 쌀쌀해서 옷깃에 손이 자주 가고, 머릿속으로 언덕 너머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생각하며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과천 시내가 끝나는 지점에는 병원을 신축하던 건물이 몇 년간 휑하니 방치되어 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보기가 좋지 않다. 건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흉물로 남아 나중에 커다란 문제가 될 것 같다.
매일 출퇴근길에 건물을 바라보며 다른 용도로 이용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과천 시내를 벗어나자 도로가 배로 넓어졌다.
과천 시내와 시내 외곽을 휘둘러 온 길이 만나면서 도로가 넓어지고 차량도 배로 증가했다. 지난 시절 황톳길에는 차가 별로 없어 길을 걸어가는 멋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차량의 소음으로 주변의 풀벌레나 사람의 말소리조차 들을 수가 없다.
차의 소음으로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발은 무엇을 밟고 가는지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다. 도로에는 차량이 초당 대여섯 대가 물결을 치며 시속 80㎞ 속력으로 쌩쌩거리며 지나간다. 차의 엔진소리와 차바퀴가 아스팔트와 부딪치는 소음은 상상 이상이다.
길은 본래 사람과 차와 우마가 함께 이용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도로는 이러한 목적에서 벗어나 차만을 위해 건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길이란 본래의 기능이 상실되고 사람이 문명과 기계에 점점 밀려난다는 생각이 든다. 사무실을 출발해서 근 이십 분을 걸어가자 복숭아와 배나무를 심은 찬우물 언덕에 다다랐다.
그렇게 높지 않은 언덕을 넘어서자 관악산 통신부대로 가는 길과 교차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사무실을 나와 처음으로 신호등을 만났다. 모처럼 걸어서 퇴근하다 보니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온다.
그곳에서 교차로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렸다. 신호등은 직진 좌회전 우회전 순서대로 바뀌더니 다시 직진 신호등으로 바뀌었다.
“왜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신호는 없는 것일까.”하고 신호등 기둥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길을 건너려면 스위치를 누르고 기다리란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몇 분을 기다렸는데 이 문구를 보지 못했다면 초록색 신호가 들어오기를 종일토록 기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호등 기둥에 다가가 신호등 스위치를 꾹 눌렀다. 이번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가지 않으면 다음은 집과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신호등이 바뀌어 횡단보도를 건너가서 다시 보도를 따라 걸었다. 길가에는 플라타너스와 느티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놓았다. 지금까지는 관악산과 차량이 가는 방향을 등지고 걸어와서 보도를 보는데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량이 올라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가자 차량의 전조등이 시야를 비추면서 보도가 잘 보이 지를 않았다. 차량의 전조등이 시야를 가리자 눈앞이 순간적으로 가물가물해지고 컴컴해졌다. 보도를 걸어가며 “앞이 왜 이렇게 안 보이는 걸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라는 탄식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도로변의 가로등은 내가 걷는 보도를 밝혀 주는 것이 아니라 차량의 전조등 불빛이 가득한 도로를 비추고 있었다.
가로등도 차를 운전하고 가는 사람을 위하고, 걸어가는 사람은 푸대접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로등은 사람이 보도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 방향을 보고 설치해야 하는데 왜 이곳의 가로등은 도로를 향해 비추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에 의구심만 커졌다.
차량 전조등의 갖은 방해와 가로등의 외면을 받아 가며 어둑한 길을 이십 분 정도 걷는지도 모르게 걸어갔다. 가로등이 걷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방향은 당연히 도로가 아닌 인도로 향하게 설치하는 것이 정상이다.
우리는 평소 습관화된 것에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자신이 직접 몸소 부딪치면서 문제도 알고 해결책을 생각해 낸다.
모든 제도나 관습도 마찬가지다. 제도 따로 이용자 따로 인 세상에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살펴보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 세상살이의 한계다.
과천에서 사십 분을 걸어가자 드디어 안양과 의왕시가 만나는 인덕원에 이르렀다. 근 십여 리를 예상보다 빨리 걸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약 2㎞를 더 걸어가야 하는데 이십 분 정도면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덕원을 지나 안양 시내에 접어들자 도시의 차량이 붐비면서 분주하게 다가왔다.
안양 시내를 걸어가자 차를 운전하며 바라보던 길 위의 풍경이 걸어가면서 보게 되자 감회가 남다르다. 차를 타고 가며 바라볼 때는 화려하지 않았는데 길을 걸어가며 바라보자 네온사인이 더 휘황찬란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인덕원을 지나 안양 시내에서 쏟아지는 울긋불긋한 네온사인의 안내를 받으며 교차로를 몇 번 건너가며 정신없이 걷다 보니 집이 가까워졌다.
직장에서 근 한 시간 이십 분을 걸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직장에서 집까지 걸어서 퇴근하기에 적당한 거리지만 인덕원부터 집까지 오는데 교차로가 너무 많아 시간이 상당히 지체되었다.
모처럼 걸어서 집에 도착하자 몸이 풀리면서 기분도 좋다. 도로에서 소음과 먼지와 어둠과 싸워가며 걷는 운동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사람은 평소 걷기에 대한 중요성을 잊고 살아간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사람의 원초적인 움직임인 발걸음을 점점 과학에 빼앗기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 산책 삼아 걷고 싶어도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이 없어 걷지 못하는 신세다. 그나마 걷기를 하려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걸어야 한다.
과천에서 평촌까지 걷기에 좋은 오솔길이라도 있으면 자동차나 전철을 이용하지 않고 가끔 걸어서 출퇴근하는 것을 고려해 보겠다.
그러나 현실은 걸어서 다닐만한 오솔길도 없고 바쁜 것이 무엇인지 걷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살이다. 몸의 본능을 버리고 과학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그저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